[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최근 경찰 비리가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또다시 경찰비리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강남 유흥업계에서 ‘룸살롱 황제’로 불리는 한 룸살롱 업주가 자신이 뇌물을 준 경찰관을 협박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세금 수십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복역 중인 이 업주는 “모든 사실을 검찰에게만 털어 놓겠다”며 경찰 감찰팀에 진술을 거부했다. 경찰 주변에서는 이 업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경찰관 25~30명의 리스트가 존재하며 뇌물 액수만도 20억 원에 달한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어 진위여부가 주목된다.
재기 자금은커녕 추징금도 낼 돈 없는 빈손 된 룸살롱 황제
자신 관련 사건 담당자, 뇌물 수수자로 지목…해당 경찰 부인
42억6000만 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현재 복역 중인 이른바 ‘강남 룸살롱 황제’ 이모(40)씨의 입에 경찰이 주목하고 있다. 이씨가 구속을 전후해 자신과 유착관계에 있던 경찰관들에게 접촉해 ‘뇌물 회수’에 나섰다는 첩보를 경찰이 입수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내연녀 장모(35)씨에게 25~30명의 명단이 적힌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전·현직 경찰 뇌물리스트’를 옥중에서 건넸고, 장씨는 이 명단에 적힌 경찰관들을 만나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리스트를 모두 폭로해버리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달 출소를 앞둔 이씨가 탈세 혐의로 1심에서 30억 원의 벌금을 선고 받은 것이 ‘뇌물 리스트’를 작성해 ‘옥중 수금’에 나선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씨는 경찰관들을 상대로 많게는 억대의 돈을 요구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삐끼에서 큰손 된 인물
이씨는 유흥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유명하다. 이씨는 1997년 서울 북창동에서 유흥업소 ‘삐끼(호객꾼)’로 일을 시작했으며 2000년 업소 내에서 미성년자가 포함된 여성종업원에게 손님이 원하는 유사성행위를 하게 하는 ‘북창동식’ 유흥업소를 개설해 수익을 올렸다. 이후 그는 강남에 진출해 북창동식 스타일 방식을 확산시켜 5년간 3600억 원대 매출을 올려 유흥업계에서 유명세를 떨쳤다. 그는 서울에 기업형 유흥업소 13곳을 운영하며 차명계좌와 이중장부를 이용해 업소 수익금을 빼돌렸지만 10년여 간 경찰에 적발된 적이 없었다.
경찰 수사망을 비웃듯 빠져나갔었던 이씨는 2010년 2월 강남 논현동 룸살롱에서 일하던 19살 가출소녀가 어머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당시 경찰은 이씨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조사하면서 이씨가 경찰관 63명과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통화내역을 분석하는 한편 수사선상에 오른 경찰관에 대한 조사를 벌여 유착 의혹이 짙은 경찰관 6명은 파면·해임했고 33명은 감봉 조치했다.
내연녀 통해 리스트 흘려
당시 사건은 유착 의혹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한 채로 마무리 됐다. 하지만 의혹의 핵인 이씨가 “경찰 뇌물리스트를 검찰에 넘기겠다”고 공언하는 등 2년 전 사건에 대해 다시 들고 나와 당시 경찰 조사결과에서 드러나지 않은 유착 의혹이 드러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2008~2009년 강남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면서 강남지역 경찰관들에게 1000만 원을 투자하면 한 달 이자로 100만 원을 건네는 등의 방법으로 뇌물을 건넸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 감찰팀은 지난 8일 이씨와 접견했으나 이씨는 “경찰하고는 이야기 하지 않겠다. 12일에 강력부 검사에게 경찰 뇌물 리스트를 직접 제보하겠다”고 공언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검찰에 경찰 뇌물리스트를 12일에 넘기겠다고 했지만 제보한 적도 없고 검찰과 접견한 사실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씨의 의도가 뭔지는 몰라도 내연녀를 통해 ‘경찰 30여명에게 돈을 줬다’, ‘경찰 뇌물 리스트 폭로하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라고 말했다.
경찰에서 파악한 ‘경찰 뇌물 리스트’는 현재 없으며 경찰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종합한 결과 경위·경사 5명이 리스트 인물로 언급되기도 했다. 경찰청 감찰 관계자는 “5명에 대해 진술을 들어봤다. 이 중 4명은 2년 전 당시 징계를 받은 경찰관이고, 1명은 이씨와 한차례만 통화해 불문에 부쳤었다”며 “징계 당시도 금품수수여부를 밝히지 못했는데 지금 역시도 금품수수 여부가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씨가 A경위에게 매달 수백만 원을 줬으며 1억 원을 빌려줬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한 장부나 녹취록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A경위가 면회를 와서 1억 원을 갚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흘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감찰팀에서 A경위에 대해 확인해 보니, A경위는 이씨가 면회를 요구해 이씨의 내연녀와 면회했다. 이씨는 ‘검찰이 강남권 경찰 비리를 제보만 해주면 곧 석방시켜준다고 했다. 추징금만 내면 내일이라도 나갈 수 있으니 3억 원만 빌려주면 3일 이내로 갚겠다며 A경위는 이씨에게 돈을 빌린 적도 없고 벌정금을 받지도 않았다며 더 이상 접촉할 일 없다고 일축하고 왔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또 B경감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씨는 편지에서 2010년 2월 논현동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할 당시 쌍떼기파 조직원이 찾아와 협박했다고 밝혔다. 그 조직원이 서울지방경찰청 폭력계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를 통해 이씨 성매매업을 수사토록 하겠다고 협박했다고 한 것. 이씨는 편지에서 이 조직원이 자신에게서 2억5000만 원을 갈취해갔으며 이 과정에서 B경감도 연루됐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씨는 끝으로 조직원 김씨로부터 뜯긴 2억5000만 원을 B경감이 대신 받아달라고 편지에 썼으며, B경감은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는 답장을 보냈다. 감찰 관계자는 “B경감은 이씨를 구속시킨 사건 담당자다. B경감 역시 ‘내가 구속수사한 사람한테 돈을 받을 리 없지 않냐’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구속 이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재기 자금은커녕 추징금도 낼 돈 없는 빈손이다”며 “과거 밥이라도 한끼 사주고 연을 맺은 경찰관 등 공무원들에 대한 소문을 흘리면서 도움을 받기 위한 동기제공 차원에서 ‘뇌물경찰 리스트’설을 흘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현재 이씨가 주장한 30여 명의 경찰간부 리스트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선 상태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씨의 주장에 객관적 근거가 없다”며 “이씨가 일부 언급한 부분에 대해 예의주시하면서 사실 확인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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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