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조선·중아·동아·MBN 등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의 평균 시청률이 0%대에 그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종편과 계약을 맺은 외주 제작사들의 한숨도 함께 깊어지고 있다. 종편들이 저조한 시청률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중단하게 하는 등 문제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들과 외주제작사 간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어 온 낮은 제작비 문제인 이른바 ‘제작비 후려치기’ 역시 종편과 외주제작사 간에도 벌어지고 있었다.

외주제작사들 “카운터 펀치 맞아 그로기 상태”
프로그램이 조기종영되거나 불방돼 수억 원 피해
지난해 12월 1일 개국한 종편이 지난 9일 100일을 맞았다. 출범 당시 종편사업자들은 질 높은 일자리 창출과, 외주 제작사와의 상생, 콘텐츠 품질 제고와 다양화 등을 종편 기대효과로 내세웠다. 종편은 청사진을 제시하며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개국 100여 일이 넘은 지금 종편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짙다.
0%대 시청률과 기대치를 밑도는 광고 매출, 제작비 감축, 투자 위축, 프로그램 질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외주제작사들을 존폐위기에 내몰리게 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종편 개국 석 달여 만에 종편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자 독립제작사협회는 지난 13일 성명을 내고 공동 대응에 나섰다. 방송사에 시사·교양·다큐·오락 프로그램을 제작해 납품하는 외주사로 구성된 독립제작사 협회는 외주제작사의 현실과 종편 피해 사례에 대해 밝혔다.
빚더미에 앉았다
독립제작사협회 관계자는 “가장 심각한 것은 조기종영으로 인한 금전적 손해다. 25여 개의 프로그램이 개국 한 달여 만에 종영됐다. 외주제작사들이 고스란히 금전적 피해를 떠안아 빚더미에 앉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지상파의 경우 봄가을 개편이라고 해서 보통 6개월 단위로 편성이 바뀌어 4개월에서 6개월은 편성이 보장된다”며 “종편이 지난해 12월 개국하면서 프로그램 선별을 까다롭게 신경 써 제작사들은 길게는 지난해 초부터 짧게는 2~3개월 전부터 기획·준비했다. 하지만 일부 프로그램은 4회만 나가는 등 조기 종영돼 초기투자비용조차 만회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종편이 출범하면서 한정된 이 바닥의 인력이 모자라다 보니 서로 스카웃하면서 인건비가 올라가는 등 인력문제가 심각했다”며 “종편의 경우 제작비는 지상파의 80% 수준으로 책정한데다 인건비까지 올라가 더욱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 때문에 조기종영으로 인한 금전적 피해규모는 종편에서 더 클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종편에 참여한 제작사들은 지상파에서 이미 검증을 받은 제작사들이다. 종편들은 종편이라는 태생적 한계나 시행착오를 인정하지 않고 금전적 피해를 전가시키고 있다”며 “종편들이 자체 제작을 했다면 고스란히 종편이 금전적 피해를 떠안았을 텐데 외주제작사가 사전테스트 역할을 한 것처럼 돼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립제작사협회에 따르면 외주제작사들은 종편의 조기종영 등으로 인해 1000만~3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피해를 입은 외주제작사들은 1~4개의 프로그램이 조기종영되거나 불방돼 쓴 눈물을 삼켜야 했다.
빛 좋은 개살구
당초 MBN을 제외한 종편3사는 저작권 일부만 가져가는 조건을 제시하고 양해각서(MOU)까지 채결했다. 하지만 시청률 등의 이유로 조기종영되는 프로그램이 속출하면서 최소한의 상도의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독립제작사협회 관계자는 “이대로 내버려두면 2,3의 피해 외주제작사가 나올 수밖에 없어 제동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해 성명을 발표하게 됐다”며 “아직까지 종편사에서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처럼 종편에 뛰어들었던 외주제작사 관계자들은 ‘청사진이 아닌 빛 좋은 개살구였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앞서 독립제작사협회는 지난달 23일 ‘종편 피해보고와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외주제작사 관계자들은 ‘종편이 협찬을 받아오면 100% 가져가고 제작사가 협찬을 받아오면 종편 90%, 제작사 10%로 나눠 갖는다’ ‘계약서를 쓰지 않고 구두계약 후 제작을 시작하면 구두계약보다 제작비를 적게 책정하거나 일방적으로 계약 불가를 통보하기도 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삭감하고 제작했다’ ‘외주사가 기획하고 제작한 프로그램을 중단시킨 뒤 포맷과 기획으로 자체 제작했다’는 등 피해사례를 이구동성으로 털어놓았다.
하지만 독립제작사협회는 피해를 입은 외주제작사의 구체적 사례나 프로그램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독립제작사협회 관계자는 “외주제작사들은 이미 카운터 펀치를 맞은 것으로 그로기상태”라며 “이런 상태에서 구체적 사례를 밝히면 워낙 좁은 바닥이기 때문에 다 알 수밖에 없다. 지상파 3사, 케이블, 종편이 전부인데 이름이 밝혀지면 실력은 둘째 치고 말 많고 문제 일으키는 제작사라는 꼬리표가 붙어 제 2의 피해를 입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독립제작사협회는 ‘회원사의 생존권 사수 차원에서 집단 피해소송을 비롯하여 필요 시 종편사에 대한 제작거부까지도 불사할 것’이라는 강경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독립제작사협회는 “집단 피해소송을 하겠다는 것은 우리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소송을 진행하게 되면 외주제작사의 이름이 노출돼 이 업계에서 주홍글씨가 새겨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소송은 회사 문을 닫을 각오로 임해야 하는 것”이라며 “종편이 계속 이런 행태를 보인다면 논의 후 제작거부는 진행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종편협의회는 “이 문제에 대해 내부적으로 협의 중에 있다. 확인이 되는대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것”이라며 “독립제작사협회 측과도 (이 문제와 관련해) 논의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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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