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난장판 ‘막장국회’
올해도 어김없이 난장판 ‘막장국회’
  • 전성무 기자
  • 입력 2010-12-14 14:07
  • 승인 2010.12.14 14:07
  • 호수 868
  • 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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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는 준전시상태인데 국회는 전시 상태
지난 8일 한나라당이 완력으로 새해 예산안을 비롯한 각종법안을 '날치기'로 처리하려하자 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이를 막으려고 국회 의장석으로 몸을 던지고 있다. [맹철영 기자] photo@dailyseoul.co.kr

국회는 올해도 어김없이 ‘막장’을 연출했다. 북한의 연평도 피격사건이 발생한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막무가내다. 8년 연속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 2일)도 지키지 않았다. 2011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주먹다짐까지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의원들의 밥그릇 챙기기는 계속됐다. 여야 할 것 없이 각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 예산을 거액으로 배정받았다. 서로 묵인해준 결과다. 이에 앞서 민주당과 국회 운영위원회는 각각 소액정치후원금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정치자금법개정안’과 의원들의 세비인상을 추진해 국민적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런 시기에도 반복되는 폭력국회와 의원들의 밥그릇 챙기기 실태를 짚어봤다.

국회는 지난 8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309조567억 원 규모의 2011년도 예산안을 통과 시켰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4대강 사업의 예산은 2700억 원 삭감됐다. 반면 북한의 연평도 무력 도발에 따른 후속 조치를 비롯한 국방예산 1419억 원이 증액됐다.

그러나 내용이 문제가 아니다. 이날 예산안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여야는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일부 의원과 보좌관이 응급차로 후송되는 등 폭력 국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특히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과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주먹다짐 하는 영상이 언론을 통해 공개돼 폭력국회를 향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치고 받고 의원들의 낯 뜨거운 양상들

영상 속에서 김 의원은 강 의원에게 다가가 주먹으로 얼굴 한 가운데를 강타했고 강 의원의 입술에선 곧바로 피가 흘렀다. 이에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이 강 의원을 잡고 말렸지만 김성회 의원은 오히려 자신이 더 맞았다며 큰 소리를 뻥뻥 쳤다. 정 의원은 강 의원과 출신학교는 다르지만 80년대 운동권에 함께 몸담았던 ‘동지’로 알려졌다. 여야 의원들은 당초 본회의 개의 예정 시각인 오후 2시가 되기 전부터 본회의장 입구에서 대치 국면을 이어갔다.

민주당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본회의장 입구를 막아서고 있었으나 오후 1시45분께부터 한나라당 보좌진들이 몸싸움을 통해 한나라당 의원들을 회의장으로 들여보내면서 오후 2시25분께는 의결정족수인 150여 명 이상이 본회의장에 진입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본회의장 앞 로텐더 홀에서 여야 당직자들과 의원들간 대립이 한창이던 오후 2시17분께 정의화 부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회를 맡아 주재하기 바란다”고 사회권을 위임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4시30분께 경찰력을 동원해 의장석에서 농성 중인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을 끌어내리고 의장석을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도 여야 의원들 간의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실신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응급차를 통해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다.

한편 당시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재오 장관에게 “약속이 틀리지 않으냐. 3~4일만 더 해서 다음주에 하자고 하지 않았느냐”며 울분을 토해냈다. 이 장관은 아무말 없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뒤를 가리키며 ‘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 손가락질의 의미를 둘러싸고 또 다른 논쟁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정 부의장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내년도 예산안은 이날 오후 4시52분께 국회 본회의에서 직권상정된 후 재석 166표 가운데 찬성 165표 반대 1표로 가결됐다.

내년도 예산안 외에도 국군부대의 아랍에미리트(UAE) 파병 동의안이 재석 159표 가운데 찬성 149표, 반대 2표, 기권 6표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 2012년까지 2년간 150명 이내의 국군 병력을 UAE에 파병하게 된다.

아울러 4대강의 경계로부터 2㎞ 이내의 지역에 대한 개발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안(친수법)’과 국가재정법 등 예산부수법안 18건도 함께 처리됐다.


일 커지자 여야 오리발 작전

폭력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여야는 폭력사태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오리발 작전을 펴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 9일 고위정책회의에서 “어제 험한 꼴을 봤다”며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이 (강기정 의원을) 한방 쳐 피가 낭자해 병원에 실려 간 결과 입 안쪽에 여덟 바늘을 꿰매고 턱관절과 치아가 전부 흔들려 오늘 CT 촬영을 한다”고 피해상황을 열거했다. 또 여성인 최영희 의원은 손가락이 부러졌고, 김유정 의원은 의자에 다리가 끼어 거동이 불편한 상태며, 김유정 의원실 관계자는 코뼈가 부러지고 입술이 찢어져 20바늘을 꿰맸다는 게 박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 밖에도 우리 당의 많은 의원, 보좌진, 당직자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피해를 입었다”며 “오전 중 (피해상황을) 취합해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역시 전날 충돌에 따른 피해 집계에 나선 가운데, 이번 사태의 책임을 민주당에 돌렸다.

고흥길 정책위의장은 “국회 폭력사태 근절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이번에 단초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철저한 사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최고위원은 “(야당) 보좌진이 국회의원들을 끌어당겼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했고, 안형환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일부 야당측 보좌진이 본회의장까지 들어오는 등 폭력의 금도를 넘어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근본적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강기정 의원을 가격한 것으로 알려진 김성회 의원은 “어제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강 의원이 먼저 5∼6차례 나를 가격해 이뤄진 정당방위”라며 “나도 전치2주의 진단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국회 내 재산피해도 적지 않다. 본회의장으로 향하는 유리문과 유리벽 등이 파손됐고, 야전을 방불케 하는 혼전 속에 여야는 책상과 의자 등을 ‘바리케이드’로 활용했다. 이 때문에 많은 집기가 복구불능상태로 심하게 훼손됐다. 국회 사무처는 약 3000만 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연평도도 아닌데 국회 안은 흡사 포탄이 휩쓸고 지나간 곳처럼 부상자와 파편만 난무했다.


혈투 벌여도 밥그릇 챙기기에는 ‘동지’

새해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격한 몸싸움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의원들의 밥그릇 챙기기에는 적과 동지가 따로 없었다. 혈세가 낭비되는 것을 막고 예산 효율성을 높인다는 예산심의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민주당을 주축으로 한 여야는 검찰의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수사로 인해 정치후원금 조달이 경직되자 정치자금법 개정을 추진했다. 선관위의 고발 없이는 검찰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의원들을 기소할 수 없고 소액후원금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뻔한 의도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자 법안은 추진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의원들이 생각해낸 방법은 기발했다. 직·간접적으로 의정활동 지원 예산을 늘리는 것이다. 먼저 국회 운영위원회는 예산심사소위와 전체회의를 통해 지난 3년간 올리지 않았던 의원들의 세비를 연 1억1300만 원에서 1억1870만 원으로 올렸다.

의원정책홍보물 비용도 마찬가지다. 여야 의원들은 “청목회 사건 이후 후원금이 안 들어와서 결국 개인 돈으로 해야 하는 것은 가혹한 것”이라며 기존의 1200만 원에서 800만 원을 늘려 23억9200만 원을 증액시켰다. 이와 관련된 회의록을 보면 세비 인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KTX 열차이용 등 의원들의 편의를 위한 예산 증액에도 여야는 일심동체였다. KTX 정차역이 없어 사용하지 못하는 지역의 의원들의 승용차 이용비용을 추가하기 위해 2억7000만 원을 증액해 편성했다.


이상득 의원 1790억 원, 박지원 의원은 60억 원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는 올해도 변함이 없었다. 대통령의 ‘형님’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경북 포항남ㆍ울릉)의 지역 예산은 포항-삼척 철도건설 700억 원, 울릉도 일주도로 50억 원, 과메기 산업화 가공단지 10억 원, 포항공대 4세대 방사광 가속기 구축 사업 200억 원 등 증액 분이 대부분 통과돼 총 1790억 원을 챙겼다.

직권상정을 단행한 한나라당 소속 박희태 국회의장(경남 양산)도 정부의 예산안에는 없었던 양산서 파출소 19억 원, 덕천-양산광역도로 99억 원 예산이 추가 편성됐다. 또 정부가 편성한 박 의장의 지역 예산은 사업별로 적게는 30%에서 300%가량 증액됐다.

출입구를 봉쇄하고 예산안을 단독 처리한 ‘공로’를 인정받은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경남 마산)은 마산자유무역지역 기반시설 확충 40억 원, 마산지청 건설 40억 원, 마산항 제4부두 근로자복지회관 증ㆍ개축 10억 원을 신설 사업 예산으로 챙겼다. 기존의 지역 예산도 대부분 증액됐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이 ‘밥그릇 챙기기’의 최대 수혜자라는 뒷말이 나올 정도다.

민주당 의원들도 지역구 예산을 슬그머니 챙겼다. 예결특위 민주당 간사인 서갑원 의원(전남 순천)은 에코촌 조성 사업 예산을 12억 원으로 증액시켰고, 박지원 원내대표(목포) 역시 고기능수산식품지원센터와 목포신항 건설에 각각 40억 원과 20억 원을 확보했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단체의 한 관계자는 “국회가 정말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 “전 세계적으로도 대한민국 국회처럼 폭력이 난무하는 사례가 드물다. 매번 필요할 때마다 국민 핑계대고 자신들 이익에만 혈안이 돼 있는데 의원들은 정말 국민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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