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 남한서 친자확인소송 첫 승소
북한 주민, 남한서 친자확인소송 첫 승소
  • 이지영 기자
  • 입력 2010-12-14 13:40
  • 승인 2010.12.14 13:40
  • 호수 868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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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재산 북한 가나
지난 1일, 한국전쟁 당시 월남한 아버지와 헤어져 북한에 남겨진 자녀들이 우리나라 법원에 친자관계를 인정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 우리나라에서 북한 주민이 낸 친자관계 확인소송이 선고까지 다뤄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남·북 간 재산 상속 등 다른 법적 문제를 둘러싼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특히 이번 판결로 북한 주민이 상속을 받아 북한으로 재산을 가져갈 수 있을지 등이 새 논란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가정법원 가사5단독 이현곤 판사는 윤모(68)씨 등 4남매가 “남한에서 사망한 아버지와 친생자관계를 인정해 달라”며 검사를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존재 확인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북한 평안남도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던 윤씨의 아버지는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북한에 아내와 2남3녀를 둔 채 큰딸(당시 15세)만을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후 윤씨의 아버지는 1957년 호적을 새로 만들어 북에 남겨둔 아내와 큰딸에 대해 취적신고를 했다. 그러나 1959년 북측 아내에 대해 사망신고를 한 뒤 16살 연하인 권모씨와 혼인신고를 했으며 그 뒤 권씨와의 사이에서 2남2녀를 두었다. 실제로 북측 아내는 1997년에 사망했다.

이후 윤씨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 간 갈등이 시작됐다. 의사로서 상당한 재산을 모은 아버지 윤씨가 1987년 사망하면서 남긴 약 1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둘러싸고 다툼이 시작된 것. 큰딸은 “북한에 있는 가족을 위해 재산을 조금 남겨두자”고 했으나 다른 가족이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큰딸은 일본에 사는 외삼촌을 통해 4명의 친남매가 북한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북한을 자주 왕래하는 재미동포 선교사를 통해 북한의 가족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2009년 2월 19일,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북쪽 가족은 남한의 이복동생 등을 상대로 유산 분배를 요구하면서 친자 확인 소송도 함께 냈다. 이들은 큰딸에게 소송위임장을 전달, 계모 권씨와 이복형제자매들을 상대로 상속권침해에 대한 상속회복 청구, 그리고 자녀임을 인정해 달라는 친자확인, 가족관계등록 창설허가신청을 냈다.

윤씨 등은 자신들이 친자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손톱과 머리카락 등 유전자검사를 위한 샘플, 공민증, 자필진술서, 사실확인서, 위임장, 소송위임장, 이를 작성하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 등을 이미 가정법원에 제출했었다.

서울가정법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윤씨 등의 손톱과 모발 표본 등으로 실시한 유전자검사 결과 윤씨의 부친이 한국전쟁 당시 데리고 월남한 큰 누나와 재혼한 부인 사이에 낳은 자녀 간에 유전자형이 상당 부분 일치해 친자임이 인정된다”며 “원고대리인이 제출한 사진과 동영상 자료에 대한 검증결과 원고들이 한데 모여 진술서와 소송위임장을 작성·낭독하거나 모발과 손톱을 채취해 담는 장면이 확인되고 동영상과 사진에 나타난 사람들이 원고들과 동일인이 아니거나 검증 당시 제출된 모발 및 손톱 샘플이 이들로부터 채취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만한 정황도 없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본안 판단에 앞서 북한주민이 남한 법원에 제기한 소송에 대해 우리 법원에 재판관할권이 있으며, 적용할 준거법도 대한민국 민법임을 분명이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친자 확인 소송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유산 분배 소송이다. 이번에 법원에서 윤씨 등은 친자임을 확인받았으므로 재산 분배를 요구할 자격이 생겼다. 현행 법률에 고인의 자녀나 부모, 배우자, 형제·자매, 4촌 이내 방계혈족 등이 민법상 상속인으로 규정돼 있어서다.

윤씨 등은 2008년 12월 남한의 이복형제 등이 유산 분배를 끝내고 상속 등기까지 마쳤으므로 침해된 상속권 회복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민법은 상속권 침해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3년, 침해된 때부터 10년이 지나면 회복을 요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어 앞으로 유산상속 소송에서는 상속권 소멸시효가 완성됐는지를 놓고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 윤씨 등이 서울중앙지법을 대상으로 낸 상속회복 청구소송은 다음달 6일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그러나 북한 주민이 남한 주민한테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를 인정하더라도 어느 범위까지 봐야하는지에 대한 관한 법률 기준이 현재로서는 없다. 현행법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제정된 법이 아니므로 남한 주민과 똑같은 법률을 북한 주민에게 적용할 경우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자칫하면 막대한 규모로 추정되는 월남민의 재산 등이 북한 주민의 소유가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한 주민이 남한 주민한테 재산을 상속 받아 북한으로 반출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더 나아가 이를 불순한 목적에 쓰려 한다면 우리 안보의 위협요인도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법무부는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이 제정되면 통일을 대비한 최초 법률로 남북 법제통합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무부는 법학자, 북한 이탈주민, 북한 전문가 등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2011년 상반기 중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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