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새는 전투화로 어떻게 북 도발 막나

지난달 23일 북한이 연평도에 대해 무차별 포격을 감행했을 때 우리 군이 대응포격을 한 K-9 자주포 숫자가 연평도에 있던 6문 가운데 3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달 25일 군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우리 군은 북한군의 포격을 받기 전에 실시된 사격 훈련 도중 K-9 자주포 1문에 불발탄이 끼어 사격 불능상태가 됐다고 한다. 이때 북한군의 포격이 쏟아지면서 다른 K-9 자주포 2문이 피격됐다. 피격된 자주포 2문은 포탄 폭발의 충격으로 전자식 사격통제장치가 고장 나 사격이 불가능했다. 오후 2시47부터 59분까지 12분간 이어진 1차 대응포격 당시 포격이 가능한 K-9 자주포는 3문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군은 피격된 2문 가운데 1문을 긴급히 수리해 오후 3시6분부터 이뤄진 2차 대응포격에 합류시켰다. 우리 측 3차 대응사격 때에야 K-9 자주포 4문이 가동된 것이다.
합참 관계자는 하루 전 브리핑에서 “최초에 (북측)포탄이 낙화되면서 우리 포 2문이 피격됐고 이후 적 포탄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사격명령을 하달했다”며 4문으로 대응사격한 것처럼 밝힌 바 있다. 김태영 국방장관도 지난달 24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이 “연평도에 K-9 자주포가 6문 중 2문은 고장이 나 4문으로만 공격을 한 게 맞느냐”고 질의하자 “그렇다”고 답변했었다.
국민들은 북한의 포격 보다 더 무서운 것이 거짓말이라며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느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앞서 천안함 사태 당시에도 군의 발표는 시간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이는 유사시 군과 국민들의 유대가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군의 느슨해진 군기와 무기 체계의 불량 등을 지적하는 소리가 높았다. 과연 이런 상태로 북한의 도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우리 군의 진력과 우리나라의 국력 등을 총체적으로 비교할 때 북한의 전력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쟁이란 결국 국력과 국력의 싸움인 만큼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초반에는 어떨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우리 측의 압도적 승리로 결말이 날 것이라는 것이 일치된 의견이다. 더구나 주한 미군과 유사시 미군의 지원 등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상대가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일부에서 나타나는 점들을 고려하면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이나 일시적 도발 등에 대한 대응에 있어 상당한 문제점이 엿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번 연평도 도발에서도 대응 사격에 나선 K-9 자주포의 상태에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대포병 레이더도 도발 초기에 제대로 북한의 전자파 공격에 작동을 못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뿐만 아니라 K9 자주포 이외의 무기는 6·25 때 쓰던 녹슨 탱크와 구식 견인포 20여 문이 고작이다. 보도에 따르면 일부 무기들은 녹슬고 기름이 줄줄 샐 정도라는 것이다.
연평도 무기 추가배치 몇년씩 묵살
현재 서해 NLL을 사이에 두고 북한군은 4개 사단 3만여 명에 해안포 1천여 문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에 맞선 우리 해병대 6여단은 4천여 명에 불과하다. 이를 보완하는 것은 압도적인 무기체계이어야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군 당국은 연평도 도발 이후 부랴부랴 북한의 추가 포격에 대비해 연평도에 MLRS 다연장로켓포를 배치하고 K-9 자주포를 6문 증가 배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함께 우리 군의 첨단 대공무기인 지대공 미사일 ‘천마’도 긴급배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최신 대포병 레이더인 ‘아서'도 긴급 배치됐다.
그러나 연평도에 뒤늦게 추가 배치된 K9 자주포와 다연장포는 해병대가 몇 년 전부터 요구해온 무기들로 군 수뇌부에 의해 매번 묵살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1월에 배치됐던 대 포병 레이더도 육군에서 쓰던 구식 장비였다.
K-9 자주포도 정밀 정비 시기 지나
뿐만 아니다. 현재 군에 전투 주력 장비를 제때 수리하지 못하면서 정비를 필요로 하는 전투장비들이 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9일 공개된 국회와 국방부의 예·결산 자료에 따르면 K계열 궤도 전투 장비들 중 정비 시한이 지났음에도 제대로 정비를 받지 못한 장비가 올해 446대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K계열 궤도 전투장비란 K-1전차나 K-55자주포처럼 국내 기술이나 라이선스를 통해 만들어진 궤도 전투장비들로 현재 육군의 주력을 이루고 있다.
K계열 궤도 전투장비들은 전력화된 뒤 일정 시한(12~13년)이 지나면 정비고에서 장비를 완전 분해해 검사·수리하는 ‘창정비’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창정비 시기가 됐지만 실제 정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정비 적체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K-77 지휘용장갑차의 경우 올해 창정비 필요 차량은 모두 72대인 데 반해 올해 정비가 가능한 것은 43대에 불과하다. K-200계열 장갑차도 올해 창정비 필요대수는 299대인데 반해 실제 정비 계획이 잡힌 것은 194대다.
창정비 필요 장비와 실제 창정비 대수에 차이가 나면서 올해 K-1전차는 6대, K-1구난전차는 70대, K-1교량전차는 48대, K-55자주포는 82문, K-77지휘용장갑차는 89대, K-200계열 장갑차는 151대가 창정비를 받지 못하게 됐다. 더 큰 문제는 군이 창정비 적체를 줄이기 위해 올해 초 창정비 주기를 연장했음에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초기 6문 중 절반이 이상을 보인 K-9자주포도 창정비 주기가 10년에서 12년으로 연장된 상태다. K-9자주포가 1999년말부터 전력화된 점을 고려하면 과거 기준 적용시 올해초부터는 창정비에 들어갔어야 하나 기간 연장으로 2012년이나 돼야 창정비를 받게 된다.
해군도 209급 잠수함에 대한 창정비를 당초 6.5년마다 받도록 했지만 실제로는 7년이 넘어서야 받는 일(최무선함·이억기함)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군은 6.5년 후 받도록 한 창정비 주기를 올해 7.5년으로 연장했다.
K-21 장갑차는 침수, K-1전차 포신 사격 도중 파열
문민 정권과 참여 정부를 거치며 야심차게 진행해온 무기 국산화 과정에서도 다수 결함이 발견돼 사업 진척이 늦어지고 있다. K-9 자주포의 경우 부동액에서 거품이 발생되면서 엔진이 손상되는 현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소총과 공중폭발탄 발사기가 결합된 K-11 복합형 소총의 경우 양산과정에서 품질 불안정 등 기능상 결함이 발견돼 올해 생산된 1181정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가 진행 중이다. 차기 고속함의 경우 고속에서 직진으로 운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K-21 장갑차의 경우 도하훈련 중 침수사고가 발생했다.
노후 고속정(PKM)을 대체해 연·근해 경비전력을 확보하는 유도탄형 차기 검독수리-A 사업도 워터젯 추진기 개발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돼 개선방안을 마련 중이다.
30년 이상 보관한 탄약의 신뢰성을 점검하는 예산도 약 14억 원 필요했지만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매년 관성적으로 8억 원 정도만 계상되면서 점검할 필요가 있는 탄약의 56%정도가 검사를 마친 것으로 국방위에 보고되기도 했다.
앞서 우리 군이 ‘명품무기'라며 자랑하던 K-21 보병 전투장갑차의 실상은 설계단계부터 총체적 결함을 갖고 있던 ‘불량무기'였던 것으로 드러나 국민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지난 7월 K-21 장갑차가 훈련 중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났었다. 국방부는 사고의 원인 규명을 위해 학자와 전문가들이 참여한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지난 8월 30일부터 10월 20일까지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침몰사고는 장갑차의 중량 및 무게중심의 변화에 따른 부력기준을 잘못 설정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규명됐다.
장갑차 내부에 병력이 탑승하지 않으면 가벼워진 후방에 비해 전방의 부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앞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물에 들어가면서 내부로 급속히 물이 유입됐다는 것이다.
또 전방에서 밀려오는 물결을 차단하고 부력을 얻기 위해 설치된 파도막이 높이가 충분하지 않고 수상운행시 물결의 압력으로 파도막이가 변형되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어 엔진실로 물이 유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엔진실에 들어오는 물을 배출하기 위해 장착된 배수펌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엔진실에 들어찬 물을 밖으로 빼내지도 못했다.
따라서 군이 수상운행도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며 자랑하던 K-21 장갑차는 설계단계에서부터 결함이 있어 수상운행시 사고는 예견된 일이었다.
한편 지난 8월 6일에는 K-1전차의 포신이 사격 도중 파열되는 사고도 있었다. 이 사고는 미세한 균열이 오랜 시간 사격으로 커져 사격 때 파열된 것으로 파악됐다. 장기간에 걸쳐 부식환경에 노출되고 반복된 사격으로 압력에 못 견뎌 순간적으로 파열됐다는 것이다.
잇따른 사고 링스헬기 군수 비리가 원인
K-9 자주포 결함과 관련해서는 조사단 조사결과 전용 부동액을 사용하지 않거나 교체주기를 지키지 않아 엔진 실린더에 구멍이 나는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돼고 부동액 조달 방법 등을 개선하고 정비 업무를 소홀히 한 관계자들을 경고조치했다. K-9자주포, K1(A1)전차, K2전차, 상륙돌격장갑차 등 700~800마력 이상의 엔진은 대부분 습식 실린더라이너 디젤엔진을 사용한다. K-55자주포, 2.5t트럭, 5t트럭 등은 비교적 가벼운 차량에는 건식 실린더라이너 디젤엔진을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육군 군수사에서는 부동액 구매예산을 줄기 위해 공개경쟁입찰을 하고 저가인 다른 제품을 사용했다. K-9생산업체에서 권고한 전용부동액 가격은 1드럼당 34만 원이며 육군에서 구입한 일반 부동액은 25만 원이다. 하지만 부동액 비용을 절감하다 엔진 1점당 수리비 400만 원만 낭비했다. 특히 지난 1997년까지 발생한 엔진 15점은 업체에서 무상으로 정비를 실시했다.
이처럼 K계열 무기의 잇따른 사고의 뒤에는 군수 비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방부 검찰단은 앞서 군수비리 문제에 대한 전방위 수사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대대적인 수사의 시작은 링스헬기와 대잠초계기 P3C 정비 관련 금품수수 사건이다. 지난 4월 잇따라 추락하거나 불시착한 링스헬기 사고와 관련 군 수사기관은 최근 무려 120여 명에 달하는 해군 관계자 등에 대한 계좌추적을 벌였다. 군은 수년간 지속적으로 이뤄진 외주 정비에서 해군 관련자들이 돈을 받고 업체들의 허위정비를 눈감아 줬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군 수사기관 관계자는 “군 규모가 작은 데다 정비 관련 담당자들의 경우 오랜 기간 근무해 업체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렇다 보니 수년간 세금이 줄줄 새고 있어도 눈감아 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군수비리는 해군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이 군 안팎의 시각이다. 최근 발생한 불량 전투화 사건, K-21장갑차 결함 사건 등 군 작전의 생명인 군수 분야에 뿌리 깊은 비리가 있다는 것이다.
물새는 전투화는 비리의 종합세트
전투화의 경우 품질을 검사하는 기관, 계약을 담당하는 기관, 업체의 관계자들이 얽혀 밑창이 떨어지는 불량 전투화를 만들어 냈다. 지난 9월 29일 국방부에서는 신형 전투화 불량 문제에 대한 국방부 감사관실의 브리핑이 있었다. 브리핑 내용은 방위사업청 직원의 국방규격 임의변경, 국방기술품질원의 객관적인 품질검사 규정 무시, 제조업체들의 도덕적 해이 등이 합쳐져 ‘짝퉁 등산화’만도 못한 전투화를 보급했다는 것이었다. 브리핑 이후 국방부 감사관실 관계자는 “충격적이었다. 솔직히 우리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답했던 것으로 보도됐다.
이번 연평도 도발이 우리 군의 전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하고 국민의 신뢰를 재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인지는 앞으로 군의 뼈를 깎는 반성과 다짐에 달려 있다는 것이 국방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특별취재팀]
특별 취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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