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카의 빅엿’이라는 표현을 써 논란을 일으킨 서기호(42·사법연수원 29기) 전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재임용에 탈락한 것을 계기로 법관 재임용제도와 근무평정의 공정성 문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사법부 안팎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서 전 판사의 재임용 탈락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사법 개혁 요구와 맞물리면서 제 2의 사법 파동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서 전 판사는 대법원 재임용 심사 탈락으로 법복을 벗은 이후 본격적 사법개혁 행보에 나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일요서울]은 지난 2월 29일 서 전 판사를 직접 만나 논란이 되고 있는 사법 개혁과 정계 입문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서 전 판사는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정치 참여 가능성 열어두고 있다”고 밝혀 정치행보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서 전 판사는 결국 지난 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국적 조직을 갖춘 정당 활동을 통해 그리고 가급적이면 국회의원이 돼 뿌리째 헤집어서 근본적인 사법개혁, 검찰개혁에 나서겠다”며 통합진보당에 입당했다.
“벤츠 여검사 연루 판사 정직 2개월, 이정렬 판사 6개월…원칙 뭐냐”
“‘가카의 빅엿’은 SNS 심의에 위축될 필요 없다는 말하기 위한 것”
사법부에 예사롭지 않은 시련이 예고되고 있다. ‘부러진 화살’로 촉발된 사법 불신 기류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서 전 판사가 재임용에 탈락하면서 법관 재임용 절차에 대한 공정성·투명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서 전 판사의 연임 탈락 배경을 두고 ‘소신발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그는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사태 때 신 대법관의 징계위원회 회부를 주장하는 등 소신발언을 적극적으로 해왔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가카의 빅엿’이란 발언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서 전 판사는 재임용 탈락 이후 근무성적평정 및 연임심사제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본격적 사법개혁 행보에 나섰고 이런 공감대가 확산돼 판사회의가 전국적으로 번졌다.
판사회의에서는 법관근무성적평정제도와 연임심사 제도에 대한 공정성, 객관성, 투명성 담보 등이 담긴 결의문 또는 건의문을 채택했다. 대법원도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개선안에 이를 반영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 사법부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사법부 안팎으로 사법 개혁 요구가 쏟아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 곪아 있던 것이 터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부러진 화살로 불거진 재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밖으로부터의 개혁요구다. 과거에는 사법개혁이라는 것은 법조계 내부만의 문제였다. 법조계가 아닌 국민들로부터 사법 개혁 요구가 나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사법피해자 문제도 굉장히 심각하다. 부러진 화살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가장 극명한 사례다. 김 교수의 주장도 아주 정제된 주장은 아니기 때문에 법원 입장에서는 다 받아 줄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재판을 해주지 않는다’, ‘법원이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불만을 갖게 됐고 불신이 누적되게 된 것이다.
또 과거 5공화국 독재정권 시절부터 이어져왔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새롭게 등장하는 언론 권력과 보수 단체 등 여론의 압박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판사 자택과 강기갑 의원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의 자택 앞에서 보수 단체가 시위를 벌인 적 있다. 이런 것으로부터 판사가 독립해서 재판을 해야 하는 데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문제가 있다.
안으로부터의 개혁요구가 판사회의로 표출돼 구체적인 개선안과 요구가 나왔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2009년에도 나왔다. 신영철 전 대법관의 촛불사건 임의배당 및 재판 개입 사태 때도 판사회의가 열렸다. 판사들이 이 사태에 대해 재발방지를 요구했고 신 전 대법관에 대해서도 ‘직무수행이 부적절하다’,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또 이런 일들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 개선안이 나왔다. 당시에도 내부로부터 개혁요구가 나왔었는데 이번에도 재임용심사와 관련한 또 다른 개혁 요구가 나온 것이다.
- 소신 발언의 계기는.
▶ 신 전 대법관의 촛불사건 임의배당 및 재판 개입 사태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법원장이 재판에 개입하는 것은 5공화국 시절에나 가능한 이야기다. 적어도 제가 판사가 된 2000년부터는 그런 일은 생각하기도 힘든 것이었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해 화가 난 이유는 대법원에서 이 사건에 접근하는 태도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법관징계법에 따른 징계사유뿐 아니라 탄핵사유도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징계사유가 있는 신 전 대법관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인적책임을 묻지 않고 비리가 있는 사람에 대해 회부하는 윤리위원회에 회부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단독판사 대표로 회의에도 참석했는데 이 과정에서 미봉책, 국면 전환용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근본적인 제도를 개선하기보다는 판사들 이야기를 들어보고 거기서 몇 가지만 뽑아서 제도를 개선하는 척하는 인상을 받았다.
이 사태에 대한 대책이 안 나온 와중에 5월 12일 윤리위에서 신 대법관에게 구두 경고하는 것으로 판결나자 법원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정치적으로도 매우 예민한 사건이었다. 그 이후로도 제도개선 문제에 대해 연구하면서 전체 판사회의에서 법원장 축소를 주장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것은 법과 원칙을 가장 잘 지켜야할 법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제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 페이스 북에 ‘가카의 빅엿’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SNS를 심의하겠다고 나서자 트위터 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당하다고 말하며 불안해했다. 이를 보고 판사로서 법보다 상위인 헌법에 위배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발언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심의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SNS 심의를 반대한다는 글을 올리면서 위축될 필요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 ‘나는 꼼수다’ 여의도 공연에서 나온 ‘쫄면 안돼’ 노래 가사를 부가적으로 집어넣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문구가 크게 부각되면서 마치 제가 대통령을 조롱하는 글을 올린 것처럼 잘못 알려진 것이다.
- 재임용 탈락에 소신발언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 대법원이 제시한 사유는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하다는 것인데 충분한 근거와 사유를 제기하지 못했다. 여기에 대해 충분한 해명도 하고 문제제기도 했는데 거기에 대한 답변도 없었다. 결국 근무성적 부분은 핑계고 신 대법관 사태에 관여한 것과 SNS 발언이 문제 된 것이 아니냐고 추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연임심사제도의 문제점은.
▶ 첫 번째로는 헌법상 법관은 신분보장 되어있다 그래서 탄핵 또는 금고이상의 형선고를 통해서만 파면 될 수 있고 그 외의 사유로는 파면 될 수 없다. 그리고 징계사유 중에 파면이 없다. 견책·감봉·정직만 있다.
그런데 임기제를 따로 헌법에 규정해 놓았다. 헌법에서 서로 모순되는 규정이 있는 것이다.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대법원에서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소장 판사를 걸러내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사실 대법원 입장에 맞지 않고 통제에 잘 따르지 않는 판사를 걸러내는 수단으로 악용돼왔다.
헌법상의 임기제는 신분보장과의 충돌이 있어 엄격히 해석해야한다. 또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하여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대법원장이 연임 탈락을 시킬 수 있다고 규정돼 있는데 ‘현저히’라는 말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 가능한 것이다. 근무성적에 대한 것도 근무평정이 있긴 하나 근무평정은 재임용 심사에 기준으로 삼으려고 만든 것은 아니다. 법원조직법도 위헌 소지가 많다.
- 판사의 근무평정 문제점은 무엇이 있는가.
▶ 비공개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의의제기 절차가 없고 상향식 평가가 없다. 때문에 법원장이 주관적, 자의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폐쇄적이고 상대평가로 이뤄진다. 상대평가만 가지고 재임용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 판사회의가 전국적으로 열리는 등 판사들의 집단움직임이 확산됐다. 이를 어떻게 보고 있나.
▶ 대법원에 건의할 수 있는 사안을 가지고 판사들이 회의를 열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기 때문에 판사회의는 집단운동이 아니다. 판사회의는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판사회의가 열린 것은 그만큼 판사들이 제 사건을 부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판사회의에서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탈락 결정이 부당하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법적 소송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구체적 사건 개입이 되는 것이라 못한 것이다. 또 대법원장의 책임론까지 갈 수 있어 판사들이 신중론을 기한 것이다.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연결 된 것이다.
- 단독판사회의를 통해 건의한 근무평정 및 법관 연임제도 개선 방안을 양승태 대법원장이 수용할 것이라고 보는지.
▶ 저는 믿지 못한다. 국면전환이나 미봉책에 그칠 거라 본다. 양 대법원장이 판사들의 자발적인 제안들을 적극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분이라면 저를 재임용 탈락시킬 이유가 없다. 왜냐면 제가 재임용 탈락된다면 판사회의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법원내부의 분위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다. 또 양 대법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SNS 판사와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SNS 가장 대표적 판사가 저 아닌가. 저와 소통하겠다는 그런 움직임 없었다. 한마디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판사사회 특수성은.
▶ 대법원장에 권력이 집중돼 대법원장의 권력이 너무 막강하다. 대법원장 권한을 실현할 수 있는 행정처라는 막강 조직이 있다. 여기에 굉장히 많은 판사들이 파견돼 있고 이 사람들은 재판을 하던 판사들이었지만 행정처에 들어간 순간부터 대법원장의 지시를 철저히 따르는 부하직원이 되는 셈이다. 일선 법원 판사들의 자율권이 취약하고 제한돼 있다. 그리고 법원장에 의한 근무평정 권한을 갖고 있는 법원장이 그 권한을 매개로 해서 판사들을 통제하고 있다. 판사들 입장에서는 평정에 반영되기 때문에 법원장에게 쓴 소리를 하기 힘들다.
- 판사회의가 확산되면서 사법파동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 사법파동까지 가려면 판사들이 자기이름을 걸고 과거 연판장 같은 게 나와야 된다. 판사회의는 전체의견이기 때문에 자기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자기이름을 거는 연판장은 더 강한 주장이 나올 수 있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 지지 않았을 때 판사들이 사직을 각오해야 할 정도다.
사법파동 역사를 보면 첫 번째 사법파동을 제외하고는 정권이 민주화 됐을 때 사법파동이 일어났다. 현재 정권도 법원 내부도 표현의 자유가 억압돼 있어 자기 이름을 걸고 더 이상의 주장을 펼치기가 어려워 사법파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판사사회의 기류는 익명의 판사가 이번 사태와 관련된 글을 투고하며 이름을 걸지 않고 글을 쓰는 것에 자괴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현 상황에 불만이 많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나 자기 이름을 걸고 말하지 못하는 현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또 2월 27일에 법관 인사이동이 있었다. 법원 정기 인사는 큰 폭으로 이뤄진다. 많은 판사들이 자리를 옮기고 새로운 업무를 맡게 돼 바빠졌기 때문에 사법파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 ‘부러진 화살’의 소재가 된 김명호 전 성균관대 조교수의 복직소송 재판 합의과정을 공개한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가 6개월의 정직 징계를 받았다.
▶ 법률 위반은 맞지만 징계수위가 강하다.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선재성 부장판사는 정직 5개월 처분을 받았고 '벤츠 여검사' 사건에 연루돼 향응 등을 받은 부산지법 모 부장판사는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았다. 비리와 관련된 판사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비리와 관련 없는 판사에 대해 더 중한 징계를 내렸다. 이 부장판사는 법원에 해를 끼칠 목적이라기보다는 법원이 부러진 화살과 관련해 오해를 받으니까 오해 해소 차원에서 한 것이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꼼수면', '가카새끼 짬뽕' 등의 글을 올린 것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정권이나 대법원에서 싫어할 수 있는 내용이나 비리와는 관계가 없다. 도대체 기준이 뭔지 이해할 수 없다.
-법적대응을 할 생각인가.
▶ 잘못된 것이고 부당한 것이니까 부당한 것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다툴 필요가 있다. 행정소송을 검토 중이다. 복직 여부는 나중 문제다.
- 사법개혁 토크쇼 등 사법개혁 본격 행보 시작했다는 시각이 많다. 앞으로의 계획은.
▶ 일단 토크쇼는 더 계획이 없고 그 다음 행보에 대해서는 논의 중이다. 추구하는 것은 근본적 사법개혁이고 적당히 할 생각 없다. 그래서 당분간 변호사 개업을 보류하려고 한다.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되면 사법개혁을 근본적으로 추진하고 그 문제에 전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 최종목표는 무엇인가.
▶ 제왕적 대법원장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판사들의 재판상 독립을 강화돼야 한다. 이런 것이 선행돼야 국민들의 사법부로 바꾸고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재판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부분이 개선된 뒤에 복직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choies@ilyoseoul.co.kr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