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김나영 기자] 농협중앙회(회장 최원병)의 난항이 계속되고 있다. 인사 논란 때문이다.
농협은 지난 2일 사업구조개편을 통한 ‘새농협 출범 기념식’을 열어 글로벌 협동조합으로서 새 출발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제 농협은 농·축산 및 유통(경제)을 담당하는 경제지주와 은행·증권·보험(신용) 등을 아우르는 금융지주를 양 날개로 단 1중앙회·2지주회사 체제로 개편됐다. 그러나 시작부터 금융지주회장을 필두로 한 ‘무더기 회전문 인사’로 얼룩져 금융권의 한숨이 쌓여가는 실정이다.

앞서 농협은 지난달 16~17일 새로 출범할 농협금융지주의 신임 회장 선임을 위한 특별인사추천위원회(이하 인추위)를 열었다. 인추위는 농협중앙회 인사부가 제출한 37명에 달하는 후보자 명단을 검토했지만 결국 금융지주회장 선임을 1주일 뒤로 연기해야만 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인추위와 후보자 추천 모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일었다. 인추위의 위원 8명 중 금융전문가는 겨우 2명이었다. 나머지 6명은 조합장과 농민단체장으로 금융지주회장을 선임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는 평가다.
또한 후보자 추천 역시 농협중앙회 인사부 내부자료를 토대로 이뤄져 미흡했다는 분석이다. 명확한 기준 제시도 없었을 뿐더러 내부 인사들은 새 농협을 위해 사의를 표명한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회전문’ 인사를 직감하게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임하자마자 선임되는 것을 많이 본 탓에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면서 “반복적·고질적 행태의 블랙 코미디가 농협에서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외부 인사들은 소위 말하는 ‘낙하산’ 후보까지 포함돼 다시금 정부의 입김 아래 농협이 자유로울 수 없음을 여과없이 증명했다. 이와 관련해 전국금융산업노조(위원장 김문호)는 같은 달 17일 낸 성명을 통해 “금융권 임원이 응당 노쇠한 관료들의 노후대책 자리인 것처럼 여기는 정부의 행태를 개탄하며 권태신 국가경쟁력위원회 부위원장의 농협금융지주 대표 거론 자체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두 번에 걸친 회장 추천…결국 회전문?
같은 달 23~24일에 다시 열린 2차 인추위에서 결국 신충식 전 농협중앙회 전무가 농협금융지주회장과 농협은행장을 겸임하는 것으로 내정됐다. 신 전 전무가 신임 회장으로 취임한 지난 2일 금융권에서는 “내부 인사의 회전문이 제대로 작동한 셈이다”라는 반응과 “레임덕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MB)의 고대 학연이 막판 빛을 발한 것이다”라는 반응이 동시에 쏟아졌다.
먼저 지난해 4월 사상 초유의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 직후 5월 전무로 선임됐던 신 회장은 당시 전산장애 재발 방지를 위한 39개 과제를 선정해 추진했다. 하지만 농협의 전산장애는 지난달까지도 끊일 줄 모르고 수차례 반복돼 고객들로부터 ‘정신 못 차린 농협’이라는 뼈아픈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에 아랑곳없이 신 회장은 전무 재임 9개월 만인 지난달 9일 사의를 표명했지만 15일 후 같은 달 24일 금융지주회장과 농협은행장 자리를 동시에 쥐게 됐다.
또한 금융권에서는 ‘4대 천황’이라는 말이 익숙해진지 오래다. MB의 최측근들이 국민·우리·하나·산은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사 회장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 출범하는 농협금융지주 수장까지 MB와의 학연 꼬리표를 달고 있어 금융권에서는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 중이다.
같은 MB의 후배인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과의 친분도 물음표를 달기에 충분했다. 최 회장은 피선거권 자격 문제와 최악의 전산망 마비 사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 연임에 성공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에 1988년 직선제를 도입한 이후 선출된 역대 농협중앙회 회장들이 모두 구속된 ‘농협의 저주’가 4대인 최 회장에게도 이어질 것이라는 풍문까지 돌았다.
실제로 1대 회장인 한호선 전 회장은 공금유용으로 구속됐고, 2대인 원철희 전 회장 역시 같은 공금유용으로 그 뒤를 이었으며, 3대인 정대근 전 회장은 뇌물수수로 구속됐는데 모두 연임 이후 구속됐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 최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신 회장에 대한 금융권의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름만 새 명패, 인사는 헌 사람
한편 농협의 이번 인사를 두고 “금융지주회장은 물론 새 경영진 모두가 내부 인사 돌려막기”라는 금융권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농협중앙회 전무는 윤종일 농촌사랑지도자 연수원장, 농업경제대표는 김수공 전 상무, 축산경제대표는 남성우 전 대표, 상호금융대표이사는 최종현 상무, 조합감사위원장은 이부근 상호금융총본부장, 농협손해보험대표는 김학현 농협중앙회 신용상무, 농협생명보험대표는 라동민 보험분사장이 내정됐기 때문이다.
정부 출자와 농민 반대로 출발부터 불안했던 농협의 신용·경제 분리의 향방이 당분간 인사 논란으로 점철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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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