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인색한 북한…사과 전례는?
'사과'인색한 북한…사과 전례는?
  • 이현정 기자
  • 입력 2010-12-07 12:00
  • 승인 2010.12.07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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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로 연평도 피격사태가 발생한 지 보름이 됐지만 북한은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만 유감을 표명했을 뿐 현재까지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태의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며 연일 "불벼락", 혹은 "전면전" 등과 같은 공갈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1953년 정전 이후 남북간 무력충돌에 대해 북한이 사과한 사례는 몇 차례 있었지만, 책임이 명백히 북한에 있는 경우나 남북 화해 분위기를 타고 '잘 해보자'는 의도로 한 게 대부분이었다.

최근의 천안함 사건같이 폭침 사실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경우나 연평도 사태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처럼 쌍방 과실이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사과한 사례가 전무하다. 지금까지 6차례 있었던 사과 또한 사건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유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장 먼저 북한이 '사과'했던 사례는 1968년1월21일 발생했던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다.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한 이 사건에 대해 김일성 주석은 4년이 지난 1972년 방북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었다"고 구두사과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2년 5월13일 방북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미안한 마음이다"며 거듭 사과했다.

1967년 8월18일 발생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때는 이례적으로 사건 발생 3일만에 사과가 이뤄졌다. 도끼만행사건은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 제거작업을 하던 미군 병사들과 북한군 간의 충돌로 미군 2명이 숨진 것이다.

북한은 이 사건이 벌어진 사흘 뒤인 21일 인민군 최고사령관 명의로 유엔군 사령관에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사건이 발생한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시 미군이 2개 전투비행단과 제7함대 기동부대를 한국으로 급파하고 한국 군도 '데프콘 3호(경계상태 돌입)'를 발령하는 등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자 내린 결정이었다.

1995년 6월27일의 씨아펙스호 인공기 게양사건에 대해서는 한달후 북한이 유감을 표시했다. 전금철 북한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이 사건에 대해 "아래 일꾼들의 실무적 착오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씨아펙스호 인공기 게양사건은 쌀을 싣고 북측 청진항에 입항하는 남측 선박에 어느 쪽의 국기도 달지 않기로 남북이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강제로 인공기를 걸도록 한 것이다.

1996년 9월18일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때도 북한은 사과했다.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같은 해 12월28일 "막심한 인명피해를 초래한 1996년9월 남조선 강릉해상에서의 잠수함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고 밝혔던 것이다.

2002년 6월29일 서해교전 직후에는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한 북측 김령성 단장이 당시 정세현 통일부 장관에게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6일 북한의 예고없는 댐 방류로 우리 국민 6명이 사망했을 때도 북한은 10월14일 열린 임진강 수해방지를 위한 실무회담 첫 회의에서 "임진강 사고로 뜻하지 않은 인명피해가 발생한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유가족에 대해서도 조의를 표한다"고 사과했다.


이현정 기자 hjle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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