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패션업계 양대산맥 언제까지?
흔들리는 패션업계 양대산맥 언제까지?
  • 강길홍 기자
  • 입력 2012-02-28 09:37
  • 승인 2012.02.28 09:37
  • 호수 930
  • 3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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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열전 <5> 제일모직 vs LG패션

[일요서울ㅣ강길홍 기자]  삼성과 LG라는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한 제일모직(사장 박종우)과 LG패션(회장 구본걸)은 우월한 시장 내 지위를 바탕으로 패션업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패션업계의 양대산맥’, ‘영원한 라이벌’ 등으로 불리던 두 회사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이미 매출로만 따지면 이랜드에 밀리는 형국이고, 유니클로·자라·H&M 등 치고 들어오는 해외 SPA 브랜드는 고심거리가 되고 있다. 또 같은 대기업 계열의 경쟁사들도 M&A를 통한 사업 확장에 나서며 두 회사를 위협하고 있다.

양사 매출은 이랜드에 밀리고, SPA는 치고 들어오고
현대家 진출로 재벌 3세의 각축장 된 패션업계


제일모직은 지난 1954년 ‘제일모직공업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직물사업으로 시작된 제일모직은 현재 케미칼·전자재료·패션 및 직물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2010년 기준 매출액은 5조186억 원에 달하고, 이중 패션 및 직물부문의 매출이 27.7%를 차지하고 있다. 제일모직의 대표 브랜드는 빈폴·갤럭시·구호 등이다.

LG패션은 지난 1974년 LG상사의 패션 사업부였던 반도패션으로 출발했다. 2006년 11월 LG상사에서 독립법인으로 분사했고, 2007년 12월에는 LG그룹에서 계열 분리됐다. 2010년 매출은 1조1212억 원으로 제일모직과의 큰 차이를 보이지만 패션부문만 고려하면 격차가 크게 줄어든다. LG패션의 대표 브랜드는 마에스트로·닥스·헤지스 등이다.

제일모직과 LG패션이 국내 패션업계의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이미 국내 패션업계의 1인자는 이랜드라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해 이랜드는 중국에서만 1조6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국·내외를 합쳐 4조1000억 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실상 제일모직과 LG패션이 지켜오던 패션업계 양대산맥 구도가 무너진 것이다.

연이은 글로벌 SPA 브랜드들의 국내 진출도 제일모직과 LG패션을 위협하고 있다. 삼성패션연구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국산 패션 브랜드의 평균 성장률은 3.9%에 그친 반면, 글로벌 SPA 브랜드의 평균 성장률은 56%에 달하는 고속 성장을 이어가면서 국내 패션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다.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가격대비 디자인·품질 만족도가 높은 SPA 브랜드 선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제일모직이나 LG패션 모두 SPA는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와 타깃 층이 다르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여유를 보였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유니클로가 수십 개의 매장을 개설한다고 해서 명품브랜드도 똑같이 매장을 늘려가면서 경쟁하지 않는 것처럼 제일모직이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들도 SPA 소비층과는 다르기 때문에 제일모직이 위기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LG패션 측도 SPA 브랜드의 성장이 자사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SPA 론칭하고, 가격인하 나서고

그러면서도 양사는 SPA 브랜드를 론칭하고, 가격인하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펼치고 있다. 제일모직은 지난 23일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8seconds)’의 런칭행사를 열었고, 23~24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과 명동에 1·2호점을 잇따라 개점했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기 위한 차원에서 SPA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이라며 “제일모직이 SPA 때문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 시각은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LG패션은 가격인하와 함께 기존 브랜드의 일부 제품을 SPA 형태로 운영하는 전략을 택했다. 지난 5일 남성복 타운젠트의 가격을 30% 인하하고, TNGT의 일부 품목을 SPA 형태로 운영하기로 했다. 계열사인 LF네트워크를 통해 SPA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지만 LG패션이 직접 운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운 SPA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이어진 국내 의류업계의 가격 인하는 ‘거품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또한 그동안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폭리를 취해왔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LG패션 관계자는 “지난 1년여 간 구매통합, 유통구조 개선 등의 원가절감 노력을 통해 가격을 인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패션업계 점령한 재벌家

현대백화점그룹(회장 정지선)이 여성복 회사인 ‘한섬'을 인수한 것도 제일모직과 LG패션 입장에서는 신경쓰이는 일이다. 타임·시스템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한섬은 패션업계에서 중위권에 포진해 있지만 여성복 분야에서는 1위를 달리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자사의 유통망을 활용해 한섬을 키워나간다면 제일모직과 LG패션에 맞서는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재벌 3세가 벌이는 패션업계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이끄는 이서현 부사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딸로 잘 알려져 있고, 구본걸 LG패션 회장과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각각 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와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딸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도 신세계인터내셔널을 통해 패션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재벌가에서 패션업계를 장악하고 해외 브랜드를 수입해 손쉬운 사업에 나선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제일모직은 전체 매출에서 수입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10%대에 불과하다”며 “국내 패션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해외 브랜드를 수입해 벤치마킹하는 부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slize@ilyoseoul.co.kr

강길홍 기자 sliz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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