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쿠르트의 ‘팔도 꼬꼬면’과 삼양식품의 ‘나가사끼 짬뽕’이 1위 업체 농심에 도전하면서 라면 업계의 반란이 심상치가 않다. 농심은 지난 25년간 맹주로 군림해 왔으나 최근 하얀 국물 라면이 쏟아지면서 그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1등에 안주해 지키기에만 급급하다보면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후발주자에게 덜미를 잡히기 마련이며 한순간에 ‘훅'하고 갈 수 있다는 것이 시장 생리다. 라면은 ‘쇠고기 맛이 나는 붉은색 국물'이라는 것이 그동안의 고정관념이었지만 이런 틀을 깨는 하얀색 국물 라면이 나오면서 광고전도 치열하다.
‘꼬꼬면’은 ‘한국인의 입맛을 바꿨다’라는 당찬 카피를 내걸면서 ‘꼬꼬면 맛있게 먹는 법’을 이야기 한다. 이경규가 개발해서 화제가 되어 이름도 그대로 출시한 제품인 만큼 그가 등장해서 광고하는 라면에 사람들이 많이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또한 ‘나가사끼 짬뽕’은 남편에게 라면을 끓여주는 주부, 전날 숙취를 라면으로 달래는 자취생 등 평범한 인물들을 앞세워 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동네 슈퍼 아저씨 편. 라면의 진열대 순서가 바뀌었다는 말에서 하얀 국물라면의 인기를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오뚜기의 ‘기스면’ 광고는 제품명을 알리려는데 주력하고 있다. ‘키스 미’ 발음을 비슷한 ‘기스면’으로 바꾸어 JYJ 박유천이 여자애한테 예쁘다는 듯이 ‘너 정말 하얗구나’라고 말한다. 호감 가는 연예인이 등장해서 ‘이쁘다’고 하며 ‘키스 미 달링’하는 데 안 넘어갈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농심의 대응전략은 무엇일까. 지난 해 ‘신라면 블랙’이 “표시·광고가 허위·과장됐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 그 후 농심은 이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시장에서 철수했다. 그러면서 올해 들어 “하얀 국물 시장에 도전한다"며 ‘후루룩 칼국수`라는 신제품을 내놓았다. 한국인이 즐기는 칼국수를 전통의 맛 그대로 재현한 제품이다. 한 봉지 열량이 340㎉에 불과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적합하다는 것이 농심 측의 설명이다.
그런데 제품명에서 알 수 있듯 라면시장에 도전하는 제품이 라면인지 국수인지 그 정체성에 대한 포지셔닝(Positioning)이 애매모호하다. 이 제품은 딱 한 글자가 차이가 날 뿐 기존 제품인 ‘후루룩 국수’ 콘셉트 그대로다. 심지어 제품 포장마저도 똑같고 광고도 후루룩 국수의 포맷을 그대로 본 떠 신제품 라면으로서의 이미지마저 도무지 찾아 볼 수가 없다.
광고에서 그 제품의 핵심 포인트가 되는 소리나 시각 등을 활용하는 기법을 시즐(Sizzle)효과라 한다. 예컨대 보글보글 끓거나 꿀꺽꿀꺽 마시는 소리 등 소비자는 TV만 보고 있는데도 자신이 먹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다가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해 구매까지 이르게 하는 특히 음식물과 관련된 광고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농심은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국수 카테고리가 없던 시기에 ‘후루룩~ 후루룩~ 하아~' 하며 국수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며 “‘후루룩 국수가 그렇게 맛있어?', 농심의 ‘후루룩 국수’” 광고로 이 제품을 포지셔닝 하는데 성공했다. 이소연이 등장했던 광고나 최양락·전유성 콤비 편에서도 ‘후루룩’이란 의성어를 반복해 제품명을 쉽게 알렸다. 아마 이번 ‘후루룩 칼국수`도 제품명을 빠르게 각인시키기 위해 기존 제품의 브랜드 후광효과(Halo Effect)를 살려 ‘하얀 국물’ 라면의 제품 포인트인 ‘흰 색’에 대한 시각적 시즐(Sizzle) 효과의 희석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균형이론에 의하면 기존 제품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신제품의 브랜드에도 전이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면시장의 후발 제품들이 소비자의 입맛마저 뒤바꾸며 빠르게 추격해오고 상황에서 이 같은 구태의연한 마케팅 전략과 광고로는 이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다. 제품 포지셔닝은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브랜드를 어떤 제품군에 속하게 만들고 그 안의 다른 제품들과 대비해서 차별화 시키는 과정을 통해 소비자의 구매와 연결시킨다. 그러나 ‘후루룩 칼국수’는 색깔이 ‘흰’ 제품군의 라면인지 아니면 맛을 강조하는 칼국수인지 그 정체성이 모호하여 혼란만 준다. 게다가 ‘팔도 꼬꼬면’ 등은 라면을 붉은 국물의 색깔로만 알던 소비자에게 ‘하얀 국물’로 그 고정관념을 최초로 깨트린 혁신적 선도 제품으로 이미 각인되어 있다. ‘하얀 국물 라면’ 제품군에서는 이미 선발주자다. 시장에서 선발 브랜드가 되면 후발 브랜드가 소비자 기억 속에 파고들지 못하도록 강력한 인지 장벽을 구축하며 처음의 것을 잘 기억하는 ‘초기효과’ 현상을 나타낸다. 물론 나중의 것을 잘 기억해 내는 ‘최근효과’ 현상도 있어 ‘후루룩 칼국수’는 이를 노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브랜드가 소비자 머릿속에 처음 인지되는 것일수록 더 기억에 오래 남을 뿐 아니라 ‘팔도 꼬꼬면’ 등의 ‘초기효과’는 그 혁신성으로 인해 ‘후루룩 칼국수’의 ‘최근 효과’마저 깔아뭉개버릴 수 있다. 농심은 후발제품으로서의 선발제품을 따라잡는 전략의 효과도 제대로 못 내고 있는 것이다.
1975년 출시된 ‘농심라면' 광고는 당시 최고인기 코미디언이었던 ‘막둥이' 구봉서 씨와 ‘후라이보이' 곽규석 씨를 등장시키며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카피로 크게 히트를 쳤다. 또한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과 ‘국물이 끝내줘요' 등의 광고도 농심이 업계 절대강자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농심은 이 같은 지난 경험을 재현하기 위해 아이돌 스타인 여가수를 섭외하는 등 후속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고정관념이나 불변의 기정사실도 한번 깨져 무너지고 나면 이를 되살리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농심이 지금의 잘 못 된 제품 콘셉트나 포지셔닝을 어떻게 바로 잡아 시장을 되찾을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