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부장판사 염원섭)는 24일 김지태 씨의 장남 영구(74)씨와 유가족들이 정수장학회와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강제 헌납된 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부산일보 주식과 토지를 돌려달라’는 주식 양도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지태 씨가 국가의 강압에 의해 주식을 증여하고,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를 무효화하려는 단순히 공포를 느끼도록 하는 정도의 강박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뤄져야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 씨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박정희 정권이 강탈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단서 조항을 들어 패소 이유를 설명했다.
또 “강박에 의해 의사결정을 취소할 수 있었으나 10년의 제척기간을 지났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법행위가 있던 때로부터 10년의 소멸시효도 지났기 때문에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지태 씨가 의사결정을 취소할 10년의 제척기간이 주어졌다고 해도 박정희 정권이 서슬 퍼렇던 시절인 1972년에 과연 강탈된 재산을 되찾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았다.
지난 1982년에 사망한 고 김지태 씨는 “각서는 중앙정보부 지하 조사실에서 수갑을 찬 채로 강제로 포기각서를 쓴 것”이라며 죽기 전 남긴 자서전에 억울하고 분통치민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놓았다.
이를 근거로 김씨 유가족은 “(부친 소유의) 주식과 부산 시내에 있는 토지 등을 국가에 헌납하는 각서를 썼다”면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을 송달받은 이후에야 청구가 가능하므로 시효가 남아있다”며 2010년 6월에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2007년 6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김지태 씨가 재산을 강제 헌납한 것은 1962년 중앙정보부 등 국가공권력에 의한 강요에 의한 것이고, 국가는 토지와 주식을 돌려주고 원상회복이 어려울 경우 손해를 물어줘야 한다고 진실규명 및 권고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5.16 쿠데타 직후인 1962년 당시 부일장학회는 서면 땅 10만평과 부산일보 주식 100%, 문화방송 주식 100%, 부산문화방송 주식 100%를 강제 헌납된 뒤 ‘5.16장학회’로 이름이 변경됐다.
‘정수장학회’라는 명칭은 박정희 대통령의 ‘정’과 육영수 여사의 ‘수’ 자를 따서 1982년 1월에 또다시 바뀌었다. 그때 재단 소유의 재산은 부산일보 주식이 100% 그대로였지만 문화방송 주식은 30% 보유하고 나머지 70%는 국고로 환수됐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995년 8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2005년까지 맡았다가 과거사 조사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지자 그만두고 박정희 대통령의 의전비서관이었던 최필립 씨에게 이사장직을 넘겼다.
野 총선-대선 박근혜 흠집 부정적 이미지 덧칠하기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은 박 위원장을 앞에 두고 “구체적 답을 줘야 한다. 최필립 정수재단 이사장 등 이사진 들을 모두 퇴임시키고 재단을 사회 환원시키는 것이 답을 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위원장을 따랐던 박사모 등 지지자들이 노조원들이 들고 나온 피켓을 빼앗아 부러뜨리는 등 1시간 가까이 몸싸움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인 “맡겨놓은 장물도 장물”이라며 박 위원장을 정면 비판한데 이어 한명숙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위원장의 아바타인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의 입을 막고 편집권까지 장악하려 한다”며 “박정희 정권은 이 신문을 강탈해 정수장학회를 만들더니 이제 부산일보의 영혼마저 빼앗으려고 한다”고 몰아붙였다.
그럼에도 박 위원장은 지난 20일 방송기자클럽에서 “2005년에 이사장직을 그만 둔 후 나와 재단은 관련이 없다”며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장물'이라며 모든 권력을 동원해 이것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했지만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김지태 씨 유가족이 법원의 패소 판결에도 굴하지 않고 항소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야권은 계속해서 박정희 정권 시절에 강탈한 ‘장물’임을 내세워 이 문제를 총선과 대선까지 끌고 갈 흠집 내기 소재로 키워가고 있다.
박 위원장은 다가온 총선과 대선가도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덧칠되는 것에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못해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장학회에 어떤 하자가 있지 않은 상황에서 총선ㆍ대선을 앞두고 계속 정치쟁점화해서 제게 얘기하는 건 전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일보 노조가 원하는 것은 장학회의 경영권을 내놓으라는 건데 그것은 이사회하고 이야기할 문제지 제가 나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하자가 있으면 있는 대로 법적으로 해야지, 정치적으로 얘기를 만들어 풀려고 하는 건 제대로 된 방식이 아니다. 이를 정치쟁점화하는 것은 정수장학회의 장학금으로 배출된 많은 인재들의 명예나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애써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잡음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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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석 기자 kd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