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고동석 기자]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 인권단체의 시선이 온통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될 것으로 알려진 탈북자들의 신병 처리에 쏠려 있다. 연일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강제송환 될 탈북자들을 살려달라”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는데도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중국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탈북자들을 단순 월경자로 취급하며 강제 북송을 고집하고 있다.
조병제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지난 21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중국의) 탈북자 북송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힌 데 이어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해당 월경자들은 난민 범위에 속하지 않을뿐더러 유엔 시스템에서 논의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외교 마찰까지 불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처럼 중국은 탈북자 강제송환을 인권 문제로 유엔과 국제기구를 통해 압박해도 눈 하나 가딱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때문에 외교부는 오는 27~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이사회에 상정하려던 당초 계획을 놓고 내부 회의를 진행 중인 상태다.
경우에 따라선 중국 정부의 완강한 태도로 볼 때 국제 협약이나 인권 차원을 거론하며 국제무대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양국 간 대화채널로 풀어가는 방향으로 선회하겠다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미국 내에서 활동 중인 북한자유연합 수잔 숄티 대표는 22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출연해 “한국 정부의 대처가 의미 있는 조치지만, 중국 정부가 오랫동안 지속해 온 탈북자 강제 북송 정책을 포기하게 하려면 더욱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한국 정부는 유엔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중국과 직접 맞서서 대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수잔 숄티 대표는 “유엔에 대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 중 간 직접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에 유엔 무대에서가 아니라 중국과 직접 대화나 회담을 하라고 촉구하는 서한을 한국 측에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정, “새누리당-공산당 MOU 앞세워 강제북송 막아야”
이명박 대통령은 전날 특별기자회견에서 “범죄자가 아닌 이상 탈북자는 중국 정부가 규제규범에 의해 처리하는 것이 옳다”며 “한국 정부는 그럼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중국 정부의 협력을 (요청)하게 될 것”이라고 탈북자 강제송환 해법찾기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은 23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외교부와 당정협의를 갖고 중국 내 억류 중인 탈북자들의 강제송환을 막기 위해 ‘한국민증명서’를 발급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당정 회의에 대해 “‘한국민증명서를 발급해주면 중국 공안이 석방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발급해줘야 하느냐‘는 얘기가 있었다”며 “회의에서 의원들이 한국민증명서 발급을 촉구했고, 정부는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했다”고 전했다.
탈북자 강제송환을 막기 위한 당정협의는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차원에서 ‘탈북자 북송저지 결의안’을 채택하고, 국회 대표단을 중국에 파견하는 물론, 중국 홍십자(적십자)에 탈북자 인도적 처우를 요청하는 것을 적극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회의에 앞서 황우여 원내대표는 “탈북자들의 법적 문제는 몇몇 나라간 문제가 아니라 세계와 인류의 문제”라며 “중국 당국은 투명하게 국제법적 질서와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장관은 “중국에서 이렇게 다수의 탈북자가 잇따라 체포된 데 대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다양한 외교채널을 통해 사태를 파악하고 국제기구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등 국가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당 차원에서 중국을 찾아가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고 더 이상 인권 유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고, 황진하 의원은 새누리당이 지난 2009년 중국 공산당과 교류·협력 강화하자며 체결한 양해각서(MOU)를 들어 “MOU를 활용해 당 대 당으로서 공산당에 강제북송을 막는 요청을 해야 한다”며 한 목소리로 적극 대응을 요구했다.
중국 공안은 ‘현대판 추노꾼’
그러나 중국 정부는 최근 주중 일본공관과 한국공관에 더 이상 탈북자를 보호하지 말 것을 강요하는 한편, 중국 내 탈북자 색출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3년 전 탈북했던 국군포로의 딸과 손주들이 한국영사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복수의 탈북자들은 언론을 통해 중국 공안이 탈북자를 체포해 강제 송환하는 대가로 14년 넘게 북한 당국으로부터 통나무와 광물을 받아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 공안은 현대판 ‘추노꾼’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탈북자들의 북송이 돈벌이가 되다보니 최근 1년간 중국 공안이 북한에 넘긴 탈북자 수만 3000~5000명에 달할 만큼 중국 내 탈북자 색출작업도 갈수록 집요해지고 있다.
중국 공안은 탈북자들의 강제송환이 국제사회에서 인권문제로 불거질 것을 우려해 북한과 사전에 약속해둔 방법으로 북송 서류에 매월마다 빨강, 파랑 등 도장 색깔을 바꿔 찍는 방법으로 ‘한국행’인지 ‘단순 월경자’인지 구분해 통보했다고 한다.
‘한국행’ 탈북자라는 도장이 찍히면 북송된 이후 생사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알려진 바에 따르면 중국공안은 체포한 탈북자들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압록강 건너편인 단둥(丹東)과 두만강의 함경북도 온성군 맞은편 투먼에서 북한에 넘겨진다.
중국 공안에 체포된 탈북자들은 대부분 북송되기 전 지린(吉林) 성의 외국인 감옥인 투먼변방수용소에 임시로 수용되는데 이중 여성 탈북자들은 북송 지연을 빌미로 성관계를 요구받거나 성추행당하는 사례가 다반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의원 29명, ‘탈북자 북송 중단 촉구 결의안’ 제출
북송 탈북자들의 인권도 문제지만 중국 내에서 체포, 구금된 탈북자들의 처우도 가히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23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북한에서 배가 고파서 탈출을 한 탈북자라도 돌아가면 생명을 잃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기 때문에 난민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중국 정부를 압박했다.
그는 “중국 정부에 특별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40년전에 가입한 국제난민협약 등 국제법을 준수하라는 것이다. 국제기구를 통해 난민인지 여부를 판단하고 그들이 가고 싶어하는 나라에 보내라는 국제인권법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현재 중국에서 체포된 탈북자들의 강제 북송에 항의 차원에서 지난 21일부터 서울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무기한 단식을 벌이고 있다.
이날 박 의원을 비롯해 새누리당 소속 정의화 국회부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민주통합당 이낙연 의원, 선진당 심대평 대표와 이회창 전 대표 등 29명이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결의안을 통해 “1982년 국제난민협약과 고문방지협약 등에 가입한 중국이 20년 이상 탈북자들을 강제 북송시키고 있다”며 “중국 정부의 반인륜적ㆍ비인도적 인권 정책은 즉각 종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재 중국에 억류된 탈북자 가운데에는 미성년자도 있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한민국에 부모나 자식 등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우리 정부와 국회는 헌법상 우리 국민인 탈북자를 보호하기 위해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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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석 기자 kd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