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4.11총선을 앞두고 여야를 이끄는 여(女) 수장들의 날선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 정면으로 맞섰다. 박 비대위원장은 “한미FTA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공세를 폈으며, 한 대표는 “독소조항을 수정하지 않으면 정권교체를 통해 FTA를 폐기 시키겠다”고 응수했다.
이뿐만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놓고도 설전이 오갔다. 박 위원장은 “잘못된 과거는 깨끗이 단절 하겠다”며 선을 그은 반면, 한 대표는 “박 위원장도 현 정권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朴 vs 韓, 한미FTA ‘이슈선점’ 박차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야권을 향해 본격적인 포문을 열었다. 그간 당 쇄신작업에 몰두하며 정치적 현안에 말을 아껴왔던 박 위원장은 한미FTA 문제를 대야공세 첫 ‘아이템’으로 선택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13일 비상대책위 비공개 회의에서 야당이 한미FTA 폐기를 주장하며 ‘강경론’을 보이는 것과 관련해 “야당의 입장변화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다.
또한 “한미FTA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정치권에서 하는 행동과 말은 책임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한미FTA는 노무현 정권에서 시작된 것으로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등이 국민을 설득해왔다”고 공세를 가했다.
아울러 “한미FTA는 국민들에게 좋은 것이고 하지 않으면 나라의 앞날이 어렵다며 시위도 제지하고 노무현 정권에서 추진해 왔다”면서 “그토록 필요하다고 강조하고선 이제와 정권이 바뀌니 없던 것으로 하겠다는 것이냐”며 민주통합당의 태도변화를 비판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오바마 미(美) 대통령과 상하원 의장에게 한미FTA 발효 정지 및 전면 재검토를 요청하는 서한을 주한 미국 대사관을 통해 전달하는 등 한미FTA 폐기를 위한 강경입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특히, 한 대표는 박 비대위원장의 한미FTA 관련 발언에 정면승부를 걸고 총선 승리 후 이를 전면 재검토할 것은 물론 ‘날치기 상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등 박 비대위원장과 새누리당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한명숙 대표는 취임 1개월을 맞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참여정부시절 한미FTA가 추진된 후 현 정권에서 이를 폐기하려는 것은 모순이라는 새누리당 비판에 대해 “한미FTA는 참여정부에서 시작됐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그 내용과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며 “반성과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고 반박했다.
이어 “MB정부의 한미FTA는 굴욕적인 외교협상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절차상의 문제점도 함께 갖고 있다”며 “서민경제와 직격된 한미FTA를 새누리당은 날치기로 통과시켰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총선에서 승리하면 반드시 한미FTA 재재협상을 하고 정밀하게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며 “만약 재재협상이나 전면 재검토가 무산되면 한미FTA를 폐기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한미FTA 놓고 여-야 대리전 치르나
한미FTA를 두고 박근혜-한명숙 두 사람 간 설전이 오가면서 이 문제가 총선정국의 또 다른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박 위원장이 “한미FTA 반대론자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작심 발언을 쏟아내는 등 야당의 한미FTA 폐기론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한미FTA 전도사’로 불리는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전략공천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민주통합당 내에서도 반(反) 한미FTA 성향이 강한 정동영 상임고문이 강남을에 출마를 선언한 만큼 그의 대항마로 김 전 본부장을 내세워 이 문제를 4.11총선의 핵심 이슈로 띄우자는 것이다.
김 전 본부장도 지난 15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동영 상임고문과의 ‘강남을’ 지역구 맞대결 가능성에 대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다”며 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정 상임고문이 한미FTA를 강하게 반대하는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며 “FTA가 쟁점화 되면 결국 최종 유권자들의 판단이 있을 텐데 국민이 균형 있게 판단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이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총선 출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 비대위원들을 비롯해 당 일각에서는 한미FTA 맞대결이 보수층 결집보다는 정권 심판론을 불러올 수 있다는 측면에서 김 전 본부장의 전략공천에 반대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김종인 비대위원은 “김종훈 전 본부장을 내세워 보수층을 결집시키겠다는 것이 당내 주장 같은데 보수층을 결집해서 될 일이냐”며 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으며, 이상돈 비대위원도 “(총선에서) 농촌지역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한미FTA를 주요 이슈로 가져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한편, 지난해 10월 한미FTA 비준 동의안 날치기 사태 직전 국회 토론회에서 정동영 상임고문과 김종훈 전 본부장은 수없이 부딪혔다. 한미FTA를 놓고 양 극단에 선 이들 두 사람은 원색적인 비난을 마다하지 않으며 신경전을 벌여왔다.
당시 국회 끝장토론에서 정 상임고문은 한미FTA 실무를 맡고 있는 김종훈 전 본부장에게 ‘제2의 이완용’이라고 비난했으며, 김 전 본부장은 ‘제가 이완용이라면 한미FTA를 지지하는 많은 국민이 이완용’이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朴 “MB실정과 단절” 주장에 韓 “박근혜도 책임”
박근혜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 실정과 관련,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을 주장하며 청와대와 본격적인 선긋기에 나섰다. 총·대선을 앞두고 MB정권 실정이 대여 공세의 빌미를 제공하는 등 선거에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명숙 대표는 이에 대해 박 위원장 역시 “현 정권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이 대통령과 박 위원장 모두를 정권심판의 대상으로 부각시키는 등 ‘책임론’ 공방을 가열시키고 있다.
박 위원장은 지난 15일 정당대표 연설에서 “저와 새누리당은 잘못된 과거와 깨끗이 단절하고 성큼성큼 미래로 나아가겠다. 앞으로 정치싸움과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민생과 미래로 나아 가겠다”며 이명박 정부와 거리두기를 본격화했다.
아울러 “이번 4월 총선은 과거에 묶이고 과거를 논박하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선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전진하는 총선이 돼야 한다”며 민주통합당의 정권 책임론에 강한 경계심을 보였다.
또한 “국민과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쇄신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며 한미FTA를 통해 말 바꾸기를 시도하는 민주통합당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디도스 사태,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등 당내 악재가 잇따른 상황에서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교체한 만큼 과거와 선을 긋고 4.11총선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국민에게 심판받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MB측근 비리 등 현 정권을 둘러싼 여러 의혹과 국민적 질타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박 비대위원장이 청와대와의 단절까지 염두하고 이 같은 발언을 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한명숙 대표는 박 비대위원장의 발언이 있은 후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는 등 정부여당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아울러 박 비대위원장을 현 정권 실정의 방조자로 몰아세우며 이명박 정권과의 동반책임론을 제기했다.
한 대표는 15일 취임 1개월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MB정권 4년은 총체적 실정과 실패, 무능의 극치이며, 가장 최악은 부패와 비리”라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무책임하고 무능한 내각을 총사퇴시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조수석에서 침묵으로 이명박 정부를 도운 만큼 ‘모르는 척, 아닌 척’ 숨지 말라”고 지적한 뒤 “난폭 음주운전으로 인명사고가 났다면 조수석에 앉아 있던 사람도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작심한 듯 박 위원장을 겨냥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