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태광 회장 사임,“선처 바라는 꼼수”
이호진 태광 회장 사임,“선처 바라는 꼼수”
  • 강길홍 기자
  • 입력 2012-02-21 09:13
  • 승인 2012.02.21 09:13
  • 호수 929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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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나는 재벌총수, 복귀까지 얼마나?

[일요서울ㅣ강길홍 기자]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 지난 10일 횡령·배임 등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하지만 이 회장의 퇴진을 두고 법원의 선처를 받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범죄를 저지른 재벌회장들은 법원의 선처를 받기 위해 경영에서 물러난 뒤 슬그머니 복귀하는 것이 관례가 됐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도 같은 행태를 보여준 바 있다. 때문에 이호진 회장의 사임은 복귀 시점이 언제쯤 될지 궁금증만 들게 한다. 재벌회장에 대한 법원의 관대한 처벌이 이 같은 행태를 일으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보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범죄 들통나면 물러났다가 슬그머니 복귀
사정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이 더 큰 문제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태광그룹은 지난 10일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호진 회장을 비롯해 오용일 부회장, 박명석 대한화섬 사장 등 경영진이 책임을 지고 동반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장은 회계 부정처리, 임금 허위지급 등으로 회삿돈 400억 원을 빼돌리고, 골프연습장 헐값 매도 등으로 그룹에 975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횡령·배임)로 지난해 1월 구속기소됐으며, 최근 검찰로부터 징역 7년과 벌금 70억 원을 구형받았다.

태광그룹은 경영진 사임에 대해 “그룹 문제로 재판을 받는 등 국민께 심려를 끼치고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책임을 지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이 회장이 법원 선고를 앞두고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특히 이 회장이 회삿돈을 빼돌리는 동안 태광그룹 계열사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다.

김형탁 전 흥국생명 노동조합 위원장은 “재판에서 선처를 받으려는 ‘꼼수’일뿐 아무런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는다”며 “진실로 자신의 잘못에 뉘우친다면 해고된 노동자들부터 복직시켰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광그룹 내에서도 이 회장의 복귀는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룹 관계자는 “회장님이 아직 젊은 편인데 다시 복귀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재벌가 회장님 복귀는 ‘정해진 수순’

이 회장의 복귀를 내다보는 또 다른 이유는 그동안 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으로 경영에서 물러난 재벌회장들이 적절한 시기에 복귀하는 행태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숨겨둔 차명재산이 드러나 지난 2008년 4월 22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 이 회장은 배임·조세포탈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2009년 12월 139일 만에 특별사면을 받고, 이듬해 3월 24일 퇴진 23개월 만에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했다. 삼성家의 경영 퇴진 번복은 대를 잇는다. 故 이병철 창업주는 지난 1966년 9월 22일 사카린 밀수 사건의 여파로 은퇴를 선언하고 경영에서 물러났다가 7년 후 경영에 복귀했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2006년 4월 비자금 조성과 경영권 승계 비리 등으로 구속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보석으로 풀려나 단 2달 만에 복귀하기도 했다. 당시 현대차는 ‘경영 파업’이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정 회장의 공백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은 지난 2005년 7월 오너 일가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비자금 수사가 진행되면서 사임을 표명했다. 그러나 2007년 3월 두산중공업 사내이사로 복귀하면서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샀고, 이후 중앙대학교 이사장, 두산그룹 사내이사 등을 추가로 맡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003년 2월 SK글로벌 분식회계 문제로 구속됐다가 7개월여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경영일선에 복귀해 비난을 들었다. 경영에 복귀한 최태원 회장은 또다시 회사 자금 수백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엄벌 처해라” 시민 분노

범죄 행위로 물러난 재벌회장의 복귀에는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도 한몫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 등에서는 조만간 있을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선고 공판에서 법원의 강력한 처벌을 주문하고 있다.

시민단체 연대인 ‘금융수탈 1%에 저항하는 99% 여의도를 점령하라’는 지난 16일 오후 서울서부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은 중국음식점 배달원이 77만 원을 횡령해도 실형을 선고하면서 수백억 원을 횡령한 재벌총수에게는 집행유예로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며 “잘못을 저지른 총수들은 엄중한 처벌을 내려 달라”고 요구했다.

범죄를 저지른 재벌총수가 경영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기업의 이사 자격에 제한을 두는 것은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실정법을 위반한 재벌총수의 복귀가 계속되고 그로인해 국민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국가가 개입할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slize@ilyoseoul.co.kr

강길홍 기자 sliz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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