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이창환] UFC ‘7초 KO승’으로 인터넷을 장악한 종합격투기 선수 정찬성(25)이 한국 격투계의 간판으로 올라섰다. 추성훈, 최홍만, 김동현의 뒤를 잇는 스타지만 해외에서의 인기는 역대 최강이다. 정찬성의 닉네임 ‘코리안 좀비’를 캐릭터로 만든 코리안 좀비 티셔츠가 미국에서 6가지 버전으로 팔릴 정도. 정찬성은 UFC 역사에 남은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의 데뷔전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고, 이제는 ‘명승부 제조기’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랭킹 8위였던 마크 호미닉, 현재 8위에 랭크된 더스틴 포이리에가 먼저 경기를 제안하는 것만 봐도 그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서의 인기가 미국, 캐나다 등지에 비해 못 미치는 것 같다”고 말한 정찬성이지만 매체의 관심은 올림픽 메달리스트 못지않다.
지난 9일 정찬성 선수와 인터뷰 시간을 가졌는데, 그날 저녁에도 ‘GQ’(남성패션잡지)와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다. 정장을 입은 채 육감적인 모델들과 사진촬영까지 한다고. 인터뷰 내내 예의바른 면모를 보인 정찬성은, 그의 말처럼 격투선수치고는 얌전한 말투와 성격, ‘귀여운 ‘눈웃음’을 지니고 있었다.
UFC 해설가겸 격투선수 김대환에 따르면 종합격투기는 상상이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스포츠다. 김대환은 “이름난 프로선수들도 흐름과 새로운 기술 등을 계속해서 공부해야 한다”면서 “워낙 다양한 격기가 섞이다보니 고생이 허사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 바 있다.
정찬성도 이 같은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다. ‘종합격투기 연구 하느라 머리 아프지는 않나’, ‘이 노력을 다른데 했으면 크게 됐을 거라는 생각은 안해봤나’하는 질문에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종합격투기보다 공부를 많이 하는 스포츠는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정찬성은 “복싱, 유도, 킥복싱, 무에타이, 레슬링, 주짓수, 태권도 등등 배울 종목도 많고, 두가지 이상이 섞인 기술도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공부량이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신제품 연구를 해야 하는 대기업 직원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선수들의 압박이 시청자들에게는 큰 재미다. 실제 싸움 이상의 흥분과 박진감이 있기 때문. 정찬성은 이 힘든 과정을 프로선수가 된 이후에도 15차례나 이어갔다.
정찬성은 현재 전 세계에 팬을 거느린 ‘UFC’ 선수지만, 초기에는 무대를 가리지 않고 경기에 임했다. 소규모 일회성 대회에서 전적을 쌓았고, ‘횡성한우축제’ 이벤트 경기까지 참가해 혈투를 벌였다.
축제 관광객들의 볼거리 제공을 위한 경기가 부끄러울 법도 하지만, 정찬성은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가짐밖에 없었다.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찬성의 종합격투기 열정은 대학진학에서도 나타났다. 국내에 하나뿐인 경북과학대학 이종격투기학과에 지원한 것. 하지만 학교생활의 기억은 어두웠다. 학교, 교수들의 무관심으로 뜻이 있는 동기들끼리만 훈련했던 나날이 많아서다.
정찬성은 “격투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지원했는데, 학교에 서운했다. 하나하나 생각하면 말도 못한다”는 고백으로 과거를 회상했다.
지금의 정찬성을 있게 해 준 시발점은 일본 격투단체 ‘센고쿠’에서 거둔 2승이었다. UFC 스카우터들은 정찬성의 전적과 ‘센고쿠’의 수준을 높게 평가했고 정찬성을 미국으로 진출시켰다.
'조선일보'부터 남성 잡지 'GQ', 'MAXIM'까지 모든 매체가 선호하는 스포츠스타
정찬성은 아시아인, 비엘리트 체육인 출신의 자신이 이룬 기적의 비결을 모험심으로 들었다. 이 모험심에는 타고난 무대 체질, 케이지에서 내뿜는 그만의 투지도 속한다. 종합격투기를 처음 시작할 때 평소 그의 내성적인 성격을 보고선,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충고들도 이제는 무용지물이 됐다.
정찬성의 전적은 지난해 열렸던 ‘UFC 140’까지 12승 3패다. 가네하라 마사노리, 레오라르도 가르시아, 조지루프가 정찬성에게 패배를 안긴 선수. 실신 KO로 승리한 조지루프는 정찬성이 가장 복수전를 원하는 상대다. 한 방의 하이킥으로 끝난 ‘굴욕’에 마음고생도 상당했다.
그만큼 한방에 희비가 엇갈리는 살벌한 경기이기 때문에 시합 도중에 동정심이 드는 일은 없다고 한다.
정찬성은 “설혹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팬다고 해서 도중 동정심이 들지는 않는다. 상대도 나를 죽이려는 마음으로 올라왔는데 끝까지 집중해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밝혔다.
이제 정찬성은 오는 5월 16일로 확정된 UFC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자신에게 도발을 서슴지 않은 더스틴 포이리에게 또 한 번 좀비 공포를 보여줄 기세다. 도박사 분석을 포함한 객관적인 전력은 열세지만 붙어봐야 아는 게 격투기인 만큼 어느 때 못지않은 자신감으로 뭉쳐있다.
정찬성은 국내 팬들의 높아진 관심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다며, 쏠린 관심을 부담으로 느끼기보다는 기분 좋게 여기겠다는 마음을 보였다.
정찬성은 “사명감을 갖는 순간 부담이 커지는 것도 맞지만, 유명 운동선수들은 모두 겪는 일이다”고 말했다. 이어 “스폰서를 얻고, 종합격투기를 알리려면 매체를 통한 홍보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고 본다. 평소 훈련 일정과는 겹치지 않게 잘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자세로 국내 의류브랜드 등으로부터 CF 제의를 받았지만 이견차를 좁히지 못해 무산됐다.
정찬성은 ‘코리안 탑팀’에서 석 달 정도의 맹훈련을 견뎌낸 후 5월초 미국 버지니아로 떠날 예정이다.
다음은 정찬성 개인, 종합격투기 시청자들이 궁금해 할만한 문답.
-대중들이 정찬성을 알게 된 계기는 지난해 연말을 장식한 ‘7초 KO’ 였다.
▶마크 호미닉에게 압승을 거둔 직후 이틀 동안 네이버 검색순위 1위를 차지했다고 하더라. 귀국해보니 그 후에도 일주일 정도 포털사이트 검색순위 1위에 머물더라. 후속 기사가 계속 떠서 그런가 보다.
-미국, 캐나다에서는 당신을 브랜드화한 ‘코리안 좀비’ 티셔츠를 구입할 수 있다. 심플하고 귀엽던데.
▶사실 처음에는 기대와 달라서 실망했다. 무섭게 나오길 바랐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좋더라. 모든 티셔츠가 무섭고 터프할 필요는 없잖나. 티셔츠 수익의 로열티를 20% 받는다.
-페더급 핸 챔피언 조제 알도는 난공불락이다. 하지만 당신 눈에는 그의 단점이 보였나
▶완벽한 선수인 것 같다. 조제 알도는 공략할 수 있는 부분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페더급 2인자는 나라고 자부한다. '지면 어쩌지'라는 생각은 절대 없다.
-자신의 국내 인기가 어느정도 같나.
▶미국, 캐나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거기서는 호텔, 경기장 주변을 못 돌아다닐 정도니까. 한국에서 지하철을 타다 보면 하루에 한명 정도 나를 알아보더라.
-캐나다에서 ‘미친 인기’를 누리나보다. 그곳에서 별장 짓고 살아도 되겠다.
▶그런 생각도 한다. 미국, 캐나다에서 내 이름을 딴 체육관도 설립하고 싶다.
-UFC는 세계 각국에서 열린다. 경기 후 그 나라를 여행하고 싶지는 않은가.
▶그럴 정신도 없다. 경기에서 부상당할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을 아예 할 수가 없다.
-운동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먹는 걸로 푼다. 특별한 취미가 없다. 대신 술은 좋아한다. 술 이라는 게 없으면 안 되는 것 같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은근히 많은 스타일이다. 이미지도 선하고.
▶여자들은 날 잘 모른다.
-예전 인터뷰에서 소녀시대 제시카가 이상형이라고 했다.
▶소녀시대를 다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 중에 한 명만 꼽아야 된다더라. 도도하면서도 예쁜 타입을 좋아한다고 해야할까.
-지난달에는 천안에서 단독 팬 사인회를 했다. 유명 개그맨도 내심 걱정하는 사인회인데, 앞뒀을 때의 심경이 어땠나.
▶말도 안 되게 걱정했다. 왜 이렇게 일이 커졌을까 원망도 하고. 다행히 그곳이 번화가 여서 잘 마쳤다. 누군가는 이종격투기 기존 팬들이 거의 없었다고 실망했지만 모르는 이들이 날 알게 된 사실에 만족한다.
-종합격투기 선수들의 패배를 다른 것에 비유해 본다면
▶1년 수능공부 했는데 당일 일어나지 못한 격?, 허망한 패배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경기를 보다보면 낭심 공격(노블로), 눈 찌르기가 종종 나온다. 어떤 경우는 고의성이 의심되기도 하던데, 선수들도 느껴지나.
▶그렇게 보일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믿고 해야지. 허벅지 안으로 차는 로우킥은 그런 위험이 있긴 하다.
-학교 폭력인지 몰라도, ‘코리안 탑팀’ 에도 어린 수강생들이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배우고 싶은데 망설이는 이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최근 학생들도, 일반인들도 확실히 늘었다. 부모님이 보내서 온 친구들도 있다. 무언가 터트리고는 싶은데, 다니기 두려운 친구들은 걱정 안해도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태권도, 복싱보다 종합격투기가 다칠 일이 없다. 취미로 하는 입장에서는 다양한 종목을 배운다는 게 장점이 될 거다. 지루할 틈이 없으니까. 수준에 맞게 지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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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