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극한 대치
예산국회 개점 휴업 중 G20정상회의 이후 검찰의 사정칼날이 날카로워 지고 있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가 국회의원들에게 로비한 구체적인 정황이 최근 검찰의 공소장을 통해 확인되면서 국회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소환에 불응하겠다던 민주당도 궁지에 몰리자 수사에 협조하겠다며 입장을 유턴했다. 이와 함께 민주당은 검찰수사에 강한 불만감을 표출하며 ‘예산심의 거부’라는 배수진을 치고 나서 예산국회가 파행될 위기에 놓여있다.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나는 청목회 입법로비 사건을 따라가 봤다.
청목회가 청원경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의원 38명에게 전 방위 로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 명목으로 로비한 액수는 총 3억830만 원이다.
최윤식 청목회 회장, 양동식 사무총장, 김영철 추진분부장(이상 구속 기소) 등 3명에 대한 서울북부지검의 공소장에 따르면 청목회는 2009년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국회의원 38명에게 200만~5000만 원씩 후원금을 제공했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이 19명으로 가장 많았고 민주당은 15명, 자유선진당 1명, 민주노동당 1명 순이었다. 나머지 2명에 대해서는 이름과 당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가장 많은 후원금을 받은 사람은 민주당 최규식 의원으로 모두 5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한나라당 권경석,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 등 2명은 2000만 원씩, 한나라당 신지호, 민주당 강기정 의원 등 9명은 각각 1000만 원씩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500만 원 이상 후원금을 받은 의원은 모두 23명이다.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계좌가 아닌 현금으로 후원금을 받고 후원명단까지 함께 건네받은 의원이 최근까지 8명인 것으로 확인돼 합법적인 소액 후원이 아닌 로비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분명해 졌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후원금을 현금으로 받은 뒤 영수증을 발부하지 않았을 경우 불법이 된다.
청목회 어떻게 로비했나
청목회는 지난 2003년 5월 청원경찰의 친목 도모를 위해 결성됐다. 이듬해 10월 열린 정기총회에서는 처음으로 개인당 10만 원씩 특별회비를 걷기로 결정됐다. 이때 걷은 특별회비를 이용해 청원경찰 등급제, 정년연장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청원경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는 데 합의를 도출해 낸다. 하지만 2005년 관련 법안이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하자 2006년 1월부터 다시 특별회비를 모으고 조직적인 활동에 나섰다. 같은 해 12월에는 포털사이트 ‘다음’에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고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확대해 나갔다.
검찰에 구속기소 된 최씨는 2008년 8월 청목회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최씨는 특별회비 계좌를 회원들에게 공개하고 같은 해 10월부터 다음해 11월까지 총 6억5000여만 원에 달하는 회비를 걷어 들였다. 당시 최씨를 비롯한 청목회 간부들은 추후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후원 방식을 10만 원씩 분할하는 것으로 사전에 모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9년 3월에는 전남도청에서 가진 정기총회에서 “최규식·이명수 의원이 청원경찰법 개정안을 발의해 주기로 했다. 특별회비를 적극적으로 납부하고 국회의원 홈페이지에 좋은 글을 올리자”고 결의한 사실도 드러났다.
최씨 등은 지난 해 12월까지 전국의 청목회 지회장을 동원해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면담자리를 마련했다. 전국을 돌며 수십 명의 국회의원들을 만나 법 개정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면담자리에서 법 개정에 도움을 주면 협회 차원에서 물질적인 후원을 하겠다는 조건도 내건 것으로 검찰조사결과 밝혀졌다.
이들은 행안위와 법제사법위원회, 예산결산위원회 등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을 법률개정 업무 관련성 및 개인 성향을 고려해 3등급으로 분류한 뒤 후원금을 2000만 원, 1000만 원, 500만 원으로 차등 지급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실제로 법안 발의를 주도한 최규식 민주당 의원에게는 5000만 원, 이명수·권경석 의원에게는 각각 2000만 원을 건넸다.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이시종 충북도지사도 후원 대상에 포함됐다. 이 지사를 비롯해 한나라당 신지호·유정현·이인기·조진형, 민주당 강기정·유선호·조경태·최인기 의원 등 9명에게는 1000만원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26명에게는 600만 원(1명), 530만 원(1명), 500만 원(23명), 200만 원(1명)의 후원금을 건넸다.
거짓말 들통 난 여야 의원들 ‘난감
청목회가 여야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건넨 구체적인 수법과 로비 정황이 공소장을 통해 밝혀지면서 “후원금의 출처를 몰랐다”고 주장했던 의원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의원들의 당적을 살펴보면 민주당 보다 오히려 한나라당 소속이 많아 ‘야당 표적수사’라는 민주당의 주장은 설득력을 읽게 됐다. 여기에 국민적 비난여론까지 더해져 민주당은 최근 소환에 불응하겠다던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소환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수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어 수사대상 의원들에 대한 압박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에 따르면 청목회 관계자들은 2008년부터 ‘청원경찰처우개선추진단’을 설치하고 청원경찰법 개정안 로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검찰은 가장 많은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민주당 최규식 의원이 이들에게 개정안 발의를 약속한 것으로 확인했다.
청목회 최 회장이 2008년 10월께 최 의원을 만나 법률 개정 협조를 부탁했고, 최 회장은 지난해 1월 청목회 임시회의를 개최해 회원들에게 “최 의원이 개정안 발의를 해주기로 약속을 받아냈다”고 공지했다는 것.
개정안 발의 전인 지난해 3월에도 청목회 정기총회에서 최 회장 등 관계자들은 다시 한 번 “민주당 최 의원과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고 알리면서 특별회비를 적극 납부하기로 결의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들의 로비활동이 개정안 발의에서 통과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보험법 개정에도 ‘후원의 손길’
청목회가 청원경찰법 개정안뿐만 아니라 고용보험법 개정안에도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현금 500만 원과 명단을 받은 한나라당 조원진 의원은 지난 5월 4일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이는 조 의원이 청목회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시기와 겹친다.
조 의원이 발의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청원경찰도 별정직 및 계약직 공무원처럼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검찰은 수사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청목회의 후원금이 관련법 개정안 발의와 통과를 위해 전달된 대가성 여부가 수사 결과 입증되면 해당 의원들은 정치자금법 위반과 더불어 뇌물죄 적용도 가능해진다.
11월 예산국회 ‘파행’
검찰 수사가 발목까지 조여 오며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야권은 ‘청와대 대포폰’ 의혹 등 민간인 사찰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특검을 요구하며 맞불작전에 들어갔다. 민주당이 모든 예산안 심의를 ‘보이콧’하고 나섬에 따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이 요구하고 있는 국조와 특검은 국민의 뜻”이라며 “국민의 뜻을 거역하고 역린하는 정권이 성공한 적은 없다”고 공세를 취했다.
박 원내대표는 “우리가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 때 성공을 기원하며 얼마나 많은 협조를 했는가”라며 “그러나 얼마나 자신 없는 정권이면 정세균 전 대표를 사찰하고 국정원장을 사찰해 몰아내고, 친박계 의원과 가수도 사찰하는가. 대한민국이 사찰 공화국인가”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등 야5당은 이날 민간인 사찰사건 부실수사와 ‘그랜저, 스폰서 검사’ 사건 등 검찰의 각종 비리 의혹에 대한 특검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반면 한나라당은 국조, 특검은 물론 재수사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은 또 민주당이 계속해서 예산안 심사를 거부할 경우 민주당을 제외하고 심사를 강행할 방침이다.
한나라당은 내년도 예산안 국회 처리의 법정시한인 12월 2일을 비롯해 12월 15일을 마지노선으로 해 예산안 처리 ‘디데이(D-Day)’를 다수 잡아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청목회 입법로비 사건 수사와 이로 인해 촉발된 예산국회 ‘올스톱’ 사태. 11월 예산국회는 당분간 파행 속에 찬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청목회 후원금 받은 의원 명단과 액수
5000만 원(1명) : 최규식(민)
2000만 원(2명) : 권경석(한), 이명수(선)
1000만 원(9명) : 신지호, 유정현, 이인기, 조진형(한), 강기정, 유선호, 조경태, 최인기, 이시종 충북지사 당시 의원(민)
600만 원(1명) : 김유정(민)
530만 원(1명) : 확인 안 됨
500만 원(23명) : 김정훈, 김형오, 박민식, 박종근, 심재철, 안경률, 원유철, 이윤성, 이은재, 이주영, 이진복, 장윤석, 조원진(한), 강봉균, 강운태, 강창일, 박주선, 오제세, 우윤근, 이춘석, 홍재형(민), 강기갑(민노), 나머지 한 명 확인 안 됨
200만 원(1명) : 김세연(한)
=한나라당, 민=민주당, 선=자유선진당, 민노=민주노동당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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