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천만 민족의 애환과 한이 서려 있는 곳, 단성사를 반석위에 올려놓는 것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앞으로 국민의 행복과 즐거움이 넘치며, 남녀노소 그 누구라도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육성한 다음, 장차에는 한국문화유산인 단성사를 국가가 관리할 수 있도록 국가에 헌납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일요서울] 인터뷰에서 회한과 희망의 메시지로 첫 운을 땠다. 이는 이 회장이 보는 단성사란 7천만 민족의 입장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를 지키고, 역사를 보전해야 한다는 민족적 입장에서 출발됐음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첫째는 단성사의 문화역사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고, 둘째는 다시는 경영부실이란 논란에 휘둘리지 않도록 경영정상화를 이룩하는 것이며, 셋째는 개인소유를 넘어 국가와 국민의 소유로 아름다운 기부로써의 ‘헌납’을 구상하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단성사가 민족문화유산인 까닭에 “특정한 개인과 그 자손이 소유로 영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그의 입장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단성사 인수전에 참여할 때 가졌던 “우리 문화와 영화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초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조선인 극장’ 단성사는 식민지 조선의 상설 영화관인 까닭에다 조선인의 극장 소유가 불가능하고 배급체인에마저 묶여 오로지 흥행권만을 보장받던 시기에 일본제국의 탄압을 뚫고자 했다. 친일을 거부한 탓에 일제로부터 ‘단성사’라는 이름마저 빼앗기고 2류 극장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견디며, <장군의 아들> 본거지가 되면서 해방 후로는 민족관・애국관・국가관의 산실 역할로 부활했다.
단성사는 식민시대 박승필, 나운규, 안종화 등 걸출한 조선영화인들의 문화공간이자 좌절과 저항 속에서 방황하고 고민했던 지식인들의 추억과 낭만이 녹아 있는 ‘감성공동체’였다.
그 자취는 지금도 단성사 7~8층 계단에 역사로 새겨져 있다. 그 수만도 자그마치 7,800명에 이른다. 모두 촬영과 개봉 영화 등에 참여한 감독과 배우 등으로 출연한 사람들이다.
이 회장은 “단성사는 탄생 후 105년 세월 한결 같이 옥상에 매일 24시간 태극기를 내걸었다”는 추억 한 토막을 떠올렸다.
연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한 다음 1984년 아산양행이라는 인쇄 기자재 수입업체로 사업을 시작해 컴퓨터 복사기 등 사무기기 수입과 제도 판매업으로 성공해 모은 재산에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재(家財)를 ‘단성사 살리기’에 쏟아 부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이 “추억과 낭만, 꿈과 멋, 로망의 역사와 문화를 파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단성사를 재탄생시키겠다”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이 회장은 기업경영활동 뒤로 꾸준히 한국문화와 예술을 후원해 왔다. 그 인연으로 2001년 12월 제15회 예총예술문화대상, 2004년과 2006년 (사)한국영화인협회 감사패, 2009년 한국언론인연합회(문예진흥부문)의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을 수상했다. 여기에는 한국영화인협회에서 추진했던 대종상 조형물 제작・후원과 서울 충무로 역사(驛史)에 한국의 영화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영화영상테마파크’ 리모델링 사업이 담겨 있다. 이 회장의 ‘한국영화 사랑’이 부도위기로 일본자본에 넘어갈 뻔 했던 단성사를 인수하도록 한 원동력이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아시아 넘어 세계진출 꿈꾼다”
“나의 꿈은 단성사에 우리 민족의 가슴 속 깊이 영원한 뿌리를 내리는 토양을 만들어 더 이상 ‘부도난다, 어렵다’는 등의 설(說)이 나오지 않도록 해 모두가 바라보고 우러르는 단성사로 우뚝 세우는 것입니다”
이 회장은 단성사를 인수할 때 경매가 아닌 포괄양수도계약으로 넘겨받았다. 경영권 인수로 기존 계약은 전부 무효화 됐지만, 이 회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세입자 보증금 지불을 위해 전재산을 털어 넣어야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 음해와 시기로 인한 ‘흔들기’도 당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원칙과 정도’를 중시하는 이 회장의 소신이 지난 3년 3개월을 지켜온 힘이 됐다.
이제 ‘아산엠단성사’로 거듭나는 단성사는 지난 3일 종로구청으로부터 리모델링 준공검사(사용승인)를 받았고, 오는 3월 그랜드오픈을 통해 국민과 만날 예정이다. 이 회장은 이와 관련 “단성사의 최초 건립 목적이 아티스트들이 만나고 모이는 장소였던 만큼 이를 살려 공연과 영화, 쥬얼 리가 함께 어우러져 젊은 남녀들이 모여서 스토리를 만들고, 비보이 같은 새로운 공연과 3D・4D 등의 새로운 영화와 디자인・가공・세공・연마의 새로운 쥬얼리의 멀티공간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예술과 영화예술을 결합하고 쥬얼리라는 액세서리를 접목시킨다는 것이다. 공연예술의 경우 유명 MC 송해 씨의 부탁이 큰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연극인들, 영화인들, 코메디언들을 위한 공간도 만들어진다.” 특히 쥬얼리의 경우 세계 나라들은 클래식 스타일의 인테리어로 획일화 돼 있지만, 아산엠단성사는 여기에 ‘한지, 자개, 단청, 대나무, 돌, 목재’의 6가지 소재를 더해 ‘한실(韓室) 컨셉’을 추가함으로써 세계 유일로 한국이미지를 강하게 부각시켰다. 사실 종로 3~4가를 중심으로 귀금속 거리는 우리나라 귀금속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던 주변환경이 한몫했다.
단성사는 지난해 12월 8일 서울시의 쥬얼리 산업계획에 따라 3개층을 지원센터로 사용하는 계약을 맺었다. 세계다이아몬드거래소연맹(WFDB)과도 MOU를 맺어 세계 29번째 비즈니스형 다이아몬드 거래소 유치를 진행 중이며, 또한 세계 5번째의 생산형 다이아몬드 거래소 유치도 진행 중이다. 두 종류의 거래소가 유치될 경우 3만~5만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 (비지니스형 거래소 :완성된 제품 경매, 생산형 거래소 :다이아몬드 원석 경매)
현재 이 회장은 “국내 쥬얼리산업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아산엠단성사를 쥬얼리 매장 약 300~400개 업체와 공연장, 영화관, 푸드코트 등 다양한 업종의 복합멀티공간으로 만들어서 1200~1800여 명의 일자리 창출과 약 1만명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터전으로 만들 계획”이다. 이에 따라 아산엠단성사는 아시아 보석의 메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정책연구원이 지난 2009년 평가한 단성사의 브랜드 가치는 현재 브랜드 가치 261억 원, 미래 브랜드 가치 351억원, 귀금속 보석매장 브랜드가치 294억 원 등 총 906억 원이였다. 여기에 부동산 가치를 합하면 2016억원에 달한다. 게다가 ‘보석과 예술’의 복합멀티플렉스로 새롭게 단장하고, 서울시 쥬얼리산업 정책의 심장역할을 맡아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용트림하는 웅비하는 가치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단성사(團成社)는 ‘단합해서 함께 뜻을 이루자’는 창업자의 소중한 뜻을 이어 이 회장은 아산엠단성사 역시 ‘단합해서 함께 성공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캐츠프레이즈로 내걸고 ‘문화재 등재’도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영화의 자존심’으로 우뚝 선 ‘이상용의 아산엠단성사’ 새로운 100년의 역사에 기대가 크다.
<대담 : 서원호 취재국장> os@ilyoseoul.co.kr
서원호 취재 국장 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