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때문에"…외교부의 馬그림 수난사
"그림 때문에"…외교부의 馬그림 수난사
  • 이현정 기자
  • 입력 2010-11-18 10:33
  • 승인 2010.11.18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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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나 정부나 구설수가 끊이지 않을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가 '풍수지리'논란이다.

국회는 조선시대 궁녀들의 공동묘지터 또는 화장터였다는 설로 유명하고 역대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불운을 겪었던 청와대 역시 상당수 풍수지리 연구가들로부터 터가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풍수지리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글로벌 외교의 중심' 외교통상부도 2004년 김선일씨 피살 사건 등 잇딴 악재로 홍역을 치르자 '터'가 아닌 애꿎은 그림이 입방아에 올랐었다.

문제의 그림은 당시 외교부 1층 로비에 당당히 걸려있던 대형 말 그림. 이 작품은 가로 12m, 세로 2.5m 크기의 '도약(Jump)'이란 작품으로 말 20마리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거나 힘차게 내달리는 역동적인 모습을 담았다.

서양화가 오승우 화백이 2002년 12월 당시 행정자치부의 의뢰를 받아 '약동하는 말과 같이 국운을 날리라'는 의미로 제작했지만, 말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데다 무언가에 놀란 듯 우왕좌왕 하며 뛰어가는 모습을 하고 있어 '도약'이 아닌 '혼비백산'이라는 오명까지 얻었었다.

당시는 김선일씨 피살 사건 뿐만 아니라 윤영관 외교장관의 중도하차, 국가안전보장회의(NSC)폄하 발언 파문 등이 연이어 터진 때였다.

'그림의 나쁜 기운 때문에 외교부에 흉흉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말이 많자 결국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은 그림 철거를 지시했다. 그러나 이 마저 쉽지 않았다. 행정자치부가 이 그림을 걸 때 몇년간 전시하기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에 외교부는 그림 주변에 조·미수호통상조약서,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친서 등 역사적 외교문서를 배치해 그림에 쏠리는 시선을 분산시키는 고육책을 썼다. 이후 그림은 외교부 로비에서 밀려나 현재 외교부 1층 제1브리핑 벽면에 걸려있다.

기구한 운명의 이 말그림도 '혼비백산'이라는 오명을 벗은 때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새 출발을 다짐하며 외교가에서 '혼비백산'대신 '각개약진'이라는 별칭을 붙여준 것이다. 각각 다른 방향으로 도약하는 말들이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외교부 직원들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2년 뒤 외교부는 유명환 전 장관의 딸 특혜채용 파문으로 또 한번 '혼비백산'했다. 터도, 그림도 아닌 언제나 사람이 문제였다.


이현정 기자 hjle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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