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 - 부러진 화살
화제의 신간 - 부러진 화살
  • 김선영 기자
  • 입력 2012-02-08 10:22
  • 승인 2012.02.08 10:22
  • 호수 927
  • 3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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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

이 책은 인터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복합적 단면을 응축해서 보여 줄 수 있다고 믿는 젊은 여성 작가 서형의 첫 작품이다. 출판사에서 먼저 석궁 사건을 책으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판단해서 작가를 찾아 나섰는데, 의외로 쉽게 찾았다. 인터넷 검색어에 “석궁 사건”을 입력했더니 석궁 사건의 재판에 대한 모든 기록이 그녀의 블로그(“서형 인터뷰”)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관련 당사자들과의 인터뷰 기록도 풍부했다. 김명호 교수와의 인터뷰는 기본이었다. 김 교수의 친구들, 변호사들, 가족들, 유사 사법 피해자들, 이 사건을 다룬 기자와 피디들의 인터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직 부장판사와 법원 직원과의 인터뷰도 있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지난 2년간 재판을 부지런히 추적했던 작가의 노력이 만든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묘한 책이다. 한 사건의 재판을 다루고 있는데, 우선 그 재판 자체가 묘하다. 저자는 이 재판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마디로 납득하기 어려운 재판이었다. 먼저, 판사 앞에서 피고인이 얼마나 불량스러웠는지 모른다. 내가 직접 참관한 7차 공판 이전에 이미 김 교수는 두 번이나 감치를 받은 바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감치란 법정의 존엄과 질서를 어지럽힌 사람을 유치장이나 교도소에 가두는 것을 말하는데, 4차 공판에서는 ‘이런 개 같은 법정이 어디 있느냐!’라고 했다가, 두 번째는 6차 공판에서 ‘재판장님’ 대신에 ‘김용호 씨’라고 불렀다는 이유에서였다. 피고인의 태도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재판장의 태도도 흥미로웠다. …… 증인으로 나온 박홍우 판사도 말이 왔다 갔다 했다. …… 검사의 표정도 재밌었다. …… 방청객들은 또 어떤가. 재판 중인데도 문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가 정상적인 재판정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이 이상한 2시간짜리 재판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때부터 나는 이 재판에 매달렸고, 지난 2년의 시간 거의 대부분을 여기에 쏟았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법은 장난이 아닌 존재다. 잘못하면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 ‘신세 망치는 일’이 되기 쉽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김명호 교수는 아주 특이한 사례다. 무모하게도 그는 “법대로 해달라”를 외치며 판사와 검사를 향해 달려 나갔기 때문이다.

법대로 하라는데
쩔쩔매는 법관들


수많은 공판을 거치는 동안에도 그는 일관된 요구를 했다. 바로 “있는 법을 지키라”는 것이다.
법을 집행하는 판사, 검사와 법의 보호를 요구하는 사람이 만난 셈인데, 형식논리로만 보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 연출되어야 할 것이다. 피의자가 준법을 바라는데 판사로서는 이보다 좋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랬을까. 거의 최악의 상황이었다. 피의자가 판사, 검사에게 법을 지키라고 호통을 치는 법정의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까.

법을 지키자는 피의자의 주장 앞에서, 판사든 검사든 법의 집행자들이 쩔쩔매는 행태를 보인다면,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법 정의가 법 집행자들에 의해 실천되지 못한다면 법원의 존재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대체 법원이란 무엇이고 재판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흥미로운 한 재판을 소재로 바로 이 질문들을 따져 보고 있다.

김명호 교수는 석궁 사건을 ‘석궁 테러’라고 보는 것에 반대하면서 꼭 ‘석궁 시위’라고 말한다.

“석궁 시위는 국민 저항권 차원의 정당방위이자 법을 묵살한 판사들에 대한 시위”이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하면, 이렇게 말한다. “한 마디로 개소리죠! 사람들이 왜 법을 무서워하나요? 그것은 법 뒤에 공권력이라는 폭력이 있기 때문 아닌가요? 정부의 폭력은 무조건 정당하고 개인의 폭력은 허용되지 않는다? 웃기는 얘기 아닌가요? 폭력이 무조건 정당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인류의 투쟁을 전면 부인하는 것입니다.”

김 교수가 말하는
자신의 사건

그럼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김 교수의 답은 단호하다. “법치국가를 원합니다. 즉 다시 말해서 법만 지키면 엿 같은 윗사람들 눈치 안 봐도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겁니다. 이 엿 같은 나라는 윗사람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법이 철저하게 무시되는 보복을 당하더군요. 저는 단순합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사는 겁니다.”

작가는 김 교수와 이번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가 주는 피곤함은 상식과 기본이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법조계의 문제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건 사소하고 귀여운 불편일 뿐이다. 김 교수의 지나친 옳고 그름의 따짐을 그냥 봐주면 되는 것일 뿐, 더 이상 그걸 핑계로 석궁 사건 재판과 같은 야만과 비이성의 추악한 일에 눈감아서는 안 될 것이라 본다.”

<김선영 기자> ahae@ilyoseoul.co.kr
 

김선영 기자 ah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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