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사기 범죄로 불리는 ‘조희팔 다단계 사기사건’에 버금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차모(38)씨 등 4명은 서울 강남 지역에 부실채권 매입 추심 사업을 하는 법인 5개를 설립한 뒤 투자자를 모아 432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들은 “부실채권을 싼값에 매입한 뒤 회수율을 높이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투자하면 연 18~24% 이자를 확정 지급하겠다”고 속여 투자자들을 끌어 모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이 당시 매입한 부실채권 추심율은 극히 미미해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들은 피해복구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해 집단 대응에 나서고 있다. 비대위는 “우리가 파악한 피해액은 1600억 원에 달한다”며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가 80%다”라고 주장했다.
“부실채권 투자하면 연 18~24% 이자를 확정 지급”투자자 농락
피해자들 대부분 30~40대… 교수, 목사, 사업가, 회사원, 주부 등
차씨 등은 2010년 9월 서울 강남 지역에 부실채권 매입 추심사업을 하는 본사와 법인 5개를 설립해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이들은 “부실채권을 싼값에 매입해 추심하는 사업을 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며 “이 사업에 최소 1000만 원부터 제한 없이 투자하면 1년 후 원금과 연이자 18~24%를 확정적으로 지급하겠다”고 속여 투자를 유치했다. 특히 차씨 등은 “1억 원 이상 투자하면 월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현혹해 피해자들이 거액의 투자금을 맡기게 했다.
보험설계사 통해 영업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보험설계사를 공략해 공격적 영업을 펼쳤다. 차씨 등은 보험설계사들에게 “우리 회사는 짧은 시간 내에 급속도로 성장한 회사로 유학파 출신 임원들로 구성돼 탄탄하다”며 “투자자 한 명을 유치해올 때마다 수수료 7~10%를 줄테니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한 보험설계사당 10~30명에 달하는 투자자를 유치해왔다고 피해자들은 전했다.
피해자들은 “보험 업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높은 수수료였기 때문에 보험설계사들이 현혹됐다”며 “보험설계사들은 자신의 기존 고객들을 차씨 일당의 회사에 투자하게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피해자 상당수는 보험설계사의 소개로 이들 회사에 투자하게 됐다. 투자 만기시점이 도래하지 않은 피해자들 상당수는 아직도 피해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사건이 터진 이후 피해자들은 보험설계사들을 찾아가 단체로 항의했고 일부는 고소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피해자는 “보험설계사를 찾아가니 ‘정말 몰랐다’ ‘나도 투자했는데 사기당했다’며 ‘변호사를 선임을 해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다”며 “보험설계사 중에는 아직도 고객에게 투자사기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일당은 다단계 형태로 투자를 권유했으며 높은 수익률을 최대 무기로 내세워 홍보했다. 이들은 “운명을 바꿀 기회”라며 부실 채권투자 성공 사례를 나열하면서 “부실 채권 투자로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고 유혹했다.
특히 이들은 “100% 원금보장이 된다. 아무리 높은 수익률이라도 안전하지 못하면 위험이 따르는 법”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자산관리 채권은 큰 장점이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또 세금을 회사 측에서 부담해주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투자라면서 투자자들을 부추겼다.
또 파격적인 조건도 제시했다. 이들은 “6개월 전에 해지하면 원금을 그대로 돌려주고, 6개월 이후 만기 전에 해지하면 은행 금리보다 높은 금리를 적용해 지급한다”며 “투자 금액 대비 10~15배 상당의 채권 담보를 제공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회사가 망해도 10원 하나 손해 안보는 셈”이라고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피해자들에 따르면 신용정보회사에 문의해본 결과 피해자들이 받은 채권은 부실채권으로 시효만기 및 회수율이 미미해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또 선순위 투자자들이 해약하거나 계약 만기가 되면 후순위 투자자들의 돈으로 돌려막기 했다. 일당이 채권 추심을 통해 얻은 수익금은 1억 원에 불과해 채권 추심을 통한 수익금으로는 만기 금액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던 것.
일당이 투자자들에게 부실채권 매입한 뒤 회수율을 높여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한 것과는 달리 투자금 대부분을 부동산 매입에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각 지사들도 본사의 자금 모집을 위한 역할을 하는 곳에 불과했다. 각 지사들은 투자자들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해 본사로 송금했을 뿐 개별적인 자금 관리나 채권 추심 등의 업무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려한 말빨’에 속았다
피해자 조모(38)씨는 지인의 권유로 3차례에 걸쳐 모두 5억9000만 원을 투자하고 채권양도양수계약서를 받았다.
조씨는 지인이 “법인 대표이사가 외국인 회사에 있다가 스카우트됐다. 미국에서 MBA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그룹 내에서도 인정받아 빠른 속도로 승진을 했다”며 “나도 3000만 원을 맡겼고 부모님도 5000만 원 맡겼다. 나를 믿고 대표이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눠봐라”고 권유해 투자하게 됐다.
조씨는 우선 1억9000만 원을 투자했다. 일당은 “1억 원 이상의 금액을 투자하면 연 이자를 매월 지급한다”며 “조씨가 맡긴 금액에 대해 연 22% 이자를 매월 지급하고 원금은 1년 후 계약 만기 시 반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조씨는 맡긴 돈에 대한 담보로 채권양수양도 계약서를 담보로 받았다. 조씨에 따르면 일당은 투자자가 직원 가족이거나 1억 원 이상 투자 하면 연 이자를 매달마다 지급했다.
이후 조씨는 “이자를 받아 생활비로 쓸 수 있으니 여윳돈이 있으면 돈을 더 맡겨라”는 지인의 권유에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억5000만 원씩 투자했다.
조씨는 “2건의 투자계약 건에 대해서는 22% 이자를 보장했고, 1건의 투자계약 건에 대해서는 20% 이자를 약속했다”며 “약속한 날짜에 매달마다 이자가 계좌로 입금돼 추가로 투자하게 됐다. 지인의 말만 믿고 회사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채 투자한 것이 후회된다. 이들의 화려한 말빨에 깜빡 속았다”고 말했다.
계약 만기가 다가오자 이 회사 대표이사는 조씨를 불러내 “다음 달이 만기다”며 “채권양수양도계약서가 있어야 원금과 마지막 달 이자를 지급할 수 있으니 채권양수양도계약서를 돌려 달라”고 했다.
또 “이제 채권추심을 하지 않는다. 룸살롱이나 안마시술소 등을 운영하면서 대부사업도 하고 있고, 요양병원 투자사업 등을 하고 있다”며 “내가 개인적으로 차용증을 써줄테니 기존의 채권양수양도계약서를 없애고 사업을 같이 하자”고 권유했다. 의심이 든 조씨가 투자금 전액 반환을 요구하자 대표이사는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조씨가 담보로 제공받은 채권들을 채권추심회사 등을 통해 알아본 결과 담보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씨는 “원금은 전혀 돌려받지 못했고 이자만 7개월 간 받았다”며 “초반에 믿음을 주기 위해 이자를 제날짜에 지급했던 것 같다. 이 일로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이 피해를 입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또 “이들 회사는 중소기업 규모로 인테리어도 화려했다. 직원만 400여 명에 달했다”며 “이들은 시선 분산을 위해 법인을 순차적으로 설립해 각 법인별로 돈을 빼돌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피해자 이모(53·여)씨는 이 회사의 한 법인에서 직원으로 일했다. 이씨에 따르면 이들 회사 직원들은 강남 기획부동산에서 일하던 중년여성들이 많았다. 이씨 역시 기획부동산에서 업무를 하다 지인의 소개로 일하게 됐다.
이씨는 처음에 다단계 회사로 의심했지만, 은행에 10여 년간 근무한 적 있는 동료가 “다단계가 절대 아니다. 회사에서 채권을 봤는데 정상적 채권이었다”며 “월급도 꼬박꼬박 나온다”고 말해 의심을 접었다. 이씨는 “월급이 밀린 적도 없었다”며 “체육대회도 하고 연말이면 호텔에서 송년회도 거창하게 해 부실회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신입으로 들어오고 난 후 첫 고객을 유치하면 대리로 승진됐다. 특히 신입은 의무적으로 1000만 원 이상 계약을 해야 했다.
이씨는 “직원들 대부분 1000만 원 이상 피해를 봤다”며 “직원이 선투자해야 투자자를 끌어오기 쉽다. 투자자에게 ‘나도 투자했다’며 채권양수양도계약서를 보여주면 믿음을 줘 투자를 쉽게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직원들 대부분은 부실채권에 최소 1000만 원 이상투자해야 했다”고 말했다.
투자사기 비관해 자살
비대위에 따르면 2008년에도 차씨 등은 채권매입업을 빙자해 사기를 저지르다 지난해 서울에서 경찰에 단속됐지만 불구속 입건되자 이후에도 범행을 이어왔다.
비대위 측 한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최소 500만 원에서 최대 18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며 “피해자들의 직업은 교수, 목사, 사업가, 회사원, 주부 등으로 30~40대가 주를 이룬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L 전 국회의원 비서가 한 달 동안 재무제표 조사를 하고 일당에게 11억 원을 투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전 재산을 투자한 서민도 적지 않다. 일당이 팀장 등을 통해 담보대출, 카드대출 등으로 투자를 유도해 피해자들의 후유증이 매우 심각하다”며 “드러난 피해자는 빙산의 일각이다.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가 전체의 80%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들의 사기로 거액의 빚이 생긴 한 투자자는 자살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또 “이들이 매입한 부동산은 이미 근저당 설정, 대출 등으로 빈 깡통에 불과하다”며 “차씨 등이 자금의 상당 부분을 빼돌려 은닉한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