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소송, 이겨도 져도 모두 곤란한 사연
제약업계 소송, 이겨도 져도 모두 곤란한 사연
  • 전수영 기자
  • 입력 2012-02-01 09:17
  • 승인 2012.02.01 09:17
  • 호수 926
  • 4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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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참여 제약사, 슈퍼 갑인 정부에 미운털 박히기는 싫어

▲ 뉴시스
정부는 올해 4월 1일부터 일괄적으로 약가를 인하할 계획이다. 그동안 정부는 약값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작업을 벌여왔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는 크게 반발해 집회까지 불사하며 정부의 정책이 제약산업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고 항의했다.

약가를 정부가 쥐고 있는 상황임에도 업계가 이렇게 강경 노선을 선택한 것은 ‘자칫 제약산업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심지어 제약업계는 마지막 일전을 치를 각오로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제약업계는 그 승패에 상관없이 좌불안석이다.

소송에 승소하더라도 이른바 ‘슈퍼 갑’인 정부의 심기를 건드린 이상 이후 어떤 식으로든지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으며 패소하게 되면 수조 원에 이르는 매출 감소를 겪어야 하기 때문에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일괄 약가인하에 대해 제약업계를 대표해 한국제약협회(이하 제약협회)가 대규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제약협회의 소송에 김앤장, 율촌, 태평양, 세종 등 국내 대형 로펌들은 설명회를 갖고 어떻게 이번 소송을 승리로 이끌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제시했다. 업계의 사활이 달린 만큼 제약업계는 신중을 기해 이번 달 안으로 법무법인을 선정하고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제약업계, 눈치 보며 조용히 진행

 

제약업계가 이렇게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약가 통제권을 정부가 쥐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제약업계가 몇 번 반발을 한적이 있기는 하지만 실내 집회를 열거나 소송을 진행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일괄 약가인하가 시행될 경우 제약업계에 미치는 피해가 엄청나게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약업계는 정부를 상대로 진행하는 이번 소송이 조용히 진행되기를 원하고 있으며 언론에서 이 부분을 크게 보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실제로 한 대형제약사 관계자는 “소송 자체가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 이를 두고 언론이 주목하게 되면 나중에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지 몰라 고민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결국 벼랑 끝에 몰려 소송을 진행하기는 하지만 정부에 미운털이 박히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입장인 것이다.

 

실제로 소송과 관련된 기사가 나가면서 정부는 리베이트에 대한 조사의 강도를 높이고 있어 제약업계의 불안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약사 100여 곳만 소송 참여

 

이번 소송에 대정부 상대 소송에 참여하는 제약사는 100여 곳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애초에 예상했던 150곳보다 적은 것으로 정부의 눈치를 보는 제약업계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부의 통제가 유독 심한 제약산업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큰 폭의 매출감소가 있을 것으로 전망됨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체 제약업계가 한목소리를 내 정부와 소송을 벌여도 승소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동안 동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소송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현재 제약협회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제약사들을 소송에 참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으면서도 참여하지 않는 제약사들에게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소송은 법률행위 당사자가 우선이다”라며 “이번 소송에 참여하지 않는 제약사까지 함께 끌고 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번 소송은 절대적, 우월적 지위에 있는 정부를 상대로 벌이는 것으로 결코 쉽지는 않다. 하지만 소송 중이라도 대화의 창구는 계속해서 열어놓을 생각”이라고 전해 냉온적인 방법 모두 구사할 것임을 내비쳤다.


국내-다국적 제약사들의 다른 생각

 

제약협회가 준비하고 있는 소송을 바라보는 국내 제약사와 다국적 제약사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 안에는 동일 성분 약에 대한 동일가격 적용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감기약을 처음으로 개발했던 회사의 감기약(오리지널)과 그 약을 복제하여 만든 감기약(제네릭)의 가격을 똑같이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대부분의 국민들은 가급적 제네릭보다는 오리지널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같은 성분이라도 ‘복제’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들은 약가인하로 인해 매출이 감소한다며 정부 정책에 반발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경우 자신들이 만든 약이 큰 힘 들이지 않고 한국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셈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당장 제네릭의 매출액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국내 제약사들은 약가인하로 인해 매출이 줄어들 것은 명확하지만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 고민이다. 매출액이 감소하게 되면 오랜 시간과 꾸준한 투자가 요구되는 신약개발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


리베이트 카드만 만지작거리는 정부

 

이렇듯 국내 제약산업은 올해 4월을 기점으로 큰 변화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약가인하를 통해 그동안 제약업계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던 리베이트 문화를 척결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현행 약가에는 제약사가 대형병원에 제공하는 리베이트 비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음성적인 거래를 뿌리 뽑을 수 있으며 나아가 국민들에게 좀 더 싸게 약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제약업계에서는 일부에서 은밀히 진행되고 있는 리베이트를 가지고 전체를 재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약값에는 리베이트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제약업계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리베이트 단속에 대한 고삐를 한층 더 세게 쥘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리베이트 단속을 강화해 음성적인 뒷거래를 막겠다는 것에 대해 반대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당장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약값에 리베이트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국민의 부담은 줄어듦과 동시에 건강보험재정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리베이트 단속이라는 칼만을 만지작거리면서 제약업계를 압박한다면 정부의 권위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자칫 제약산업 전반을 침체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가 리베이트 단속의 칼날을 함부로 빼 들어서는 안 되며 일단 뺐다면 엄정한 기준과 일벌백계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어야만 제대로 된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계속해서 리베이트 뿌리 뽑기만을 강조하면서 근간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분명 처방과 같이 리베이트를 크게 줄 일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마련보다는 손쉽게 할 수 있는 단속만 강화하는 것은 결코 제약산업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국민의 이익을  우선으로 염두에 둬야

 

정부와 제약업계 모두는 각자의 주장을 펼치며 ‘국민들의 건강과 편의를 위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정부 측에서는 약값을 인하해 국민들의 부담을 경감시키고 이와 함께 건강보험재정의 안정을 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약가인하의 반대급부로 제약사들의 R&D에 대규모 지원을 통해 국제적 경쟁력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어 다국적 제약사와 어깨를 겨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제약업계 측에서는 갈수록 줄어드는 이익을 더욱 줄인다면 제약업계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으며 특히 정부가 강조하는 신약개발과 같은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장기적 사업에 투자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생존을 위해 제약산업이 아닌 다른 산업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경우 국내 제약사가 하나도 없어 두통약 하나마저도 비싸게 주고 사먹어야 하는 동남아국가들처럼 될 수 있다는 최악의 사태까지로 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와 제약업계가 이렇게 각자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번 일괄 약가인하의 경우 백혈병 치료제처럼 특허기간이 남아 있는 제품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약값으로 인해 고통을 안고 있는 가계에게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아 약가인하의 효과를 직접 피부로 느끼기는 어렵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가 제약협회의 이번 소송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유도 바로 이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도 당장에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며 시간을 갖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자신들은 손해를 만회할 수 있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와 제약업계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순전히 국민들의 몫으로 남았다. 정부와 제약업계 모두는 약가인하 시행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도 진정으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를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국민들의 목소리에 지금까지보다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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