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터진 ‘대포폰’에 청와대 화들짝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현 공직복무관리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또 다시 정국을 달구고 있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청와대 대포폰’ 제공 의혹이 제기되는 등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앞서 지원관실 소속 일부 인사만 기소하는 선에서 이번 사건 수사를 마무리 하는 등 불법사찰의 ‘배후’로 지목된 청와대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배제했다. 이 때문에 여권에서 조차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재부상한 청와대의 사찰 개입 의혹을 따라가 봤다.
정치권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에 대한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일이 이렇게 까지 커진 근본적인 이유는 검찰이 이번사건의 ‘배후’를 명쾌히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7월 5일 총리실의 수사의뢰를 받은 이후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두 달간에 걸쳐 수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7명만을 불법사찰 또는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종결했다. 기소된 7명은 모두 지원관실 소속이다. 당시에도 검찰은 청와대의 사찰 개입 의혹을 비롯해 핵심 의문들을 그대로 남기면서 주변만 맴돌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청와대 개입 정황 ‘속속’
하지만 수사가 마무리 된 이후 청와대의 개입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인규 전 지원관이 재판에서 이강덕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팀장(현 경기지방경찰청장)에게 수시로 구두 보고했다는 진술이 나왔기 때문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건대장에 청와대를 지칭하는 이니셜이 포함된 ‘BH 하명’이라고 기재된 파일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점검1팀 소속 직원의 수첩에도 ‘BH 지시사항’이라는 메모가 적혀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급기야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믿을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제보에 의하면 총리실 점검1팀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 소속 장모 주무관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영구 삭제하기 위해 수원에 있는 컴퓨터 전문 업체로 찾아갈 당시, 대포폰을 이용해 업체와 통화했다는 사실을 검찰이 확인했다”고 폭로했다.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의 배후였다는 의혹에 힘이 실리는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도 지원관실이 대포폰을 사용한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같은 새로운 의혹들에 대해 대포폰이 아닌 차용폰이라며 “수사과정에서 모두 살펴본 내용들이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신경식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지난 4일 “차용폰의 존재 및 증거인멸 행위 등은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인지해 밝혀낸 것이며, 다른 의혹들도 마찬가지”라며 “관련 자료들도 모두 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대포폰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못한 의혹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청와대 건을 일부러 감추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과거관심이 집중돼 있는 사건의 경우 기소 여부와 상관없이 수사 진행상황을 브리핑을 통해 상세히 설명한 전례도 있어 의심을 더하고 있다.
대포폰 사용 어떻게 이뤄졌나?
과거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공무원들이 대포폰으로 사용했던 휴대전화 앞 번호는 ‘0130’이었다. 민간인 사찰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충곤 점검1팀장 등 지원관실 공무원 24명은 모두 앞 번호가 ‘0130’으로 시작되는 휴대전화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미래희망연대 김정 의원은 지난 4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간인 사찰 혐의로 구속된 김모 점검1팀장 등 공무원 24명이 바로 이 휴대폰을 사용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 휴대폰은 총리실이 구입해 제공하는 것으로 신규 구입 예산은 숨겨져 있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이 010이나 011을 사용하지만 ‘0130’은 KT파워텔이 제공하는 통신 서비스로, 휴대전화와 무전기의 기능을 모두 갖춘 것이 특징이다. 한 번에 수천 명과 동시 통화를 할 수 있는 다중통화 기능을 갖췄다. 도·감청이 일반 전화보다 까다롭기 때문에 국정원 직원이나 경비업체 직원 등 특수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주로 쓰인다. 현재 국내에서는 전체 이동통신 이용자의 0.7%인 35만여 명이 사용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복무관리관실(구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최근 ‘청와대 대포폰’ 논란에 휩싸인 식별번호 ‘0130’으로 시작하는 특수 휴대폰 44대에 대한 사용요금 2120만원을 내년도 예산에 책정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이에 대한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검찰의 재수사 여부에 온통 정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야권은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도입을 주장하며 압박에 나섰고, 일부 여권 인사들 역시 재수사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5일 "검찰의 재수사가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재수사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다만 "이른바 '대포폰' 문제를 포함한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과 관련한 야당의 주장에는 상당히 틀린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홍준표 최고위원도 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민간인) 사찰사건에 대한 수사 양태를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BH 하명’ 메모, ‘대포폰’ 지급 사실이 나왔음에도 검찰이 이를 적당히 넘어가려는 것은 옳지 않다”며 “DJ(김대중 전 대통령) 정권 시절에 감찰(사건) 재수사를 한 일이 있듯이 이것은 재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기본적으로 재수사에 나서지 않는 다는 방침이지만 새롭고 명백한 ‘팩트’가 나온다면 재수사에 착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 사건이 정치권의 핫 이슈로 떠오르면서 하반기 정국 주도권에 부담을 느낀 청와대가 자체 조사를 실시해 관련자를 ‘색출’해내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상황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정치권에서 합의만 도출된다면 국정조사나 특검 등에 의한 재수사도 가능하다.
청와대 분위기 신중하면서도 ‘싸늘’
사찰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는 청와대는 지금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청와대를 더욱 곤경에 빠뜨린 것은 청와대 소속 고용노사비서관실의 최모 행정관이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장모 주무관에게 다른 사람 명의의 휴대전화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 됐기 때문이다.
최 행정관은 고용노동부 출신으로, 민간인 사찰의 핵심 배후로 알려진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 장 주무관과 같은 포항출신이다.
청와대는 현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야권의 정치공세에 일일이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청와대는 이번 ‘대포폰 의혹’이 커지자 “사법부의 판단을 좀 더 지켜보겠다”면서 신중한 반응을 보이며 내부 직원들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섣불리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지금 사건이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일단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봐야지 섣불리 이야기 하기는 곤란하다”면서 “G20 정상회의 준비 때문에 청와대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 야권의 공세에 대응하기도 힘든데다 직원들도 불법사찰 건에 대해 섣불리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여당 의원, 국가 상대로 소송”
민간인 불법사찰의 피해자인 김종익(56)씨가 사찰의 핵심인물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의 재판이 끝난 뒤 여당 의원들을 고소할 예정이다.
김씨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는 최강욱 변호사에 따르면 현재 김씨가 고소를 검토 중인 여당 의원은 ‘좌빨 인사’ 등을 언급한 한나라당 조전혁·김무성·고흥길·조해진 의원 등이다.
조 의원은 앞서 “‘뉴스타트한마음’은 이 특혜의 대가로 비자금을 조성해 전 정권 실세들에게 전달했고, 이 회사 대표 김씨는 이 회사의 관리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으며, 같은 당 김 의원은 “김종익씨는 좌파성향의 단체에서 활동을 해온 사람”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김씨 측은 이들 여당 의원들에 대한 형사고소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동시에 제기 할 뿐만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할 예정이다.
앞서 국무총리실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과 관련, 자체 조사를 거쳐 이인규 전 지원관을 비롯한 관련자 3명을 직위해제하고 사건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수사 의뢰를 받은 대검찰청은 즉시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했고, 중앙지검은 사안의 중대성 등을 감안해 형사부, 특수부 검사 등이 포함된 특별수사팀에 사건을 배당, 수사를 진행했다.
이후 검찰은 민간인 불법 사찰을 주도한 이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3명을 포함해 총 7명을 불법사찰 (강요 등)혐의로 기소했다.
한편 이 전 지원관은 지난달 14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징역 2년을 구형받았으며, 11월 15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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