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그룹 H그룹이 무서워한다는 화제의 책
S그룹 H그룹이 무서워한다는 화제의 책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0-11-08 15:01
  • 승인 2010.11.08 15:01
  • 호수 863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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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그룹, C&그룹 비리도 다 이 속에
최근 묵직한 소설책 한권이 재계와 정관계에서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소설 속의 회사들이 S그룹이나 H그룹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니냐며 비슷한 점 찾기에 나서고 있고 소설 속에 묘사된 각종 비리와 부정이 실제 기업들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는 탄식도 나오고 있다. 화제의 책은 ‘태백산맥’을 쓴 중견 작가 조정래의 ‘허수아비춤’. 이 책은 서점에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로 올라섰고 독자들은 책 전편에 가득한 비리와 부정의 수법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최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태광그룹, C&그룹 등과 관련된 각종 의혹도 이 책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기도 하다.

“정치에만 ‘민주화’가 필요한 것인가? 아니다. 경제에도 ‘민주화’가 필요하다. ‘경제민주화’ ‘정치민주화’에 비해 낯선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말뜻은 어렵지 않다. 이 땅의 모든 기업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투명 경영을 하고, 그에 따른 세금을 양심적으로 내고, 그리하여 소비자로서 줄기차게 기업들을 키워온 우리 모두에게 그 혜택이 고루 퍼지고, 또한 튼튼한 복지사회가 구축되어 우리나라가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경제 민주화’다.”


기업비리 묘사에 재계 긴장

‘허수아비춤’ 머리에 나오는 작가의 말이다. 소설은 경제민주화가 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비자금 문제와 전방위 로비, 재산상속과 그룹 승계, 건설사의 분양 비리 등 지금까지 일부 기업이 저질렀던 온갖 비리가 다 등장한다.

소설은 일광그룹이라는 회사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몇년전 비리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는 일광그룹 남회장은 전방위 로비를 벌이기 위해 회장 직속으로 문화개척센터라는 이상한 이름의 조직을 만든다.

여기에는 국정원 검찰의 고위직들이 줄줄이 스카우트 돼 온다. 심지어 정부 서기관도 대상이다. 장래 장관으로 밀 대상이다. “자기네 사장이나 임원으로 있는 사람을 은밀하게 장관으로 미는 거야. 학벌 좋겠다, 행시 출신으로 고급공무원이었겠다, 경제 현장에서 경력까지 쌓았겠다, 마르지 않는 파이프라인의 추천이겠다, 장관 안시킬 이유가 없는거지” 일선 업무 담당자인 7급 공무원까지도 뇌물과 자녀 외국 유학을 미끼로 포섭한다.

이들에게 남회장은 황제다. “회장님은 엄연히 살아 계시는 우리 일광그룹의 황제이셨다. 아니 하늘이고 태양이셨다. 그건 결코 과장도 비아냥도 아니었다. 로마 황제 네로만 엄지손가락을 세웠다가 아래도 꺾는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 생목숨 하나씩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황제는 네로만이 아니다

그런 회사의 직원들은 황제 앞에서 충실한 신하다. “무슨 큰 사고를 냈거나 어던 프로젝트 실패로 회사에 큰 손실을 입힌 임원들을 향해 인사의 칼을 휘두를 때 회장은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었다. 어느 계열사 사장을 ‘너 내려!’ 한마디와 함께 고석도로에 내려놓아 버렸고, 어던 전무를 산길에 내려놓아 버렸으며, 어느 날 사무실 책상을 치워 버리는 것은 그나마 인간적인 조처였다. 회장의 그 칼 춤은 모든 임원들을 늘 긴장시키고, 최선의 충성을 바치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회사에 큰 이익이 되게 성과를 올렸을 때는, 기마이다! 외치며 모두 짐작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거액을 스톡옵션이란 이름으로 투하했다”

그가 로비를 시도한다. 그 로비의 원칙은 이렇다. “첫째 우리 일광의 돈은 벌대로 뒤탈이 생기지 않는다. 둘째 만에 하나 로비 증거가 드러나도 그 상대를 절대 불지 않고 100% 보호한다. 이 두가지 사실이 그들 사회에서 암암리에 알려지게 되면 우리의 일은 땅 짚고 헤엄치기가 되고…”

이들 세계에서 사용하는 은어들도 등장한다. 비금은 비자금, 차계는 차명계좌며 곰가죽, 범가죽, 지리산, 한라산, 백두산은 각각 억, 십억, 백억, 천억, 조 단위의 뇌물 액수다.

이를 통한 로비 대상은 단순히 정 관계만은 아니다. 언론과 대학에도 막대한 돈이 뿌려진다.


비자금 만드는 방법도 다양

비자금을 만드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그 공기 단축 기간의 일용직 노동자들의 인건비에다 부풀린 인건비까지 고스란히 비자금으로 쌓이는 것이 아닌가. (중략) 그뿐만이 아니라 그 많은 원자재 값의 장부 이중기재, 여러 가지 하도급을 주면서 으레껏 챙기는 리베이트 등 건설업에는 긁어모으기 닥 좋게 허술하고 침침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몇십 층을 헤아리는 최고층의 대형 주상복합아파트를 수천세대 지으면서 그 내부 자재들을 전부 외제로 하고 그걸 구매할 때 마다 구매가의 20%를 비자금으로 붙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외국에서 발생한 거래이기 때문에 세무서의 눈길을 깨끗이 피하게 되고 그 막대한 비자금은 회장 개인의 수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검찰도 언론도 돈 앞에 굴복

차명계좌도 만든다. “그 일은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이 술술 진행되었다. 차명인은 그룹 내에 그 많은 임원들이었고, 그들의 인적 사항은 인사부의 컴퓨터에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도장을 새기는 데는 만 원밖에 들지 않았다. 고위 임원들로부터 차명계좌가 만들어져 나갔는데 본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중략)임원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거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장금 임원은 100억 정도, 그 다음 급 임원이 50억 정도식 가진 차명계좌의 주인이 되었다”

일광그룹의 비자금 사건은 드디어 언론에 보도되고 사회문제가 된다.

“일광그룹 총수는 아들에게 그룹의 재산권과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해 80억을 증여했다. 세금 20억을 내고 나머지 60억으로 자기네 계열사 중에서 아직 상장되니 않은 회사 넷을 골라 주식을 헐값에 사들이게 했다. 그런 다음 회사들을 상장시켜 주식을 비싸게 팔아치웠다. 그 돈이 자그마치 950억, 10배가 넘게 둔갑했다. 그들의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더 본격적으로 2단계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다시 서너 개의 계열사를 골라 BW와 CB를 시가보다 훨씬 싸게 발행해서 이미 950억을 확보한 아들에게 넘겨 주었다. 그 사채들은 다시금 10배 이상이 되는 마술을 부렸다. 그렇게 불어난 막대한 돈으로 아들은 그룹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한 회사를 장악했다. 그것으로 일광의 재산권과 경영권 넘기기 작업은 완료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장악한 A회사는 다른 주력 계열사인 B회사의 주식을 이미 일정량 확보하고 있었고(중략) 그 회사들은 소위 순환출자 구조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수법은 이미 실제로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내용의 신문 기사가 나가자 일광그룹은 아연했다. 그러나 대기업이 언론의 입을 막고 검찰의 손발을 묶는 것은 일도 아니다.

우선 언론. 일광그룹의 비리를 보도한 Y 신문사에 대한 공격은 광고로 시작된다. 우선 대대적인 기업 이미지 광고를 하면서 Y 신문만 제외시켜 버린다. 그리고 라이벌 신문을 매수해 남 회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대대적으로 싣게 한다.


컬럼 쓴 대학 교수는 재임용 탈락하고

그런가 하면 일광그룹을 비난하는 칼럼을 쓴 대학 교수는 재임용에서 탈락한다. 대학에는 소문이 퍼진다. “그게 다 뻔한 거잖아. 일광 그룹이 거액을 걸고 배팅했고 학교 측이 똥창을 맞춰서 허 교수님 싹 잘라 버린거!”

몇 년 전에도 일광그룹의 라이벌인 태봉그룹의 비자금 조성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던 매스컴들의 반응이 광고비 앞에서 거품 스러지듯 잠잠해져 버리고 수사에 나선 검찰도 웬 일인지 별다른 반응을 드러내지 않은 적이 있다. 한 검사가 수사 회의 도중 정의감에 불타 ‘철저하게 수사’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가 검찰 내에서 외톨이가 되고 어느 날 갑자기 제주도로 발령이 나버렸었다.

노조 간부를 구스르고 위협해 재판에서 회사에 유리한 증언을 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병든 노모에 자식들 데리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 봤자 평생 임대아파트 신세 못 면해요. (중략) 그러니 우리가 말하는 한가지 일만 하고 공원생활 깨끗이 청산하고 평생 편히 살 수 있도록 팔자 고치라 그거요.”

그룹을 비판하는 시민단체도 공략대상이다. “양심적이고 도덕성이 강하다는 건 그자들의 강점이자 약점이지.(중략) 고등학교 동창끼리 야하게 술을 마시게 되는 거야 쉬운 일이지. 그렇게 되면 그 자는 완전매장되는 거야.”


소설 속 얘기가 지금도 뉴스로

소설은 결론처럼 이런 이야기를 던진다. “태봉그룹의 시범을 보고 그대로 따라한 것이 일광그룹이다. 자기네도 무죄가 될 것이 틀림없으니까. 재벌들이 저지르는 그 불법 행위는 분명 사회를 병들게 하고 나라를 망치는 범죄이고 그 피해는 국민 전체에 씌워진다. (중략) 노예 중에 가장 바보같고 한심스런 노예가 있다. 자기가 노예인 줄 모르는 노예와 짓밟히고 무시당하면서도 그 고통과 비참함을 모르는 노예들이다.”

문화평론가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그리는 힘, 교정하는 힘의 가치’라는 이 책의 해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허수아비춤’은 일반독자들에게는 상상만으로 존재할 뿐인 재벌사회의 이면을 해부해 보여준다. ‘허수아비춤’에서 이 세계는 불현듯 우리에게 하나의 생생한 현실로 등장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매일 신문, 방송, 인터넷을 통해 접하던 그들 세계의 감춰진 ‘진실’을 깨닫게 된다. ‘허수아비춤’에 나오는 이야기가 허무맹랑한가? 그러나 필자는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그것이 현실에서 뉴스로 전달되는 것을 보았다."

작가 조정래의 작가의 말 제목처럼 이 소설은 ‘우리의 자화상 보기’인지도 모른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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