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 어디에 가있나
이명박(MB) 정권의 ‘특수임무’를 전담하다시피 하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개헌론을 설파하고 다닌다. 하지만 개헌의 성사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태다.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개헌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개헌이 차기 권력구조를 뜯어고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의 ‘여야 개헌 밀실협상’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개헌 추진 당위성에 명분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른 개헌론을 따라가 봤다. 한 방송사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자이언트’는 요즘 개헌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이 드라마는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대를 배경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추진하면서 여야 정치인들이 ‘야합’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개헌 추진은 극비리에 밀실에서 진행된다. 개헌 동의안에 서명한 일부 여당 의원들에게 이 명단은 곧 살생부로 돌아오게 된다. 절대자를 추락시키는 일임과 동시에 권력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 개헌 추진 주체만 바뀌었을 뿐 현실정치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시민 발언에 정치권 ‘들썩’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0월 26일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실 정치에서의 정치인들의 이합집산 실태를 폭로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민주당 일부 정치인들과 이재오 특임장관을 비롯한 한나라당 친이계 정치인들이 대통령을 껍데기로 만들고 권력을 분산시키자는 비공개 협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치와 권력기관 운영을 국무총리가 담당하고 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하는 이원집정부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이 주된 협상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재오 장관을 비롯한 주요 당사자들은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 장관의 최근 행보를 보면 초점은 오로지 개헌에만 집중돼 있는 모습이다. 차기 대통령의 권력 분산을 목적으로 하는 개헌안을 들고 유력인사들을 만나 설득하고 다닌다는 전언이 잇따르고 있다.
만나는 인사들마다 개헌을 화두로 설정한다. 물론 비공개 만남이다. 그런데 일이 잘 안 풀리는 눈치다. 집안 곳곳에서 개헌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이 장관은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났다고 한다. 자신의 지역구 공약 추진에 관한 논의가 명목이었지만 목적은 개헌에 있었다. 이 장관은 식사를 겸한 자리에서 오 시장에게 권력 집중형인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권력 분산의 당위성 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시장은 기본적으로 5년 단임제가 국정 운영의 연속성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개헌에 동의한다는 입장이지만 이 자리에서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장관은 또 김문수 경기지사도 만나 개헌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과 김 지사는 과거 운동권 ‘동지’이며, 진보에서 보수로 배를 옮겨 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장관이 오 시장과 김 경기지사를 만나는 이유는 차기 대선 유력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개헌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두 정치 세력이 반대하자 나머지 유력주자인 오 시장과 개헌에 반대하는 입장인 김 지사를 설득해 명분을 쌓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박 전 대표는 개헌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상황이고 손 대표는 개헌에 대해 “논의 자체가 불순하고 온당치 않다”면서 발끈한다.
정두언 ‘국민들 관심없다’ 일갈
박 전 대표와 손 대표의 반대는 곧 ‘개헌 회의론’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 한나라당 내부에서 이런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친이계 핵심인 정두언 최고위원 등 일부 주류층에서 조차 개헌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10월 29일 SBS라디오 ‘서두원의 SBS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이재오 특임장관 등의 개헌 드라이브를 놓고 “(개헌) 그것 때문에 여러 가지 발표도 하고 회의를 하고 그랬는데 전혀 국민들이 알지 못하지 않느냐. 국민들이 관심이 없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여야가 의견일치를 보일 가능성이 없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그렇기 때문에 여야도 어쨌든 국민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그러다 보면 개헌으로 갈 수가 없다. 우리가 국민의 뜻과 반대 방향으로 여야가 의견이 일치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에서도 이와 비슷한 탄식이 흘러나온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개헌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차기 대선주자들의 반대와 국민적 무관심 속에서도 이재오 특임장관은 왜 개헌 드라이브를 유지하는 것일까. ‘시선 돌리기’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연말 예산국회에서 4대강 사업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에 개헌과 사정 등 여러 수단을 총 동원해 국민 관심을 딴 데로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측통은 “차기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와 손학규 대표가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개헌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국민 대다수가 찬성한다면 모르지만 관심도 없지 않느냐. 개헌은 4대강 사업 무사통과를 위한 시건 벌기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손 대표 등 차기 대선 잠룡들 역시 개헌 손익계산서 검토를 마치고 이미 ‘손해’라는 결론을 낸 상태다. 차기 대권이 유력한 상황에서 속빈 강정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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