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년 만에 돌아온 흑룡의 베일을 벗기다
용이 돌아왔다. 2012년은 임진년, 용의 해다. 더욱이 60년 만에 돌아오는 흑룡의 해라 하여 화제를 모았다. 이무기로 천 년을 보내고, 용이 되어 승천하는 이미지는 그 자체로 변화와 성공을 상징하며 새로운 해에 대한 기대를 품게 했다.
용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여러 문화와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오늘날에도 소설, 영화, 게임 등 대중문화에서도 다양하게 변주된다. 이처럼 낯익은 듯하지만, 정작 용의 정체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게 없기에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각종 문헌을 통해 용의 생김새와 생태를 추적하고, 한국 문학에 드러난 용의 특징 및 동서양 용의 차이를 밝힌다. 각 꼭지에는 <미르마당>을 덧붙여, 본문에서 짧게 언급한 이야기를 심화시키기도 하고 곁다리 정보도 담았다. 『삼국유사』부터 지드래곤까지 아우르며 용과 용 문화를 다각도로 조명한 이 책은 우리의 ‘용학(龍學, Dragonology)’에 접근할 수 있는 입문서다.
“수사슴을 닮은 뿔, 강철같이 탄력 있게 뻗친 수염, 당장 낚아챌 듯 날을 세운 발톱, 탐스럽게 일렁거리는 갈기… 허공을 찢으며 천둥처럼 포효하고, 번개 치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천공을 응시한다”
사람들은 ‘용’하면 장엄하고 숭고한 상상의 동물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는 용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일 뿐이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용을 보았다는 사람이 숱하게 많았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용을 보았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30년 이상 용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용은 사라진 것일까. 그저 판타지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저자는 인류가 찾아낸 초월자 가운데 가장 독특한 것이 용이라고 말한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용은 여러 문화와 종교에서 발견된다. 친숙하거나 존경스런 초월자로서 혹은 혐오와 공포의 악마로서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면서 다양한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판타지로만 치부하기엔 아쉬운, 용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도 좋다. 『삼국유사』부터 「처용가」, 「쌍화점」, 『드래곤 라자』, 지드래곤까지 아우르는, 용에 대한 모든 것이 있다.
누구나 안다고 믿지만 잘 모르는 용의 세계
우리는 용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용의 “머리는 낙타와 같고, 뿔은 사슴 같고, 눈은 토끼 같고, 귀는 소와 같고, 목은 뱀 같고, 배는 신(대합 또는 이무기로 해석됨) 같고, 비늘은 잉어 같고, 발톱은 매 같고, 발바닥은 범 같다”(『본초강목』)거나 “독사가 500년이면 이무기 되고, 이무기 천 년이면 용이 된다.”(『술이기』)는 것은 그나마 알려진 편에 속한다. 이 책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용의 귀가 어둡다거나, 용의 목 아래쪽에 반대 방향으로 비늘(역린)이 나 있다거나, 용들이 싸울 때 땀 대신 흘리는 기름(용고)에는 검은색과 자주색이 있다는 등 용의 각 부위에 대한 구체적 설명뿐 아니라 용이 알을 부화하는 방법, 용이 좋아하거나 무서워하는 것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용의 별난운 생태를 다뤘다.
용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면, 우리 문화에서 용은 물을 지키는 ‘물의 신’으로 여겨진다. 용이 물에 산다거나 기우제를 할 때 용신을 모셨다는 기록들과 오늘날까지도 동해안에서 행해지는 ‘용신제’가 그 근거가 된다. 이처럼 비를 관장하는 용은 농경을 기반으로 하는 나라에서 국가를 수호하는 신(호국용)으로도 여겨졌으며, 또 호국 불교를 내세웠던 신라에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호법용)이 호국용으로 전이되기도 했다. 한편 용은 ‘용 됐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표현처럼 비범하고 뛰어난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비범한 인물의 최고봉인 왕에 비유되는 것 또한 필연적이다. 임금의 얼굴은 용안, 임금의 옷은 용포, 임금이 앉는 평상은 용상, 심지어 임금의 눈물을 용루라고도 했다.
하지만 과거에도 모든 사람이 용을 신으로 여기거나 신성한의 동물로만 여기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오늘날에는 용이 수권이나 번개 등 자연현상을 빗댄 것이라든가, 특이한 형태의 물건이나 정체불명의 물고기였으리라 여러 방향으로 추측하기도 하지만 조선 시대에도 이렇게 과학적으로 용의 실체를 벗겼다니, 용은 비밀을 벗기는 재미도 속아 넘어가는 재미도 있는 주제임이 분명하다.
구름과 비 사이에서 움직여 모양이 생겨난 것을 사람들은 용이 하늘로 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것은 용이 아니다. 구름, 안개, 번개, 비 등의 기운이 우연히 그런 모양으로 된 것일 뿐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2년
미르, 새로운 상상력을 위하여
용은 그 자체로도 이야기가 풍부하지만, 문학에도 풍부한 모티프를 제공해왔다. 이 책에서는 용에게 납치를 당한 수로부인을 구하기 위해 지어 부른 「해가」, 용의 아들인 처용이 부른 신라 향가 「처용가」를 비롯해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제건 설화」 등 용에 투영된 욕망, 상징과 인간사가 결부된 작품들을 분석했다.
저자는 이처럼 옛 문헌들을 통해 용을 부활시킬 뿐만 아니라 영화, 소설, 게임 등 대중문화에 나타난 용의 모습 또한 놓치지 않는다. 용이나 드래곤을 한물 간 이야기로 여기는 입장에 대항하며, 서양의 드래곤 판타지 영화, <워 오브 드래곤즈> 등의 게임에서 동서양 용의 공존 가능성을 엿보기도 한다.
<김선영 기자> ahae@ilyoseoul.co.kr
김선영 기자 aha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