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해야 할 곳이 감찰받아

‘민간인 불법 사찰’로 물의를 빚은 총리실 산하 전 공직기강윤리지원관실(현 공직복무관리관)이 감사원을 대상으로 암행감찰 한 의혹이 제기돼 또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중순경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현 지식경제부 제2차관) 휘하로 있을 당시 감사원내 고위인사 관련 개인비위 사실을 입수, 암행 감찰했다는 소문이 그럴듯하게 퍼졌다. 그러나 이 고위인사는 ‘면직’, ‘좌천’, ‘감봉’ 등 징계조치를 당하지 않고 오히려 더 높은 직으로 옮겨간 상황이다. 특히 이 인사가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와 친분이 깊다’는 말이 돌면서 정두언-박영준과 파워게임이 벌어진 게 아니냐는 야권의 의혹마저 일고 있다.
감사원 고위인사에 대한 총리실 암행감찰의 배경은 ‘표적 수사’라는 게 야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통상 감사원 감찰은 청와대 민정팀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암행 감찰을 했다는 의혹 부분은 청와대 민정팀보다 훨씬 윗선에서 ‘하명’을 내린 게 아니냐는 것이 민주당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특히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박영준 현 지식경제부 2차관의 휘하에 있었다는 점에서 박 차관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감사원 고위직 A씨 구설수
그러나 감사원 공보관실에선 공식적으로 “암행감찰을 통해 지적을 받은 바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감사원에선 “암행감찰 속성상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 수 없다”며 “감찰을 받았다면 통보가 왔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이에 본지는 감사원에 근무하는 A씨 사무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공식 답변이 나오지 않았느냐”, “회의중이다”는 등 정확한 답변을 회피했지만 결국은 통화가 이뤄졌다.
A씨는 “암행감찰을 전혀 받은 바 없다”며 “총리실에서 찾아온 적도 없고 만약 했다면 직권 남용이고 내가 가만히 놔두질 않았을 것”이라고 불쾌해 했다. 그는 “과거에도 음행성 소문을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며 “하지만 결국에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언성을 높였다.
나아가 그는 “높은 직에 있으면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짜깁기식 말이 나온다”며 “여기까지 실력으로 올라왔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보직 이동한 것과 관련해 “나는 영전된 케이스”라며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김황식 당시 감사원장에 보고됐고 경질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두언-박영조 파워게임?
한편 정두언 최고위원과 ‘앙숙’관계인 박영준 2차관 사이의 ‘파워 게임’으로 구설수에 오른 게 아니냐는 지적에 그는 발끈했다. A씨는 “정두언 의원과는 공부 때문에 알게 된 사이고 박 차관은 대학 후배로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다”며 “하지만 개인적이 친분은 전혀 없어 사적으로 만나질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고위인사 B씨 역시 “암행감찰 얘기는 처음 듣는다”며 “감사원은 기본적으로 청와대 민정팀에서 감찰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한편 총리실의 답변도 애매모호했다. 총리실 공직윤리관실이 피감기관으로 있는 정무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감사원 암행감찰’건 관련 총리실 담당자에게 질의했는데 ‘암행 감찰을 할 수는 있다’”며 “그러나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본지에 밝혔다.
감사원!!그런일 없다!! 부인
또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근무했던 K씨 역시 ‘잘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지와 통화에서 “감사원에 대해 내가 직접 암행 감찰을 한 적은 없다”며 “그러나 담당하는 부서가 틀려서 했다고 하더라도 알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고위직에 근무하는 A씨는 전형적인 감사원 ‘토박이’ 출신이다. 영남출신으로 김대중 정권 시절 감사원에 입사한 그는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승승장구한 케이스다.
이명박 정권 출범 당시 인수위에도 몸을 담았다. 하지만 정두언계나 박영준계도 아닌 고위 인사가 ‘구설수’에 오른 것에 대해선 민주당에선 여전히 의구심을 표출하고 있다.
민주당 정무위 한 관계자는 “한창 정두언과 박영준이 ‘인사’를 두고 파워게임을 벌이면서 ‘두 인사 모두 친분이 있는 A씨’가 움직이질 않자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냐”며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으로 권력을 쥔 사람들이 아킬레스건을 잡고 ‘패거리 정치’를 강요한 것 같다”고 평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김황식은 ‘마패 총리’, 벌벌 떠는 공무원들
공직윤리지원관에서 공직복무관리관 대체
‘민간인 불법사찰’로 물의를 빚은 총리실이 공직자윤리지원관실 대신 공직복무관리관실로 대체한 지 3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총리실에선 공직복무관실의 구체적이 업무매뉴얼을 작성하는 등 직무수행을 위한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한편 직원들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을 통해 업무수행이 이뤄지도록 했다.
특히 업무매뉴얼 준수 여부를 점검하는 준법감시관을 배치하고 과거 국무총리실장 직속으로 설치된 이 부서를 사무차장 소속으로 변경, 내부 통제 기능을 강화했다. 또한 7개팀으로 구성된 조직을 줄이고 42명의 인원도 감축해 초대 공직윤리지원관에 류충렬 일반행정정책관을 임명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간인 불법 사찰’로 존폐 논란이 일었지만 김황식 총리는 지난 10월 20일 “조직 자체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 총리는 “공직기강 확립을 위한 행정지도·감독을 하는 총리실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며 ‘폐지론’을 일축했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선 김 총리가 MB 정권 후반기에 취임하면서 ‘공직기강 확립’에 강경하게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사회에선 김 총리가 핵심 부서를 ‘정보 1, 2, 3팀’으로 나눠 이미 공직사회에 대한 ‘암행감찰’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몸을 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임기말 공직사회가 흔들리고 특정 주자에 대한 ‘줄서기 현상’을 막기 위해 감사원장 출신인 김 원장을 임명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이 대통령이 임기말 찾아오는 권력 누수 현상을 막기 위해 김 총리에게 ‘마패 총리’로서 특명을 줬다는 해석이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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