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기부재단에 대한 궁금증이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안 원장은 지난해 11월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의 주식 절반을 사회 환원에 쓰겠다고 밝히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지난달 1일 기자회견을 통해 기부를 사회적으로 확대 재생산하고 여러 사람이 동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큰 틀의 구상만을 밝힌 상태다.
안 원장은 자신이 생각하는 기부의 형태에 대해 △고액기부자와 일반서민의 참여 △나눠주는 방식이 아닌 다수의 참여 등이라고 밝혔다. 일부가 아닌 다수, 일방적 시혜가 아닌 ‘참여’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마이크로 파이낸스(소액대출)’는 고민의 하나일 뿐”이라며 “새로운 재단은 단순히 돈을 나눠주는 장학재단이 아니라 보다 발전된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종합하면 안 원장은 별도의 재단을 만들고 기부운동을 ‘노블리스 오블리주’ 차원이 아니라 범국민적 차원에서 전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기부문화의 사회적 확산을 꾀한다는 의도다. 아울러 통상적으로 기부재단이 기금에 대한 이자로 운영되는 형태에서 벗어나 기금을 종자돈으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안 원장은 현재 전문가들과 외국의 다양한 기부모델에 대해 검토하고 있고, 특히 국내법과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연구소 관계자는 “현재는 검토 단계여서 확정적인 방안이 나오지는 않았다”며 “외국에 다양한 모델이 있는데 법률적인 제약이 많아 전문가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안 원장은 8일 미국으로 건너가 기부재단 설립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를 만난다. 빌 게이츠는 세계 최대의 기부재단인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의 설립자다.
안 원장 측 관계자는 지난 5일 “안 원장이 11일(현지시간) 시애틀에 들러 재단 사무실에서 빌 게이츠 회장과 면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지난해 안철수연구소 보유 지분의 절반(현재 3000억 원 상당)을 사회에 환원키로 결정하면서 기부재단 모델로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생각했다고 한다. 안 원장의 한 지인은 “재단 설립에 따른 법률적 규제가 너무 많아 고민이 적지 않았다”며 “게이츠 회장을 만나 재단 설립 형태나 운영에 관한 여러 조언을 듣고 벤치마킹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안 원장이 빌 게이츠에게 재단 설립의 조언을 얻음은 물론, 직접 재단 기부를 이끌어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5일 귀국하는 안 원장은 이달 말쯤 기자회견 등을 통해 재단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법률 자문역인 강인철 변호사도 “게이츠 회장의 조언을 반영할 생각”이라고 했다. 게이츠 재단은 저개발국에선 에이즈·말라리아 퇴치에, 미국에선 교육기회 확대에 매년 30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다. 안 원장도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재능을 키워가지 못하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에 쓰이면 좋겠다”며 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또한 안철수 재단에 동참할 국내 거물급 정재계 인사들은 어느 정도 섭외가 끝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수십만 명의 일반 대중이 참여하는 등 재단이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며 효과를 극대화할 방안을 찾고 있어 시일이 좀 더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원장 측은 그러나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며 곧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고 본다”며 “그 시기는 2월쯤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안 원장 재단 설립 움직임에 다시금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이 이사장을 지낸 정수장학회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정수장학회는 5.16쿠데타 직후 1962년 부산 지역 언론인 김지태 씨가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구속된 상황에서, 김 씨가 소유하고 있던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사, 부산문화방송을 국가에 헌납토록 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당시 이름은 5.16장학회였고, 82년 정수장학회로 이름을 바꿨다. 정수장학회 재산은 부산일보 주식의 100%, MBC 주식의 30%,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부지 등 최소한 1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액수다.
박 위원장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지난 2005년 자신이 10여 년간 이사장을 맡았던 정수장학회 이사장 직을 그만 뒀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5.16쿠데타 이후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강탈 사건 진상 조사를 하겠다고 밝히자 박 전 대표가 “정치탄압”이라고 반발하며 이사장직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유신 시절 청와대에서 자신을 보좌하던 최필립 전 리비아 대사를 후임 이사장으로 지목해 사실상 운영권을 놓지 않았다.
국정원은 진상 조사 결과 정수장학회의 전신, 부일장학회가 사실 ‘강탈’ 당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2007년에는 이 결과를 토대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1962년 국가에 ‘강제 헌납’된 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 재산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거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부일장학회의 원소유주인 고 김지태 씨 유족들에게 소유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에서는 “정수장학회는 결과적으로 국가가 운영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대선 경선에 참여하고 있던 박 전 대표는 이 권고에 대해 “어거지가 많다”고 맹비난했다. 박 전 대표는 “(정수장학회는)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이미 사회에 환원된 것”이라며 “또 환원하란 것은 어폐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수장학회의 설립 과정의 정당성을 주장한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애초 설립 과정 등을 봤을 때 ‘사회 환원’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수장학회에 대해 회고록에서 “부정축재의 수단”이라고 규정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범죄의 증거이자 장물”이라고 했다.
박근혜 “재단 경영 관여한 적 없다”
박 위원장이 지난달 비대위원장을 맡자마자 야당은 “박 위원장은 정수장학회·육영재단·영남대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당치 않은 방법으로 취득하고 박 위원장이 상속받은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그럼에도 박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언론 인터뷰에서 “정수장학회는 이미 사회에 환원된 공익재단으로 2005년 퇴임 이후 재단 경영에 일절 관여한 적도 없다”며 “부산일보가 하는 일에 제가 관여를 한 적도 없고 지금도 하지 않는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박 위원장 측근들은 대선을 앞두고 정수장학회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 측근은 부산일보 사태가 터진 지난해 말 박 위원장에게 “실상과 다르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각하니 정수장학회를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정수장학회의 부산일보 지분을 정리하고 부산일보를 시민주 형태로 전환하는 방안, 최필립 이사장이 물러나는 방안 등을 제시한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정수장학회의 지분 정리나 이사장 거취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위원장 측 관계자는 “반복되는 정수장학회 논란도 답답하지만 해결책이 없다는 게 더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이 직접 설득해 영입한 이준석 한나라당 비대위원조차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박 위원장도 털고 지나갈 것은 지나가야 한다”면서 “박 위원장이 자신과 관련된 의혹이 타당성 있는 경우에도 검증을 피한다면 저도 유권자로서 표를 행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 쪽이 법적으로 완전히 손을 뗐다고 주장해도 국민들이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라는 뜻이다.
박 전 대표와 직접 연관은 없지만 육영재단 운영 문제도 심각하다. 백원우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2005년 “육영재단은 고(故) 육영수 여사에 의해 기부출연된 재산에 의해 형성된 재단이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체의 출연으로 만들어진 재단으로 차녀인 박근령과 그 측근에 의해 사유화된다면 이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불과할 뿐”이라며 재단 환수를 주장하기도 했었다.
육영재단은 박 전 대표가 육 여사 서거 이후 1990년까지 이사장을 맡았었다. 이후 동생 박근령 씨와 박지만 씨가 육영재단 경영권 등 문제로 분쟁을 이어왔고, 급기야 최근에는 이 분쟁과 관련해 박 전 대표의 5촌 조카들 사이에서 칼부림이 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 재산을 출연해 만든 청계재단도 안철수 재단 설립과 여러모로 비교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2007년 대선 직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도곡동 땅과 BBK, 다스 등의 실소유주가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인 상태였다. 재산 환원은 일종의 선거 전략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대통령은 이 약속에 따라 취임 2년차인 2009년 8월 331억 원을 출연해 청계재단을 설립했다. 이 대통령의 대학 동기인 송정호 전 법무장관이 이사장, 사위인 이상주 변호사가 이사, 고교 동창인 김창대 씨가 감사를 맡는 등 이 대통령의 측근·친인척이 운영하고 있다.
재단설립이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닌 ‘꼼수기부’라는 비판도 나온다.
민주통합당 한 관계자는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청계재단이 지급하고 있는 장학금 액수가 총수익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반면 공익재단이 받게 돼 있는 세금우대 혜택은 다 받고 있다”면서 “내곡동 MB사저 부동산투기처럼 청계재단도 MB일가의 재테크-세테크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말 이 대통령의 실소유주 논란이 있는 다스 지분을 재단에 편입한 것도 논란이 됐다.
정몽준 2000억 출연, ‘애걔’
정몽준 한나라당 전 대표는 자신의 사재 2000억 원을 범현대가(家)와 함께 ‘아산나눔재단’에 출연했다. 그러나 정 전 대표는 상속받은 부를 토대로 재산을 쌓아왔었고, 2000억 원 출연에 대해서도 정 전 대표 재산이 약 3조 6000억 원(2011년 공직자 재산신고 기준)에 비하면 ‘약하다’는 평이 있다.
안철수 원장의 기부액이 3000억에 달하면서 정 전 대표의 2000억이 묻히고 있는 것이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