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이 마무리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고승덕 의원이 폭로한 ‘전대 돈봉투’ 사건은 ‘도로 차떼기당’이라는 비아냥까지 일게 하고 있다.
더욱이 석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다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쇄신의 동력마저 상실케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불리던 서울 강남3구와 PK(부산·경남) 지역도 민심이 등을 돌린 상황이라 수성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연유로 한나라당이 결국 TK(대구·경북) 당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한나라당이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 수 있을지 짚어봤다.
각종 여론조사, 한나라 참패
새해를 맞아 실시된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2일 SBS에 따르면, TNS코리아에 의뢰해 지난달 29~30일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나라당 후보와 야권단일 후보가 1대 1로 맞붙었을 경우 한나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은 30.7%에 그쳤고, 야권단일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은 44.2%나 됐다. 지역별로는 TK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야당 후보 지지가 높게 나왔다.
<서울경제신문>과 한국리서치가 지난달 18~21일 유권자 1천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역시 한나라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은 20.5%에 그친 반면, 민주통합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28.4%로 조사됐다. 통합진보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은 6.1%, 무소속 후보 22.0%, 모름·무응답 21.6%였다.
<한국경제신문>과 GH코리아가 지난달 28~29일 19세 이상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온라인·전화 여론조사 결과도 ‘새 인물로 바꾸는 게 좋다’는 응답(64.5%)이 ‘현 의원을 뽑는 것이 좋다’(18.0%)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과반 의석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에게는 반갑지 않은 결과다.
<조선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2월 26~28일에 전국 성인 1천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치지표 여론조사 결과, ‘내년 4월 총선 지지후보의 정당’은 민주통합당 34.9%, 한나라당 32.7%, 통합진보당 6.9%, 자유선진당 2.3%의 순이었다.
총선의 승부처인 수도권의 한나라당 심판 여론도 높았다.
수도권 신문인 <기호일보>가 경기-인천 유권자 1천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19~20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한나라당 후보와 야권 단일후보간 양자대결시 야권 단일후보를 찍겠다는 유권자가 38.8%로, 한나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29.0%)를 압도했다. 무응답은 32.2%였다.
야권, PK 교두보 마련 총력
한나라당이 흔들리고 있는 사이 민주통합당은 PK지역 교두보 마련을 위해 문재인·김정길·문성근 등 친노 인사가 총출동, 부산상륙작전에 나섰다.
여기에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입당 의사를 밝힘에 따라 경남에서의 든든한 지원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김경수 전 봉하재단 사무국장의 김해을 출마도 부산에서의 바람몰이를 경남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PK지역은 과거 민주화 세력의 지역이었으나 3당 합당 이후 보수화됐고 충청, TK, PK가 호남을 고립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도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대한 ‘호남 고립현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과 대선에서는 역으로 한나라당을 TK에 고립시키겠다는 게 야권의 전략이다.
그 핵심이 PK지역의 수복이다. 이를 통해 호남의 고립을 깨고 3당 합당 이전 상황으로 왜곡된 정치구조를 바로잡겠다는 것이 친노세력의 복안이다.
김두관 지사는 “총선에서 부산·경남·울산의 41석 가운데 15석을 비한나라당이 획득하면 전국적으로 야권이 다수당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 역시 “영남에서 15석을 차지하면 한나라당은 TK에서 고립된다”고 말했다.
TK당 전락한다… 위기감 급습
이렇듯 한나라당이 잇단 악재 등으로 인해 TK당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이상돈 한나라당 비대위원은 지난 4일 “‘TK 자민련’으로 가면 한나라당은 망한다. 그런 식으로 국민이 인식하면 수도권이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이 비대위원은 지난해 4·27 재보궐선거 이후 “4·27 재·보선은 ‘TK 구태 정치’의 몰락을 예고한 것”이라며 “1990년에 있었던 3당 합당이라는 정계 개편은 호남을 인위적으로 고립시켰다. 그런데 2010년 6·2 지방선거와 이번 4·27 재·보선은 TK가 고립되는 정반대 양상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번은 인위적 정계 개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거를 거쳐서 그렇게 됐다는 사실이 특히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친박계 한 의원은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한나라당이 비상 상황이기 때문에 비대위를 출범시켰다는 사실을 다들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런 상태로 쇄신이 지지부진해진다고 하면 총선에서 100석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오고, 결국 TK당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수’ 삭제 계기삼아 친이계 결집·반발
이런 위기감 속에서 한나라당 비대위가 ‘쇄신’ 방향을 내놓고 있지만 오히려 내홍만 일으키는 모양새다.
특히 비대위가 지난 5일 정강·정책의 ‘보수’ 표현 삭제 안을 검토하면서 내홍이 심화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친이(친이명박)계들 사이에선 탈당설까지 불거졌다. 보수단체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강력 반발했다.
비대위 정책쇄신 분과는 이날 회의에서 ‘보수’라는 단어를 정강·정책에서 삭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김종인 분과위원장은 “보수와 진보 같은 이념을 초월해 전 국민을 대변하기 위해 ‘보수’ 표현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박근혜 위원장은 ‘모두를 아우르는 정당이 되겠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며 “어느 특정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해 박 위원장도 ‘보수’ 삭제에 동의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친이계와 보수인사들은 김 위원장의 이 같은 주장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홍준표 전 대표는 “부패한 보수·탐욕적 보수가 문제지, 참 보수가 왜 문제가 되는 것이냐”면서 “보수를 삭제하면 당 정체성이 사라진다”고 비판했다.
정몽준 전 대표도 “보수를 삭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럼 민주통합당 아니냐. 한나라당의 가치도 없이 그럴 수 있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문수 경기지사 역시 “(보수를 삭제하는 건) 당의 정체성과 정당성이 없다”고 말했다.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장제원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급기야 중도보수 가치마저 표에 판다니, 이제 정말 떠나야겠네요”라고 했고, 전여옥 의원도 “아예 한나라당 철거반장으로 왔다고 이야기하시지”라며 김 위원장을 비난했다. 총선 물갈이론으로 촉발된 내분이 ‘보수’ 삭제를 두고 확산되면서 한나라당 내부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당 밖에선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지금 비대위의 행태는 중도로 버린 몸을 아예 좌익 홍등가에 내다 팔겠다는 자세다. 이념과 가치집단인 정당이 적대적 외부인사들을 불러들여 혁신의 전권을 주는 건 노예근성의 발로이고 자아부정”이라며 “한나라당은 계파싸움이 아니라 이념-노선투쟁을 해야 한다”고 맹비난했다.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회장 박창달)도 ‘한나라당의 보수 삭제, 천부당 만부당하다’는 성명서를 통해 “대한민국 보수 지지층을 대표해 보수의 가치를 지키고 계승해야할 한나라당이 당의 헌법격인 정강·정책에서 ‘보수’라는 표현을 삭제하려는 것은 대한민국 보수 세력을 모욕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비판이 쏟아지자, 한 비대위원은 “자칫 비박·반박계 의원들이 ‘보수 신당’을 만들겠다며 탈당할 명분을 주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 전 대표와 이재오 의원, 김문수 지사 등 당내 대권 예비주자들은 각종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비대위 체제의 문제점을 논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MB와 선긋기로 2040-수도권 잡는다
한나라당 비대위는 ‘큰 시장, 작은 정부’로 대변되는 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도 수정할 계획이다. MB정부와 확실한 선긋기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정강·정책분과 자문위원인 권영진 의원은 5일 “성장, 개방 일변도가 아닌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 발전이 중요한 정책적 가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의원은 또 “양극화 문제 대처를 위해 공정경쟁, 경제정의 등의 가치를 강조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폐해로 꼽히는 양극화 문제 해결에도 무게를 실은 것이다.
재벌 개혁도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2009년 폐지된 출자총액제한제의 부활, 금융·산업 자본 분리 강화, 법인세 최고구간 신설 등 대기업 규제 강화 정책이 나올 수도 있다.
정강·정책에는 복지 부문과 관련해 ‘재정적으로도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는 자생복지체계’라는 보수적 복지 개념 대신 박 비대위원장이 강조하는 ‘평생(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라는 적극적 표현이 들어갈 전망이다.
대북정책도 전향적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권 의원은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의 변화와 시대정신 등을 반영해 정강·정책을 새롭게 보완해 개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대북정책은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새로운 통일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유연한 정책 기조를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한, 비대위 인재영입 분과위는 ‘인재영입을 위한 제4분과 보고’ 문건에서 ▲ 20~30대 지역구 공천비율을 37%까지 확대하고 ▲ 성별 인구비율에 따라 지역구 공천비율을 조정하며 ▲ 비례대표의 경우 직업군별 인구비율로 공천토록 제안했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