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복회’ ‘만덕계’ 등 수십억에서 수백억 대의 이른바 ‘귀족계’ 사기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상류층뿐 아니라 서민층까지도 귀족계에 가입하는 현상이 번지고 있다. 경기침체로 주식과 부동산에서 큰 재미를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적금 수익도 낮기 때문이다. 특히 귀족계의 경우 상류층을 중심으로 조직되는데 불입금액이 커서 계가 깨질 경우 대형사고가 된다. 계주의 사기 등으로 계가 깨지면 계원들은 심각한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입는데 심지어 원금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날리는 경우도 있다. 계가 깨지면 곗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요원해 심각한 2차 피해가 양산된다. 가정이 파탄나기도 하고 신체적ㆍ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또 고리의 사채로 피해액을 보전하려다 빚의 늪에 빠지는 계원들도 있다. 이런 가운데 강남 일대에서 최근 와해된 한 ‘귀족계’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귀족계 하다 가정부 된 부유층 사모님 끝내 자살
계주·계원 연이은 죽음…흉흉한 소문 확산
강남 복부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던 귀족계 중의 하나였던 ○○○계모임이 최근 깨졌다. 이후 이 계모임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둘러싸고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 계모임의 계주와 계원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이 하나의 연결고리에 엮어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계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곗돈 못내 가정부로 내몰려
여유 돈을 투자할 만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A씨(여ㆍ50대 추정)는 강남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던 ○○○계모임에 가입하게 됐다. 고수익을 보장하는 귀족계에 가입하는 것이 주식 등에 투자하는 것 보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상황이 닥치면서 A씨는 곤경에 처했다. A씨가 계에 가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적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돼 나머지 불입금액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러자 계주 B(남ㆍ50대 추정)씨는 “곗돈만 받아가고 왜 돈을 안내느냐. 1억을 못 냈으니 다음 회에는 어떤 식으로 해서든 채워 넣어라”며 A씨를 윽박질렀다. B씨의 호된 독촉에 A씨는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A씨의 가정형편이 최근 급격히 기운 것을 알고 있었던 지인들은 A씨의 도움 요청을 외면했다. 돈을 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A씨는 급기야 사채에도 손을 댔지만 억대의 돈을 마련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B씨의 독촉에다 악덕사채업자의 시달림까지 받는 처지로 내몰렸다.
A씨가 “형편이 어려워져 도저히 돈을 마련할 수가 없으니 양해해 달라”며 사정했지만 B씨는 “곗돈만 타가고 돈을 못 내면 계가 깨질 수 있다. 계가 깨지면 모든 질책이 나한테 돌아 올 텐데 어떻게 책임질거냐”며 길길이 뛰며 화를 냈다.
결국 A씨가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B씨가 A씨의 불입금액을 조건부로 대신 내줬다. 조건은 바로 ‘A씨가 B씨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것’이었다. 선택권이 없었던 A씨는 B씨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 B씨가 내건 ‘가정부 조건’은 이 계모임의 계원이었던 C씨(남ㆍ50대추정)의 제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 귀부인이었던 A씨는 자신이 가정부가 되자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더구나 B씨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했고, A씨가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그것 하나 똑바로 못하냐’ ‘할 줄 아는 게 대체 뭐가 있느냐’고 윽박질러 A씨는 모멸감에 시달렸다.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은 A씨의 희망은 돈을 빨리 갚고 B씨의 집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지만 미래는 캄캄했다. 한번 기울기 시작한 A씨의 경제 상황은 이미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무너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B씨의 폭언은 수위를 더해갔다. B씨는 ‘거머리’ ‘밥벌레’ ‘네 주제에 알아서 낮춰라’며 A씨를 비하했다.
이미 재산을 잃고 가정부로 일하며 우울증에 시달렸던 A씨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악몽같은 하루하루를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A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줄줄이 사망 미스터리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B씨와 C씨는 아연실색했다. 한 계원에 따르면 이들이 A씨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이유는 사실 A씨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B씨가 폭언을 퍼붓고 하대를 했지만, A씨가 내지 못한 불입금액을 대신 내주고 가정부로 들인 것은 A씨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A씨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C씨는 종종 B씨의 집에 직접 찾아가 A씨의 근황을 살폈다고 한다. C씨가 B씨 집에 오는 날이면 세 사람이 함께 만나 사적인 자리를 가지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A씨의 자살 이후 B씨는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B씨는 A씨의 문상을 다녀온 이후 집안 곳곳에서 A씨의 환영을 환청을 들으면서 히스테릭한 행동을 했다. 밤에 잠들지 못하고 이방 저방 돌아다니며 “A씨가 날 보고 있는 것 같다”, “A씨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빨리 찾아내라”며 가족들을 못살게 굴었다. 또 방구석에 앉아 “너 왜 왔냐. 죽은 게 아니었냐”며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잠도 자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A씨를 찾아대던 B씨도 자살했다. A씨가 목숨을 끊은 지 불과 며칠만의 일이었다.
A씨 죽음 이후 일어난 석연치 않은 죽음은 이뿐 아니었다. 밤늦게 A씨의 문상을 갔던 C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또 A씨에게 돈을 빌려줬던 사채업자도 교통사고를 당해 현재 의식불명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채업자는 A씨가 돈을 갚지 못하자 돈을 갚으라고 수시로 독촉ㆍ협박해 A씨가 심한 속앓이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한 계원은 “계에서 일어난 사망사건들은 개개인 각각의 사망사건일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를 조사한 경찰은 별개의 사건으로 판단해 처리했으며,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