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표 던질 시기 저울질 중

이명박(MB) 정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정치권의 시선은 차기 대선주자로 급선회 하고 있다. 여야 각 진영마다 대선주자를 키우려는 물밑작업 움직임이 치열하다. 이런 가운데 김문수 경기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3위를 다투며 여권의 유력한 ‘박근혜 대항마’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오 시장은 지금까지 정중동의 행보를 보여 오다 최근 미세한 기류 변화를 보여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 준비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오 시장의 추후 거취에 따라 여권 친이계의 대선 구도 변화가 불가피한만큼 정치권의 시선은 오 시장에게로 쏠리는 형국이다. 오 시장의 숨겨진 속내를 파헤쳐 봤다.
얼마 전까지 오세훈 서울시장이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 역력했다.
첫 번째 딜레마는 2012대선 출마 여부이고 두 번째 딜레마는 출사표를 던질 ‘시기론’이다. 출마를 염두 해 두고 있다면 2012년 차기와 2017년 차 차기를 놓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차기 출마를 선택하면 임기 중반에 서울시장직을 사퇴해야 한다. 시정공백 사태로 인한 역풍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오 시장이 대선 자체에 뜻을 접거나 차 차기를 선택했을 경우 2014년 지방선거에서 3선 도전에 성공해야 한다는 무리수를 둬야 한다. 차 차기 역시 3선에 성공한다 해도 임기 1년여를 남겨두고 시장 직을 내놔야 한다.
오 시장은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와 막판까지 박빙의 승부를 벌인 끝에 가까스로 재선 고지에 올랐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21곳을 민주당에 내주고 얻은 결과였다. 따라서 오 시장에게 2014년 지방선거를 또 한 번 치러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오 시장은 그동안 대선 출마설에 관해서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며 “서울시장 임기를 충실히 다 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또한 시장 선거전에서도 임기 완주를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여권의 유력한 잠룡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오 시장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꾸준히 대선주자로 거론돼 온 것이 사실이다.
손·박구도 굳혀지나 친이 조바심
최근 이같은 오 시장의 대선 관련 기류에 변화가 감지되면서 정가의 촉각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오 시장 측이 최근 실무 참모진을 불러놓고 시장 임기와 관련된 단정적인 언급은 피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면서부터다. 표면적으로는 시장직에 전념하겠다는 뜻이라지만 다른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오 시장이 2012년 차기 대선에 출마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는 전망이 급격히 부상하면서 일단 이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최근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0·3 전당대회 이후 지지율이 20%대로 급상승, 돌풍을 일으키며 야권의 유력한 ‘박근혜 대항마’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대선 구도가 박근혜 대 손학규로 몰아가는 듯한 논조가 여의도는 물론 언론에서도 큰 흐름이 되고 있는 형세다. 이는 한나라당 친이계 입장에서는 존립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강한 압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사실 수도권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손학규 대세론’은 여권 내 ‘박근혜 대세론’에 기름을 부으며 친이 친박 구도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수도권 출신 여당 의원 상당수가 친이계인 점을 감안하면 차기 총선 공천에 불안감을 느낀 수도권 출신 의원들이 박 전 대표에 기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나라당 친이계 핵심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근혜에 맞설 대항마를 이제 띄울 시기가 왔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그 유력한 후보가 지지율면에서 박 전 대표 뒤를 이어 2, 3위를 달리는 ‘오세훈’, ‘김문수’ 카드임은 물론이다. 새로운 제3의 카드를 찾는 움직임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권에서는 현실적으로 이 두 카드 중 친이계가 어떤 선택을 할지를 주목하고 있다.
김문수 지사는 그동안 MB정권을 향해 소신발언을 이어가며 대립각을 세워 왔다. 그동안에도 수도권규제완화와 세종시 문제 등 현안에 있어 뜻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 왔다. MB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새로운 대권주자로 확실히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누구나 알 수 있는 언동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김 지사는 야당 의원들에게 대권행보와 관련해 강한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MB가 ‘불도저’ 같은 이미지로 인해 소통의 부재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동안 딱딱한 이미지를 보여 왔던 김 지사가 친이계의 ‘콜’을 받기에는 몇가지 부족한 점이 있어 보인다. MB는 그동안 대운하, 4대강 사업 등을 추진하며 범국민 적 비판에 직면해 왔기 때문에 비슷한 유형의 인물을 내세우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오 시장은 부드러운 이미지와 40대 젊은 시장이라는 것이 강점으로 부각된다. 친이계 일부에서는 강경 이미지의 김 지사보다는 이런 이미지의 오 시장을 ‘참신한 대선후보’로 끌고 간다는 시나리오를 머리 속에 그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여의도 정가의 일반적 관측이다.
너무 빠르면 뭇매 늦으면 버스 지나간 후
더구나 여기에 또 하나의 상황이 가세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30%대의 지지율로 1위를 달리고 있고 김문수 경기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10%대를 오가며 그 뒤를 추격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남녀 5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보수계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속적인 상승세로 31.8%를 기록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11.2%로 2위, 오세훈 서울시장이 8.5%로 그 뒤를 이었다. 이 밖에 보수계의 유력주자군으로는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5.0%),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4.4%),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4.1%),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3.6%),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3.2%) 순이었다. 기타·무응답자는 29.2%였다.
이 가운데 김 지사는 9월 셋째 주 실시한 조사보다 지지율이 1.1%p 하락했고 오 시장은 1%p 상승했다. 김 지사가 정권에 쓴 소리를 내 던지며 적극적인 대권 행보를 보이면서도 지지율이 하락한 반면 오 시장은 대선과 관련한 발언을 삼간 채 조용한 행보를 보였지만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오 시장이 획득한 10%가 추후 부동의 표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오 시장에게 이 같은 부동의 표에 대한 기대와 3선 도전에 대한 부담, 참신한 이미지를 원하는 친이계의 ‘콜’이 교차한다면 차기 대권도전은 불가피한 선택이 될 공산이 높다는 분석인 것이다.
물론 오 시장이 여권의 후보로 나서기 위해서는 박근혜라는 높은 산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계산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김문수, 오세훈 등 상위 3인을 제외한 나머지 보수 주자들의 지지율을 합하면 모두 20.4%. 여기에 오 시장의 지지율을 더하면 29.9%로 박 전 대표의 지지율 31.8%를 바짝 추격하는 구도가 형성된다. 물론 나머지 주자들의 지지율이 막상 표심에서는 소멸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국 오 시장이 김 지사의 벽을 넘어 친이계 단일 후보가 된다면 박근혜 전 대표와도 겨룰만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기다. 2012년과 2017년을 놓고 언제까지나 고민할 수는 없다. 더구나 2017년 보다는 2012년이 더 유리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부상을 계기로 서서히 형성돼 가는 현재의 대세가 확실하게 굳혀지기 전에 방향을 확정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그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최근 만난 정치권의 한 관측통은 “오 시장이 여러 가지 계산을 했을 것은 분명하다. 오 시장으로서는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을지 모르고 한나라당의 여당 프리미엄이 어떻게 돼 있을지 모르는 2017년 보다는 모든 것이 분명한 2012년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2년 도전은 불가피할 것이고 문제는 언제 이를 공식화 할 것이냐의 문제다. 현재로서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뜨고 있는 상황에서 이대로 두면 손학규 대 박근혜의 구도가 대세가 되거나 친이계에서 김문수 지사의 위상이 더욱 강화되는 것을 손 놓고 바라보고만 있을 수 있는 시점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측통은 또 “그러나 오 시장으로서는 출사표를 언제 던질지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너무 일찍 출사표를 던질 경우 서울 시장으로서의 직무 유기라는 비난과 함께 다른 후보자들의 공통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고 너무 늦게 하면 이미 대세를 잃을 염려가 있어 시기를 저울질하는 중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적 쌓으면 시기 눈치볼 것”
또 다른 관측통은 “오 시장이 MB의 청계천 사업처럼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 업적을 쌓지 못한 채 단지 부드러운 인상만으로 나서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일단 G20 정상회의 등 굵직굵직한 일들을 거치며 업적 쌓기에 힘을 쏟으면서 다른 후보들에 대한 검증 바람이 한번 휘몰아 친 후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분석에 대해 오 시장의 한 측근은 “어렵게 재선한 만큼 시정에 충실하겠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어 보인다”면서 “참모진에게 임기에 관해 단정하지 말라고 한 부분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대선 관련 기사가 나오는 것을 두고 그 입장 표명을 조심하라는 취지인 것 같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반응이 공식적인 것으로 이미 오 시장 측 주변에서는 비공식적으로 2012 대권 플랜을 점검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와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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