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故 황장엽 타계 직전 본지와 최후의 대화
단독인터뷰 故 황장엽 타계 직전 본지와 최후의 대화
  • 윤지환 기자
  • 입력 2010-10-19 13:01
  • 승인 2010.10.19 13:01
  • 호수 860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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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쓸데 없는 말만 하고 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지난 10일 별세했다. 황 전 비서는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 [일요서울]과 전화인터뷰를 가졌다. 이것은 그가 언론과 가진 마지막 인터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황 전 비서가 그토록 갑작스럽게 사망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그만큼 특별히 건강에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황 전 비서는 생전 북한의 체제변화와 남북통일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일요서울]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그는 통일에 대한 염원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또 그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처럼 “이제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서 바깥 활동도 거의 못하고 있다”고 했다. ‘주체사상’의 아버지로 탈북 망명객으로서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황 전 비서가 떠나기 전 유언처럼 남긴 마지막 인터뷰. 그 내용을 [일요서울]이 공개한다. <관련기사 62·63면>

황 전 비서가 별세하자 세간에는 그가 암살당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떠돌았다. 그 시기가 너무도 공교로운 탓이다. 황 전 비서는 노동당 창건 65주년일과 같은 날 사망했다. 북한이 그동안 공공연하게 황 전 비서를 암살해야 한다고 말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안병정 서울 강남경찰서장은 황 전 비서가 타계한 당일 오후 3시 브리핑을 통해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타살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서울지방경찰청 현장감식팀과 검시관, 강남경찰서 감식팀, 서울중앙지검 검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과장, 서울대 법의학교수 등이 합동 검안한 결과 외상이 발견되지 않은 점으로 미뤄 타살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황 전 비서는 지난 1일 경 [일요서울]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특별히 몸이 아프지는 않다. 다만, 나이가 들어서 요즘은 기력이 많이 떨어진다. 요즘은 거의 매일 집에서 쉬는 게 전부”라며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다음은 황 전 비서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 최근 활동이 뜸한 것 같다. 근황을 말해 달라.
▲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매일 집에서 쉬고 있다.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바깥활동이 힘들다.

- 이제는 외부 강연 활동 등을 일체 하지 않고 있나.
▲ 강연을 하자는 곳도 없고 나를 불러주는 데도 없다. 요즘 사람들은 북한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황 전 비서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대화 중간 중간에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질문을 다시 되묻곤 했다. 큰 소리로 다시 질문을 하면 한참을 생각한 뒤 답변을 했다.)

김정은 최고 권력자 아니다.

- 최근 김정일의 후계 문제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이목이 북한에 쏠려 있다.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대체 사람들이 왜 자꾸 그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김정일이든 김정은이든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어떻게 그 체제를 변화시켜 민족적 통일에 이바지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쓸데없는 말만 하는 것 같다.

-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가 된 이상 북한의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 김정은으로 인해 북한이 변하는 일은 없다. 김정은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나는 김정일의 후계자니 뭐니 하는 이야기에 대해 잘 모른다.

- 세간에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가 실권을 잡을 것이란 외신보도도 있다.
▲ 외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김경희는 심각한 알콜중독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다. 그의 남편 장성택이 있기는 하지만 두 사람 다 북한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긴 힘들다. 그 이외에 나는 모르겠다. (황 전 비서는 인터뷰 중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자주 했다. 또 자신이 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거나 “그까짓 것이 뭐냐. 모르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대답이 많았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말을 조심하는 느낌이었다.)

- 김정은에 대해 아는 바를 말해 달라.
▲ 나는 김정은에 대해 잘 모른다. 언제 만난 적이 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MB정부 매우 중요한 시점

-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보나.
▲ 정부 정책이 어떤지 하는 부분에 대해 나는 모르겠다. 북한은 지금 위기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나라는 매우 중요한 순간에 와 있다. 현 정부가 민족을 위해 멀리 내다보고 북한을 잘 움직여야 한다. 민족적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야지 자꾸 김정일이 어떻고 김정은이 어떻고 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 현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 남북정상회담 그거 하면 뭐하나. 쓸데없는 일이다. 북한에 대해 말을 하면 들어야 하는데 자꾸 딴 쪽으로 나가서야….

- 요즘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있나. 따로 자주 만나는 사람은 없나.
▲ 그런 사람 없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늘 혼자 쉬고 있다.

- 주변에서 건강이 안 좋다는 말도 들린다.
▲ 이제 죽을 날이 머지않았으니 건강이 안 좋은 것은 당연하지 않나. 나이가 들어서 내가 통 힘도 없고 귀가 잘 안 들린다. 그것 이외에는 다 괜찮다. 특히 어디가 아픈 곳은 없다.

- 앞으로 활동 계획은?
▲ 전혀 없다. 이제는 그냥 쉬면서 이렇게 집에 있는 것이 전부다. 이제 힘들어서 더 많은 말을 못하겠다.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이 대화를 끝으로 황 전 비서와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전화를 끊은 후 10여분 뒤 [일요서울]에 신원이 불분명한 남성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북한 억양이 묻어나는 말투의 이 남성은 황 전 비서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를 캐물어 그 정체에 의문을 자아냈다.

이 남성은 “조금 전 황 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아는데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남성은 자신의 신분에 대해 밝히기를 꺼렸다.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대답하자 이 남성은 자신을 “황 전 비서의 경호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뒤 “조금 전 황 선생님이 나에게 ‘기자에게 전화가 왔는데 신원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해 전화하는 것이니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황 전 비서는 사방이 보호·방범장치로 둘러싸인 특별가옥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황 전 비서는 진보정권 시절 탄압 아닌 탄압의 대상이었고 늘 정권의 감시와 제재대상이었다. 이런 사정은 현 정부 들어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은 전화통화 하나까지도 확인대상이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 비춰볼 때 ‘주체사상’을 탄생시킨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황 전 비서는 평생을 보이지 않는 창살 속에서 살다 삶을 마감한 셈이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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