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의 오세근과 2m2㎝의 최진수, 한국산 ‘공룡’…김선형은 천재 가드로 각광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국내 프로농구(KBL)는 야구와 국가대표 축구에 밀려 그 재미에 비해 큰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 미국의 ‘NBA’가 막강 겨울 스포츠인 NFL(미국프로미식축구),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과 인기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것. 최근 스포츠 소식 또한 프로야구 대형 선수들의 영입과 트레이드, 축구대표팀의 내년 전망 등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13일부터 시작된 2011-2012 프로농구는 고정 팬들의 응원을 바탕으로 열띤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그중 가장 화제인 것 하나는 프로농구 신인들의 돌풍이다. 거물 신인이라고 불리고 있는 오세근(25·안양 KGC), 최진수(23·고양 오리온스), 김선형(24·서울 SK)은 실력과 인기면에서 세대교체를 확실하게 주도하고 있다. 신인치고는 ‘빼어나다’는 정도의 수준을 넘어 팀 내 에이스, 리그 MVP까지 노릴 분위기다.
프로농구 흥행성에 불을 지피고 있는 오세근, 김선형, 최진수는 2011 신인 드래프트 때부터 1~3순위를 달렸던 초특급 유망주들이다. 세 선수는 자신에게 비춰진 기대와 부담을 시즌 중 플레이로 보답하면서 코치진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팀 순위만 놓고 보면 오세근이 속한 ‘KGC 인삼공사’만이 10개 구단 중 2위(지난해 12월 29일 기준)를 차지하고 있지만, 신인왕 경쟁은 이와 무관하게 치열할 전망이다. 김선형이 속한 ‘SK 나이츠’가 8위, 최진수가 뛰고 있는 ‘고양 오리온스’가 9위로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에 두 선수는 팀 순위 상승에도 큰 힘을 쏟고 있다.
현재까지 선두는 단연 오세근이다. 중앙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대학농구를 평정했으며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로 활약한 경험도 있다. 올 시즌 프로농구에서 오세근과 포지션이 겹쳤던 상대팀 선수들은 거의가 외국인 용병이었다. 파워와 테크닉 면에서 기가 죽을 법도 한데 오세근은 경기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 팀의 승리를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활약 덕분에 오세근은 2011년 11월 기자단 투표에서 84표 중 62표로 ‘11월의 선수’로 뽑혔다.
전문가들은 오세근이 남은 시즌에도 변함없는 활약을 펼친다면 신인왕을 넘어 MVP까지 노려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천부적인 센스로 스피드 농구를 선보이는 김선형은 프로 선수가 된 후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올 시즌 김선형을 놓고 “뚜껑을 열어보니 ‘대박’이다”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현재는 명실상부 팀 내 에이스다. 센터나 포워드가 아닌 가드치고는 흔치않은 경우. 김선형은 엄청난 탄력과 체공시간을 무기로 볼거리까지 제공하고 있다. 호쾌한 덩크슛을 터트리지 않더라도 그의 플레이는 수시로 ‘리플레이’, ‘경기 하이라이트’로 선정된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팀의 9연패는 무시할 수 없는 악재가 되고 있다. 전력의 ‘반인’ 센터의 부상이 주된 원이이었지만 해결사 자질을 인정받은 김선형이기에 연패의 고리를 끊지 못한 점만큼은 아쉬움으로 남고 있다.

최진수는 초반 부진에서 탈피하고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있다. 최진수는 시즌 개막 전부터 ‘미국대학체육협의회(NCAA)’의 ‘메릴랜드대’ 출신인 점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NCAA 1부에서 활약했던 국내 선수는 최진수가 처음이다. 하지만 리그 초반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력으로 ‘거품’이라는 평가를 받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최진수의 기량은 동료선수 이동준의 부상 다음부터 상승했다. 팀 내 경쟁자를 제치고 출장 시간이 확보되면서 코트 적응이 완료된 것. 적응을 마친 후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는 포지션 변경에 대해서도 활용 폭이 넓어졌다. ‘미국물’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개인기에 대한 욕심도 없는 편이다. 최진수는 성실하고 묵묵하게 팀 리바운드와 수비를 전담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오세근 또는 김선형의 그늘에 가려진 감이 없지 않지만 하위권인 팀을 6강까지만 올려놓는다면 신인왕을 노려볼 만하다.
지난해 12월 27일에는 오세근과 최진수의 맞대결이 고양 오리온스 홈경기로 펼쳐졌다. 최진수는 이날 경기에서 19점 3리바운드 3도움으로 오세근에 판정승을 거뒀다. 오세근은 17점 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오리온스의 추일승 감독은 경기 전부터 “최진수를 믿어보겠다. 아직 제 기량의 60~70% 수준을 보이는 정도라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말로 승리를 기원했다. 추 감독의 자신감에 최진수는 85-76 승리로 보답했다.
팀 선배 조상현도 최진수의 존재감을 인정하면서 “팀에서 많은 역할을 주문받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텐데도 항상 긍정적이다. 모르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질문해서 알고 넘어가려는 자세가 기특하다”라고 칭찬했다.

김선형의 가치는 지난해 12월 25일 KGC 대 SK 전에서 특히 돋보였다. SK의 리듬을 지휘했던 김선형은 3쿼터 역전을 비롯해 골밑과 외곽에서 상대편 선수들을 농락했다. 4쿼터 때 KGC 이정현과의 충돌로 물러나지 않았더라면 승리까지 꿰찰 수도 있는 경기였다. 김선형의 4쿼터 부상과 뒷심부족으로 SK는 KGC에 80-63으로 패했다.
경기 후 문경은 감독대행은 김선형을 거론하면서 그의 책임감을 치켜세웠다. 문 감독대행은 김선형을 두고 “지금처럼만 한다면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선형은 이날 패배를 보약으로 삼으려는 듯 경기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스피드가 뛰어나도 다른 것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배워가는 중이다”라고 답했다. 물론 대학 시절부터 최대 강점이었던 스피드를 앞세우고자 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12월 29일까지 오세근은 경기당 16.5점(국내선수 2위), 7.9리바운드(국내선수 3위)를 유지하고 있다. 최진수는 12.8점, 4.8리바운드다. 개막 1, 2라운드에서의 부진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평균 기록으로 나왔지만 최근에는 오세근 이상의 기량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득점, 리바운드 부분의 추격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가드 김선형은 15.3점에 3.1어시스트다.
최진수와 김선형은 오세근과의 경쟁구도에 대해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며, 우리는 아직 2, 3인자에 불과하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시즌은 이제부터다. 이들의 경쟁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치열해 지는 것. 프로농구를 좋아하는 이들의 바람이다.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