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민선 단체장들이 잇따라 사법처리를 당한 전북 임실에서 소문으로 떠돌던 ‘노예 각서’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군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선거 브로커 권 모씨 ‘인사권 및 사업권’ 요구
강완묵 임실군수는 지난 28일 각서와 관련된 의혹이 커지자 “2007년 10월 선거 당시 브로커 권 모씨에게 ‘권씨를 비서실장에 임명하고 인사권, 사업권 등 일부분을 위임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줬다”고 밝혔다.
이어 “권 씨로부터 연락을 받고 그를 포함해 3명이 자리를 함께했던 다방에서 각서를 써줬다”며 “두 차례 선거 패배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였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출마 예정자인 심 모씨 역시 브로커 권 씨에게 각서를 써준 것으로 드러났다. 심 씨는 ‘권 씨에게 비서실장 자리 보장, 인사권 40%, 사업권 40% 위임 등’을 약속했다.
이에 “지역 내 탄탄한 조직을 가지고 있는 브로커 권 씨와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어 써 줬다”고 심 씨는 해명했다.
앞서 지난 2004년 김진억 전 군수도 브로커 권 씨에게 2억 원짜리 어음 지불각서를 써 줬다가 구속됐다. 각서에는 ‘하수처리장 공사를 위임하면 2억 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실제 임실군은 2005년 오수 하수종말처리장 공사를 권 씨 부인이 사장인 회사와 수의 계약했다. 이후 김 전 군수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브로커 권 씨는 “이 같은 각서를 요구한 적도 없고 본적도 없다”며 “누군가 고의적으로 각서를 조작한 것이다”라고 부인했다.
-임실군수 잇따라 사법처리, ‘군수들의 무덤’
임실군은 선거브로커 및 학연․지연 등이 얽히면서 군수가 잇따라 구속되는 등 비리가 난무하고 있다. 일각에선 ‘임실은 군수들의 무덤’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1995년 첫 임실군수로 당선된 이형로 씨는 2000년 11월 쓰레기매립장 부지조성 관련 건설업체 부탁을 받고 임의로 서류를 꾸며준 혐의로 1심에서 500만 원을 선고받고 중도 하차했다. 이후 이 씨는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두 번째 군수인 이철규 씨는 2003년 8월 사무관 승진 청탁과 9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후 보궐선거로 당선된 김진억 전 군수는 상수도 확장 공사와 관련해 수의 계약 대가 5000만 원을 건설업자에게 받은 혐의로 2008년 구속돼 현재 수감 중이다.
강완묵 현 임실군수는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법 정치 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지난 8월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84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현재 항소 중이다.
한편, 검찰은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하고 특수부에 배당해 수사에 들어갔다. 특히 브로커 권 씨 등에 대한 주변 수사를 진행한 뒤 조만간 소환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김종현 기자>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