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감독, 이동국 비롯한 K리거들 기량 높게 사…해외파 의존 줄어들 듯

지난 20일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의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발언의 결과는 예상보다 빨리 나타났다. 불과 하루 만에 최강희(52) ‘전북 현대’ 감독이 축구대표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전격 발탁된 것. 조광래 전 감독을 경질한 직후부터 축구협회는 최 감독을 후임자 0순위로 올려놓고 있었다. 축구팬들과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해외파 명장들의 영입 가능성 또한 최 감독의 고사로 불거진 ‘헤프닝’에 불과했던 것. 이번 결정을 놓고 네티즌의 반응은 격렬하다. 스콜라리, 에릭손, 귀네슈 등의 러브콜에도 불구, 어떤 협상의 조짐 또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감독이 월드컵 최종 예선까지라도 대표팀을 맡기로 결정된 이상, “축구협회는 틀려먹었다”라는 비난 보다는 최 감독의 응원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축구협회가 팬들의 불신과 회의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최 감독의 선전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화끈한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로 K리그를 재패한 최 감독의 강점은 무엇인지, 축구협회는 스콜라리 등을 제쳐두고 왜 그를 선택했는지 알아봤다.
축구협회는 최강희 사단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 그 이후에도 최 감독의 임기를 보장해 주기로 했다. 월드컵 최종 예선 탈락 위기가 해결 됐다고 본선부터 유명 외국인 감독으로 교체한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최 감독은 최종예선 때까지만 감독직을 맡겠다고 못박았다.
최 감독은 현재 벼랑 끝에 내몰린 축구대표팀을 떠안고 있다. 축구대표팀은 내년 2월 29일 쿠웨이트 전을 최소한 비겨야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본선 행을 겨룰 수 있다. 한 경기에 걸린 엄청난 비중은 최 감독의 스트레스로 고스란히 전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축구협회가 연거푸 최 감독에게 대표팀 자리를 요청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70일 정도의 기간 안에 선수들을 파악하고 자신의 전술을 녹여야 하는 데, 외국인 감독이 이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것.
물론 축구팬들은 “귀네슈, 스콜라리의 경우 아시아 축구에도 일가견이 있고 수십 년의 경력으로 이를 커버하고도 남는다”면서 선진 축구의 도입을 강력하게 외치고 있다.
최 감독이 ‘전북 현대’의 리더십을 대표팀에 이식 시킬 수 있는지는 경기를 지켜보면 알 일이다. 최 감독이 “해외 감독들에게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팬들은 축구협회가 불필요한 입김 없이 최 감독을 전적으로 배려해주길 바라고 있다.
최 감독은 올해 K리그 흥행을 주도 했다. ‘선 수비, 후 공격’과 같은 승점 쌓기 없이도 ‘전북 현대’를 우승으로 이끈 것이다. 올해 ‘전북 현대’는 정규리그(30경기)와 챔피언결정전(2경기)을 합쳐 71골, 평균 2.21골이라는 파괴력을 자랑했다. 실점도 경기당 평균 1.06골에 그쳐 수비의 조화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팀의 수비 조직력을 강화시키지 못했던 조광래 전 감독에 비해 최 감독이 큰 점수를 받은 것도 공격력 보다는 수비력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선수와 코치로 태극마크를 달아 봤다는 점도 최 감독이 축구협회의 눈에 든 점이었다.
최 감독은 1987년부터 1992년까지 대표팀 수비수 겸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또한 2002년에서 2004년까지는 국가대표 코치를 맡았다. 2005년부터 7년간 클럽 팀에 몸담고 있었지만 대표팀 시스템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대표팀과 클럽을 아우르는 경험으로 비롯된 최 감독의 자신감은 지난 22일 취임 기자회견 때부터 드러났다.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참석한 최 감독은 “대표팀을 위한 기술적인 준비는 오늘부터다. 선배 감독들의 조언을 들을 것이다. 함께 준비할 동료, 후배들과 유기적으로 움직이겠다”는 말로 포부를 밝혔다. 또한 최 감독은 해외파에 밀려 상대적으로 등한시 됐던 K리그 선수들의 발탁도 염두한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최 감독은 “해외파 보다는 K리그 중심으로 선수들을 선발해야 한다.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은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어 경기력이나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페이스를 끌어올리기 부족하다. K리그 선수들 중심으로 뽑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 감독의 발언에 따라 선수 운용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은 분명하다. 뛰든 안 뛰든 유럽파선수를 호출하지 않고 자질을 갖춘 K리거들에게 길을 열어 준다는 것. 그 중심에는 K리그 간판 공격수 이동국이 있다.

올해 K리그 MVP를 수상한 이동국은 최 감독 리그 재패의 일등공신이다. 이동국은 조광래 호 당시에는 최종 23인 엔트리에 속하지 못하거나, 부름을 받고서도 경기에 뛰지 못하는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최 감독은 이동국의 가치를 훨씬 높게 여길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최 감독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동국을 대표팁 원톱으로 기용하기 어렵겠지만 박주영과의 투톱은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손흥민, 지동원, 이근호 등에 밀려 존재감이 희미했던 이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 이동국은 “대표팀에 더 이상 미련두지 않겠다”는 아쉬움 섞인 결단을 잠시 보류해도 되는 상황이 됐다. 지난 3번의 월드컵 때마다 부상, 감독의 외면 등으로 월드컵 스타 자리를 놓쳤던 그로서는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 기회가 될 전망이다.
‘전북 현대’는 2009년과 올해 K리그에서 우승했는데, 이동국은 그때마다 MVP로 선정됐다. 특히 올해는 선수 생활 처음으로 ‘도움왕’이라는 타이틀마저 꿰찼다. ‘움직임의 폭이 좁은 공격수’라는 수식어는 더 이상 이동국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남은 아시아 예선을 위해 최 감독은 프로축구 16개의 구단에서 우수한 선수들을 뽑아야 한다. 또한 해외파 선수들의 컨디션을 점검하면서 아시아 최종 예선을 염두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축구 철학과 맞는 선수들을 골라내야하는 범위가 크게 확대된 것.
전북 현대 감독을 맡을 때 줄곧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에 머물렀던 ‘이장님’. 앞으로 고향에 머물 시간이 줄어든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이창환 기자>hojj@ilyoseoul.co.kr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