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진짜 쏘나?
이번엔 진짜 쏘나?
  • 이수향 
  • 입력 2006-01-10 09:00
  • 승인 2006.01.1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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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삼성에 칼을 빼들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증여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부장 정동민)는 최근 삼성그룹 관련 회계법인 3곳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특히 X파일 관련,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전주미대사 등의 무혐의 처리를 두고 ‘유전무죄’, ‘삼성봐주기’ 논란에 시달린 검찰은 ‘삼성 장학생’이라는 오명을 쓰는 등 적잖은 곤욕을 치렀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유독 삼성에 약한 모습을 보여왔던 검찰이 압수수색을 단행하면서까지 삼성 에버랜드 CB 편법 증여사건에 강경한 태도를 나타내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지난 연말 삼성그룹의 회계를 담당한 S회계법인 등의 사무실을 압수수색, 10여개의 회계자료가 담긴 CD와 20여 상자분량의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계열사들에 대한 감사보고서 등을 압수한 검찰은 대검 중수부 회계분석팀의 지원을 받아 지난 1996년 에버랜드 CB가 발행됐던 당시 계열사 8~9곳의 재정 상태 및 거래명세 등을 분석하고 있다. 관건은 에버랜드가 CB를 발행하고 삼성 계열사들이 CB 인수권을 포기한 것이 경영상의 이유인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기기 위한 것이었는지의 여부.

검찰은 이재용씨가 에버랜드 지분 25.1%를 확보해 1대 주주가 된 뒤 순환출자를 통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 핵심계열사를 지배하게 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번 조사는 에버랜드 CB발행 목적이 이재용씨의 경영권 승계라는 것을 입증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이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씨 부자의 계좌를 추적한 결과, 당시 CB 인수자금이 이회장 개인 명의 계좌에서 나온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힘에 따라 핵심 관련인물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현재 이건희 회장 일가의 소환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사팀 의지강해 예측불허

그렇다면 X파일 사건관련, 삼성 핵심인물들에 대한 무혐의 처분으로 범국민적인 비난을 받았던 검찰이 삼성총수 일가 소환까지 염두에 두고 조사에 착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삼성을 겨냥한 검찰의 용기있는(?) 행동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검찰은 유독 ‘삼성’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모습을 보여 ‘삼성검찰’이라는 오명에 시달리기도 했다. 실제로 삼성을 대상으로 한 고소고발사건이 기소된 전례가 거의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는 검찰이 ‘삼성눈치보기’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간 무혐의 처리 혹은 각하된 삼성관련 고소고발건들은 삼성 SDS BW(신주인수권부 사채)저가발행 고발(2000) 및 고소사건(2001), 5대 재벌 부당내부거래 고발사건(2004), 삼성전자 계열사 주식 헐값매각 고발사건(2004) 등 2000년 이후에만도 수건에 달한다. 또 작년 한해동안만도 삼성 SDI 부당노동행위 고소건, 삼성SDI 노동자 불법 위치추적 고소사건, 이재용씨의 삼성생명 계열사 주식 헐값 인수 고발사건, 2002년 대선 관련 재벌총수 정치자금법위반 고발사건 등이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검찰의 삼성특혜 논란은 지난해 12월 14일 X파일 사건과 관련,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전주미대사 등에 대한 무혐의 처리에서 절정을 맞았다. 일각에서는 삼성에 매번 꼬리를 내리는 검찰을 일컬어 ‘삼성계열사 (주)한국검찰’이라는 치욕스러운 칭호를 붙이기도 했다.

검찰입지 굳히기 승부수인가

따라서 이번에 검찰이 삼성가에 칼을 빼든 내막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일부에서는 그간 실추된 검찰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의견도 있다. 그간 검찰은 과거의 고루한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정치적인 판결, 재벌봐주기 수사로 빈축을 샀던 것이 사실이다. 그간 ‘한점 부끄럼 없는 엄정 수사’를 표명했던 검찰이 연달아 보여준 실망스러운 행태는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도의 추락을 야기했고, 검찰의 체면도 덩달아 구겨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 현재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둘러싼 중요한 시점에서 위상회복 및 이미지관리는 검찰에게 필연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허준영 경찰청장이 사퇴하고 경찰의 위상을 위축시키는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나는 ‘호재’를 맞이한 검찰 내부에서는 지금이야말로 검찰의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버랜드 CB사건은 검찰이 던질 수 있는 마지막 승부수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그래도 검찰이 낫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는 ‘삼성’이 가장 적절한 카드라는 것. 즉, 삼성에 다소 미운털이 박히는 한이 있더라도 에버랜드 CB사건을 건드림으로써 무너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시키고 검찰의 체면을 살릴 수 있는 기회로 이용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여론 물타기 제스처인가

그러나 이번 역시 ‘여론 물타기용’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삼성의 불법정치자금 제공건과 관련, 검찰은 단 한 차례의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으며 핵심인물인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도 소환이 아닌 한 차례 서면조사로 수사를 종결한 바 있다. 그간 ‘회장님 눈치보기’에 익숙했던 검찰의 전례로 볼때 이번에 총수 일가 소환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삼성관련 사건에 전전긍긍했던 검찰로서는 상당한 ‘진보’이자 ‘용기’가 아닐 수 없다.관건은 ‘성역’으로 알려진 삼성일가를 검찰이 어느정도 건드릴 수 있는지의 여부다. 과연 검찰이 이건희 회장 일가를 소환할지, 또 범법행위를 제대로 밝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간 ‘국정원도 수색하면서 삼성은 왜 못하냐’는 비아냥을 받아온 검찰로서는 ‘큰맘먹고’ 전례없이 압수수색을 단행했음에도 국민은 여전히 의심스런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여론 물타기 행각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96년말에 일어난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공소시효 만료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기소한 것은 험악해진 여론의 눈치를 보다 억지로 떼밀려 단행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검찰은 부당내부거래와 관련, 참여연대로부터 배임죄로 고발된 5대그룹 인원들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는데, 절묘하게도 추석연휴 기간 중에 기습적으로 처리하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다.따라서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 조치조차 여론 물타기용으로 보고 용두사미로 끝날거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즉 이번 검찰의 수사는 그간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모션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압수물의 양이 방대한데다가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작업을 하는데 최소 한두달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삼성가’의 핵심 관계자들의 소환은 흐지부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검찰의 이번 조치가 비판 여론을 피하려는 제스처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위상회복을 위한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표명한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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