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과 가까운 신들
마지막으로 범신계다. 민중들의 고통을 함께 해온 산신(山神), 용신(龍神) 등이 그들이다. 초우주신과 우주신은 인간계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데 비해, 범신계는 인간계에 가장 가깝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산신은 산 그 자체이다. 대자연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영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산신 할아버지는 산신이 인간인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일 뿐, 그 모습이 특별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인간의 이해 수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 줄 뿐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기독교 진리의 정수라고 평가받는 보병궁(寶甁宮) 복음서의 내용은 참고할 만하다.
“우주신(본체신)은 한 분이고, 신(인격신)은 ‘한 분 이상’이어서 모든 것은 신(개체화된 인격신), 모든 것은 하나다(보병궁 복음서 28:4).”
‘하나이면서 전부’라는 다소 추상적인 내용이지만 그 말이 옳다. ‘하나이면서 전부이며, 전부를 품고 있는 하나’라는 철학적 진리는 단군 때부터 전해 오는 민족 최고의 경전 <천부경>의 핵심이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 선조들은 산에 기대어 살아왔고, 마을의 배후 산중턱이나 산기슭에 당을 마련해 놓고 매년 정초에 날을 잡아 제사를 올리며 풍요와 건강, 행운을 기원해 왔다. 바다에 기대 사는 사람들은 용왕제를 올리며 용신에게 복을 기원해 왔다. 용왕은 ‘용신·용왕 할머니·수신’이라고도 하며 예로부터 민간신앙으로 자리 잡아 왔다.
용신은 불교에 수용되면서 법을 수호하는 천룡팔부(天龍八部)의 하나로 인식되지만 용신 역시 산신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인간이 종교적 관념에 따라 나눌 뿐이다. 이들 산신과 용신은 인간의 기원에 감응하여 그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 인간계와 가장 가까운 신명계는 범신계라 할 수 있다.
대자연 파괴하는 인간은 한낱 바이러스에 불과
인간 가운데는 수행을 통해 범신계에 다다른 인물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산신의 반열에 올라섰으면서도 속세에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수행자들도 적지 않다. 불가의 이름 높은 승려들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다다른 인물들을 만날 때면 아직 속세의 먼지를 벗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인간계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 대자연의 입장에서 볼 때는 파괴자와 다르지 않다. 대자연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바이러스나 마찬가지이다.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세포에서 선택적으로 증식한다. 바이러스는 핵산(DNA 또는 RNA)과 소수의 단백질만을 가지고 있으면 살 수 있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숙주세포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대자연에 의존하고 살아가면서도 대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형태는 바이러스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인터넷팀 기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