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해부 한국사회 병역비리 백태
완전 해부 한국사회 병역비리 백태
  • 전성무 기자
  • 입력 2010-10-12 14:52
  • 승인 2010.10.12 14:52
  • 호수 859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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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직 나왔다 하면 병역 면제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 김황식 - 한승수 - 안상수 - 정정길 - 윤증현 - 원세훈

지난 1997년 대선 이후 고위 공직자 아들들이 서로 군대에 가겠다고 자원하던 때가 있었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아들 정연씨의 병역기피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기 때문이다. 정연씨가 전남 고흥반도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소록도 까지 귀향가다시피 들어가 봉사활동으로 참회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대선에서 낙마했다. 이런 이유로 아버지 출세길 막지 않으려는 ‘효자’들이 군에 너도나도 입대하게 된 것.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병역 풍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번엔 고위공직자 ‘아버지’들을 비롯해 사회 곳곳에서 병역비리 의혹이 터져 나오고 있다.

잠잠했던 병역비리 문제가 최근 우리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천안함 사건 당시 청와대 안보 벙커에 군필자가 전무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병역기피 현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이 같은 병역 기피 사례가 사회 유력 인사로 일컬어지는 정치인, 연예인 등 공인에게 쏠려 있다는 점에 있다.

‘돈’ 있고 ‘빽’ 있으면 군대 안가도 된다는 자조적 푸념이 사방에서 일고 있다. 병역 양극화를 부추기는 꼴이다.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병역.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김황식 총리에 대한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사회 지도층의 병역 기피 의혹으로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김 총리 후보자에 대한 병역 기피 의혹을 들춰내며 집중공세를 펼쳤다.

김 총리는 1968년부터 신체검사 연기, 또는 무종 판정(재신검 판정)으로 4차례에 걸쳐 입영을 연기했고, 1972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같은 해 받은 신검에서 ‘부동시(두 눈의 시력차이가 나는 것)’로 면제판정을 받았다.

김 총리는 병역면제를 받을 당시 심한 부동시였다가 2년 후 공무원 임용 신체검사 때에는 다시 시력이 좋아졌다고 해명해 병역면제 의혹이 불거졌다.


MB정부 군 면제 비율 국민 10배 ‘경악’

임영호 자유선진당 의원에 따르면 현재 현역 복무 비율은 89.8%인 반면 면제자는 2.4%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 총리와 장관들의 군 면제 비율은 24.1%에 달해 일반 국민의 10배가 넘는다. 이명박 대통령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까지 군 면제를 받은 터라 김 총리까지 더하면 당·정·청 수뇌부가 모두 군 면제를 받은 셈이 된다.

김유정 민주당 의원은 이를 두고 “한 마디로 ‘병역면제 삼총사’가 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고위공직자의 병역면제 논란은 이번 뿐 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며 당·정·청의 병역 면제 논란은 급격하게 거세졌다.

현 정권 들어 임명된 총리들의 인선 과정에도 병역 문제가 단골메뉴처럼 등장했다.

서울대 총장 출신의 정운찬 전 총리는 징병신체검사(2을종)와 징병검사연기, 징병신체검사(1을종·보충역)이후 31세에 고령 사유로 소집면제를 받았다. 야당에서는 유학 등을 통한 병역회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병무청에서는 적법한 절차라는 입장이 나왔다.


비밀스러운 ‘특례’가 문제

한승수 전 총리 역시 장남 상준씨가 병역특례(육군 이병) 업체에 근무(2001.3-2005.9) 도중 열흘에 한번 꼴로 해외에 나간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본인은 육군 중위로 병역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아들 문제로 곤혹을 치렀다.

한 총리는 취임후 “해외봉사활동에 우수한 청년들이 많이 참여하도록 병역상 혜택을 비롯한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약속까지 했다. 상준씨는 병역특례업체에서 대체복무를 하는 동안 해외출장을 나가 골프를 즐긴 사실도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 전 총리는 이에 대해 “알아보니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 바이오텍 회의가 있어서 친구들 휴가에 따라갔다고 하더라. 원래 애가 골프를 참 좋아 한다”면서 “별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10년 전 국내에 번역 소개된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에는 쿠바 혁명을 주도했던 체가 골프채를 든 채 웃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다. 사진에는 ‘골프가 굳이 비밀스러운 취미일 수는 없었다’란 설명이 붙어있다. 골프가 꼭 부정적이고 사치의 상징으로 통용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병역특혜까지 받아가면서 굳이 비밀스러운 골프를 친다는 것이 문제였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도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병역기피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병무청의 ‘공직자 병역사항 공개 조회 결과’에 따르면, 안 후보는 1966~ 1975년 수차례에 걸쳐 질병과 행방불명 등의 이유로 입영을 연기했다.

77년 군 법무관으로 입대했으나 퇴교 조치된 뒤 78년 고령으로 소집면제 처분을 받았다. 이를 두고 같은 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10년 동안 도망 다니다 군복무를 면제 받았다”고 비난했다. 안 후보는 “사법고시 공부하러 절에 있다가 입영통지를 받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해명하는 황당한 상황을 연출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턱 관절염으로 군대를 가지 않았다. 1974년 공무원 채용 신체검사 때는 정상이었지만 2년 후 군 신검 땐 정상이 아니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 등은 질병 또는 시력 때문에 병역을 면제받았고, 이 대통령은 기관지확장증을 앓아 군대에 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난 4월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직후 청와대 벙커에서 열린 긴급안보관계장관 회의 참석자 중 대통령을 포함해 수뇌부가 모두 군 미필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이 같은 사회 지도층들의 병역기피가 자녀들에게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병무청이 2009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초기 내각의 경우 장관 자녀들에 대한 병역면제율은 국민 평균 면제율보다 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초대 내각 장관급 이상 22명의 2세들 병역 이행 실태를 보면, 병역 이행 대상자 24명 중 15명이 병역 의무를 이행했거나 복무 중이다. 나머지 9명 가운데 3명은 과체중과 질병 등의 사유로 면제(12.5%) 받았고, 1명은 미국 국적자, 5명은 유학 등을 사유로 징병검사나 입영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위 공직자들 상당수가 자신의 근무기관에 자녀를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28일 병무청에서 제출 받은 자료를 분석해 지방자치단체의 간부급 공직자(4급 이상 및 지방의원)의 아들인 공익근무요원 82명 중 19명이 아버지와 같은 기관 또는 같은 지역의 기관에서 복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들 19명의 아버지 중 10명은 지방공무원이며 9명은 지방의원이다.

10명의 지방공무원 가운데 9명은 서울시청, 대전시교육청, 부산진구청 등에 재직 중이며 아들도 역시 같은 기관에서 복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안산시청에 재직 중인 간부급 공무원은 아들이 산하 구청에서 복무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의원 A 씨의 아들은 통영시청에서, 대구시의원 B 씨의 아들은 대구 수성구청에서, 경기 수원시의원 C 씨의 아들은 경기도청에서 복무하는 등 지방의원 9명의 아들도 아버지의 의정 관할지에 근무 중이다.

병역 면제 등의 대물림에는 정치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병무청에 따르면 제 18대 국회의원 및 직계비속들 중에서도 외국 영주권을 얻거나 이민을 가는 수법으로 병역을 피해가는 사례가 다반사였다.


국회의원들도 병역 대물림 ‘심각’

A 의원의 아들 형제의 경우 형은 외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2003년에야 병적(입영대상자에 오름)에 올랐다. 이후 4년 만인 2007년에는 고령을 이유로 병역이 면제됐다. 반면 동생은 이민 사유를 들어 신검을 연기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B의원의 아들도 1993년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지만 2002년 외국 영주권을 취득함에 따라 병역을 연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육군참모총장 출신 C 의원의 경우 손자 2명 모두 외국 영주권을 지니고 있어 병역이 면제되거나 징병검사를 연기하고 있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bukethead@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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