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총선 공천권 “내 손안에 있소이다”
10·3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권 쟁취에 실패한 정동영 최고위원. 그에게 가을바람은 그리 쌀쌀하지만은 않다. 당권과 대권을 분리한다는 민주당 당헌·당규 상 대권주자는 대선 1년 전 대표나 최고위원 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이에 따라 대권을 노리는 손학규 대표의 임기는 사실상 14개월여 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지난 대선에서 500만 표 차이로 대패한 ‘아픔’이 있는 정 최고위원으로서는 대권만 포기한다면 차기 당권을 쥐고 2012년 총선 공천권을 노려볼 수 있다는 계산이 선다. ‘2인자’ 정동영이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춰봤다. 민주당은 지난 10월 3일 전당대회 이후 세력 지형을 개편했다. 손학규 대표는 2년간 춘천칩거를 접고 당권을 거머쥐면서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당 대표 연임에 실패하면서 주류에서 밀려났다. 대신 정동영-쇄신연대 노선이 당 지도부에 입성했고, 486(4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인사들은 독자세력을 구축했다.
손 대표는 취임식 때 진보개혁 세력과 함께 중도세력을 끌어안겠다고 선언하며 대권을 향한 포부를 내비쳤다. 그동안 ‘중도표심’은 막판 대선 당락을 좌우했기 때문에 그의 선언은 대선에 대한 포부로 들린다. 2012년 대선을 바라보며 최근 여당은 왼쪽으로, 야당은 오른쪽으로 좌표이동을 하면서 중도를 표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손 대표는 지난 10월 7일 부산 출신의 대표적 486 인사인 김영춘 전 의원을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발탁했다. 외연 확대를 위해 영남 인사 기용은 어느 정도 예고된 일이었지만 김 전 의원이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는 중도성향을 띈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정세균 최고위원과 결별한 486세력을 신주류인 손 대표 측에서 끌어안기에 나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차기 대선에서 이루어질 야권 통합을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486 행보 민주당 합종연횡 시작
손 대표와 486세력의 연대 움직임은 차기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 진행될 ‘합종연횡’의 신호탄과 같다.
따라서 정동영 최고위원도 최근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손 대표를 향한 견제에 나선 것이다.
그는 지난 10월 6일 광주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손 대표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은 직후 “광주 정신은 진보”라고 운을 뗀 뒤 “민주당 3기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인데 대표 개인의 생각이 정체성이 아니라 당헌과 강령이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를 겨냥해 작심한 발언으로 보인다.
손 대표를 향해 대립각을 세운 것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당권에서 밀려난데 대한 일종의 ‘분풀이’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차기 총선 공천권을 향한 노림수로도 풀이된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전대에서 나름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 대표에 이어 전대 2위 성적을 기록했고, 자신을 포함해 천정배 박주선 의원 등이 주도하는 쇄신연대 인사들 3명이 지도부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정 최고위원은 추후 쇄신연대를 중심으로 수적 우위를 발판삼아 손 대표를 향해 ‘밀어내기 식’ 공세를 퍼부을 가능성이 높다.
대권을 분리하도록 한 민주당의 당헌·당규에 따르면 대선주자는 대선 1년 전 대표직이나 최고위원 직을 사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손 대표가 대권에 뜻이 있다면 임기는 앞으로 14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것이 된다. 손 대표는 대선에 출마하려면 2011년 12월 까지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듬해 4월 치러지는 19대 총선에 앞서 당 대표 자리가 공석이 되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권 박근혜, 야권 손학규가 각각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박근혜-손학규로 점쳐지는 대선구도가 눈길을 끌고 있는 형국이다. 정 최고위원으로서는 대권만 포기한다면 ‘2인자’인 자신이 당권을 거머쥘 수 있는 시나리오가 성립된다.
분리된 대권 당권 어느 떡이 클까
문제는 독자세력화를 선언한 486세력의 향배다. 486세력의 리더 이인영 최고위원에 이어 김영춘 전 의원까지 지도부에 입성함에 따라 이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 보다 커진 상황이다.
486세력은 앞으로 손학규 대권, 정동영 당권 사이에 일종의 무게추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손 대표는 김 전 의원 발탁을 시작으로 486과의 연대 노선 본격화를 시도했고, 정 최고위원 역시 차기 총선에서 당권을 거머쥐고 공천권을 확보하려면 486세력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정 최고위원이 이번 전대를 기점으로 대선에 나설 뜻을 접었을 수도 있다”면서 “아무래도 불리한 대권보다는 유리한 당권을 노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실제 정 최고위원이 대권 도전이라는 무리수를 피하고 보다 확실한 당권을 거머쥘 의중을 가지고 있다면 이번 전대 패배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차기 총선 공천권을 손에 쥔다면 ‘2인자’ 정 최고위원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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