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혐의 중해 연장 조사
대구지방국세청에서 5년만에 벌인 포스코에 대한 정기세무조사는 지난해 7월초부터 30일간 벌어졌다. 이번 조사는 사업전반에 대한 일상적인 세무조사였다. 문제는 9월초부터 3개월 연장돼 지난 12월19일 끝난 연장 세무조사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특히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포스코가 평소 신뢰할 수 있는 하청업체들을 대상으로 일정한 매출을 약속하며 납품 대금을 현금 대신 상품권으로 지급했다는 정황이 조사 과정에서 포착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포스코는 상품권으로 납품대금을 대신 지급했기 때문에 하청업체와 물품 매입채무는 없어지고, 대신 포스코 회계장부에는 주인 없는 돈이 쌓이게 된다. 이 돈이 비자금으로 조성됐을 것이라는 게 의혹의 골자다.
또한 포스코가 법인카드를 통한 다량의 상품권을 구매하면서 상품권 구매가 아닌 일반 상품 구매 형태로 카드 결제를 통해 법인세 절감 효과를 거두면서 탈루·탈세했을 것이란 의혹도 받고 있다. 법인세 누락을 목적으로 할인된 상품권 구매가를 원가대로 경비 처리해 과대 계상할 수 있다는 게 회계사들의 지적이다. 특히 상품권은 어음과는 달리 추적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편법적인 비자금 조성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특정회사의 상품권을 대량 구매함으로써 일정한 할인율을 적용시켜 남는 차액을 회계장부에 게재하지 않고 비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현금 대신 액면가로 상품권을 받은 하청업체들은 포스코라는 대기업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매출을 보장받고 현금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당해도 말을 못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나마 고정적 매출액을 높여 은행 대출이나 투자기관으로부터 신용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될 유혹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회계사들의 시각이다.
여권 핵심 실세 K씨통한 로비 의혹 증폭
결국 포스코에 대한 세무조사가 3개월 연장된 배경에는 비자금 조성, 의도적 탈루·탈세 의혹, 하청업체와 불공정한 거래 방식 등이 드러났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국세청은 추징 금액에 상관없이 사기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탈세할 경우 검찰에 고발하게 돼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 처한 포스코에서는 추징액을 감소시키거나 검찰 고발을 막기 위해 여권 실세들을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활동을 시도했다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대구지방국세청 직원과 포스코 직원간에 ‘검찰 고발’과 ‘압력’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졌다는 사실이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국세청 세무조사가 벌어지던 지난 연말 국세청 직원과 포스코 직원은 대구시내 모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심하게 다퉈 병원신세를 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병원까지 간 당사자는 대구지방국세청 조사 2과 직원. 파문이 확산될 조짐이 일자 병원신세를 진 당사자는 과로로 입원한 것으로 해명했다.이와 관련, 대구지방국세청 조사과 관계자는 “직원이 병원 신세를 진 것은 사실이나 포스코 관계자와 다툼 때문은 아니다”라고 밝혔다.국세청 조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추징액이 천억대를 웃돌고 검찰 고발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포스코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여권 핵심 실세 K씨를 통해 국세청에 외압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혹이 나돌았다. 이에 조사권을 침해당한 국세청 직원과 포스코간에 마찰이 생겼고, 서울 본청에서도 사실 관계를 놓고 파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직원과 국세청 다툼
국세청은 여권 실세의 압력설에 대해 부인했다. 포스코의 탈세액은 대략 1,700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회계 전문가에 따르면 이 정도 규모의 탈세에다 상품권을 통한 비자금 조성의혹 등에 비춰 검찰 고발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국세청측은 포스코의 탈세와 관련 검찰 수사 의뢰는 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대구지방국세청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검찰수사 의뢰는 법에 따라서 고의적 탈세혐의가 나타나면 고발한다”며 “세금 추징액이 적고 많음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사기나 기타 부정한 방법이 동원된 점이 포착되더라도 검찰 고발이 당연히 들어간다고 볼 수 없다”며 “다 고발하면 누가 기업을 하려고 하고 누가 CEO를 맡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비자금 조성 의혹이 짙은데도 검찰 고발을 않는 것은 기업 봐주기 아니면 압력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 회계법인 관계자의 의견이다.외압설과 관련, 대구지방국세청 관계자는 “압력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한편 포스코측에선 국세청에서 3개월 연장된 세무조사를 받은 것과 관련해 당초 ‘와전된 소문’이라고 변명하다 입장을 바꿔 3개월 연장수사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또 그 이유에 대해서는 ‘계리’상의 문제일 뿐 고의적 세금 누락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즉 기업들이 산정하는 세금 산정방식과 세법에 따른 세금 산정방식의 차이로 인해 조정하느라 연장수사를 받았다는 설명이다. 검찰수사 여부에 대해서도 포스코측은 전해 들은 바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검찰 내사설 ‘모락모락’
하지만 포스코 세무조사이후 검찰 내사설은 끊이질 않고 있다. 특정 기업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 불법 탈법 혐의가 드러날 경우 국세청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 물론 검찰 고발 여부는 불법행위의 고의성 유무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 검찰이 기업에 대한 불법행위 수사 과정에서 탈세및 탈루 혐의가 드러날 경우에는 통상 국세청에 세무조사를 의뢰하기도 한다. 또 통상적으로 회계부정은 금감위, 불공정행위에는 공정위, 탈세는 국세청이 맡고, 불법적인 경우는 검찰이 담당한다. 이번 포스코의 경우는 정기세무조사 후 3개월 연장조사를 통해 하청업체에 상품권 지급을 통한 불공정 행위, 비자금 조성혐의, 법인세 탈루·탈세 등 혐의가 드러나 국세청의 검찰 고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국세청은 검찰 고발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여권 실세의 ‘외압’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또 포스코의 탈세에 대한 검찰 수사는 국세청의 고발이 없을 경우 불가능하지만 비자금 조성이 사실로 드러나면 검찰 자체적으로 수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검찰 내사설도 나돌고 있다.결국 포스코 세무조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 및 그 실마리는 오는 1월 말쯤 예정된 세무조사 결과 공시에 따라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이 추징과 함께 검찰 고발을 단행할 경우 외압설은 수그러들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외압설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연말연초 대기업 세무조사‘검찰 고발’이 두려워
지난 9월부터 시작된 현대자동차, 대림산업은 세무조사가 완료돼 추징액이 각각 1,981억, 314억원 등이 부과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하반기부터 시작된 대기업 정기세무조사를 벌인 국세청은 연말연초를 즈음해 대기업 관련 세무조사를 마무리하고 있다.현재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 엘리베이터, LS전선, 삼성 코닝, 신한은행 등 굵직굵직한 대기업들에 대해서도 세무조사를 마치거나 진행중으로 재계에서는 세부 부족분을 채우려는 게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예전과 달리 요즘 국세청은 세금 추징액을 사전에 기업에 알려주지 못하게 돼 있어 기업들의 추징액을 줄이기 위한 로비활동은 현저히 줄었다는 게 국세청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대신 기업들은 과세 적부심, 국세청 심사청구, 감사원 심사청구, 재경부의 국제심판원을 통해 부당한 세금 과세에 대해 법적소송을 통해 과세를 줄이는 경우가 다반사다.국세청 직원 역시 기업들을 네고(에누리, 흥정, 값을 깎음을 뜻하는 말)를 통해 세금을 줄여주다 걸리면 세무사도 차리지 못하고 연금도 타지 못해 예전 같은 ‘한탕’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실토한다. 로비가 많이 없어질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다.하지만 기업들의 의도적인 탈루나 탈세의 경우 로비에 자유롭지 못하다. 대기업들의 추징금은 위와 같은 방법으로 줄일 수 있지만 검찰에 고발되면 기업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결국 기업체들이 세무조사와 관련해 각종 의혹과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은 검찰 고발을 막기 위해 정치인 로비가 불가피 하고, 또 이를 위해 비자금을 조성해야 하는 악순환 때문으로 풀이된다.
홍준철 mariocap@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