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비대위 체제가 가장 유력하다. 황우여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주도한 후, 박 전 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의 운영을 책임지는 방안에 가장 무게가 실리고 있다.
남경필 의원은 “비대위를 구성해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 비대위원장을 맡는 것이 정도”라고 밝혔다. 친박계 일부 의원들도 가장 현실적인 과도체제 방안으로 ‘비대위 구성’을 꼽으면서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이 박 전 대표를 위원장으로 추대하는 형식이 자연스러울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황 원내대표도 박 전 대표의 ‘역할’을 요청했다. 홍 대표가 사퇴를 발표하던 시각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 중이던 황 원내대표는 취재진에게 “단순한 당내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상황이 닥치고 있다”며 “(박 전 대표가) 새로운 대한민국 정치의 장을 열기 위한 행보를 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당헌 92조(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려면 상임고문 이외 모든 선출직 당직으로부터 대통령 선거 1년 6개월 전에 사퇴해야 한다)를 개정해야 한다.
이는 지난 전당대회 당시 ‘박근혜 대항마’를 꿈꾸는 김문수 경기지사와 정몽준 전 대표가 주장했던 것이다. ‘당의 위기상황인 만큼 대선주자급 주자들이 모두 나서야 한다’는 논리였다. 한나라당 상황이 그 때보다 더욱 악화돼 있어 당헌당규 개정을 통한 박 전 대표 등판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핵심은 공천 주도권 싸움
박 전 대표가 등판한다면 친박(親朴) 세력과 반박(反朴) 세력 간 주도권 싸움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측근들 중심으로 재창당 작업을 이끌 경우 친이계와 쇄신파 등 비박 진영이 이를 좌시할리 없다. 기존의 한나라당과는 완전히 새로운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문을 외면한 것으로 치부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공천 기준 설정이다. 18대 공천학살을 당한 바 있는 친박 진영이 순순히 공정한 공천에 나설지에 비박 진영에서는 의문을 갖고 있다. 어떤 형식으로든 주객이 전도된 공천학살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김문수 지사는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 전 대표가 친박의원들에 대한 공천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지난달 15일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나라당이 환골탈태하고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당내 인사들이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지사는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친이계와 친박계의 공천싸움이 더 치열해질 것이고 이는 한나라당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이 자리에서 “사람을 부르려면 안방을 비워야 한다. 과감하게 50% 이상을 비워야 한다.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 안정권인 강남과 영남을 싹 비워야 한다. 비례대표도 20석 정도를 비워 적어도 60~70석 정도를 당선 안정권으로 (새 인재를) 모셔야 한다”고 구체적 물갈이 폭까지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표로의 권력쏠림현상이 나타난다면 그에 맞서 반박 세력들이 연합해 강력히 맞설 것으로 보인다. 정가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김문수-정몽준-이재오’ 연대설이 끊이질 않았다. ‘박근혜 대항마’를 위해선 대선주자급 유력 인사들이 힘을 합해야 하고 그 안에서 외부의 참신한 세력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원조 소장파인 원희룡 남경필 의원과 김성식, 정태근 등 쇄신파들까지 힘을 합치고, 수도권 비박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이미 장외에서 창당 작업에 들어간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세력까지 함께한다면 충분히 세력화가 가능한 상황이다.
조기전대 - 재창당 주장도
내년 총선까지 불과 4개월밖에 남지 않은 만큼 조기 전당대회를 치러 지도부 공백사태를 최소화하자는 의견도 있다.
일시적으로 비상대책위원회 등을 가동할 수 있지만 비대위의 역할과 기능을 ‘전대 추진’ 정도로 한정하고 전대를 통해 선출되는 새 지도부로 하여금 당 쇄신, 총선 준비 등의 역할을 맡긴다는 구상이다.
정몽준 전 대표는 출범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회가 되면 전당대회에 나가겠다”고 했다.
그는 박 전 대표의 ‘조기 등판론’이 대안으로 굳어진 것과 관련해 “정치라는 게 자기가 나서고 싶을 때만 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지금의 상황은 한나라당이 사느냐 죽느냐를 넘어 대한민국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각오로 당의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한나라당은 현실을 직시하고 당내 갈등을 대승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그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당대회를 열고 새로운 출범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수도권 출신 친이계 의원 10명은 재창당론을 공론화하면서 이를 추진하기 위한 기구로 재창당추진위를 제안했다.
재창당추진위에 전권을 위임, 새롭게 출범할 정당의 정강정책을 만들고 당명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창당에 방점을 찍은 비상대책기구인 셈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나갈지를 두고 세력-계파별로 백가쟁명식 주장이 쏟아지는 만큼 재창당추진위를 당장 띄우는 것은 이르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한 재창당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입장이 명확히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설익은 재창당 추진은 당내 논란만 촉발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따라서 당이 의원총회나 연찬회를 열어 당의 방향을 결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dul.co.kr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