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죽만 울린 ‘헛심 국감’
변죽만 울린 ‘헛심 국감’
  • 전성무 기자
  • 입력 2010-10-12 14:39
  • 승인 2010.10.12 14:39
  • 호수 859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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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호통부터 쳐놓고 딴짓… 자찬 발언 닮은꼴은 또 웬일
지난 6일 상암동 문화콘텐츠센터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이 국감장에서 퇴장당하고 있다. 영진위는 업무보고를 재탕하는 부실한 준비로 문제르 ㄹ일으켜 국정감사가 연기됐다. photo@dailypot.co.kr

2010년 국정감사가 막이 올랐다. 하지만 실속은 못 챙기고 변죽만 울린 ‘부실국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과거 굵직한 ‘핫이슈’를 들고 나와 정국을 들썩이게 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논란이 돼 왔던 ‘4대강 사업’, ‘민간인 불법사찰’ 등 쟁점과 관련된 증인 채택과 출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대했던 정부 정책에 대한 날선 비판과 비전을 내세우기 보다는 권위를 내세우며 호통만 치는 사례도 빈번하다. 반면, 여야 할 것 없이 소속 정당 의원들을 치켜세우면서 자화자찬 하는 모습은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2010 국정감사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의원님들 개개인 능력과 성품을 보면 하나같이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근무하는 보좌관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영감’을 이렇게 소개한다. 하지만 국회 밖에서 만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면 뭐하나. 정당에 들어가 당론 따르면서 ‘바보’되고 하는 일을 보면 한심해 분통이 터질 지경인데.”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다.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국회를 불신한다는 얘기다. 의원들의 스펙을 들여다보면 엘리트 코스를 밟고 국회에 입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화려한 스펙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매년 열리는 국정감사가 대표적이다. 18대 국회 들어 3번째로 열리는 2010년 국정감사. 올해에도 어김없이 ‘부실국감’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10월 4일부터 23일까지 20일 동안 열리는 이번 국감에서도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막장국감’이 연출됐다.


정부 출석자들 무식한 동물 취급 막말

국감 이틀째인 지난 5일 문화재청 국감장에서는 막말과 고성이 오갔다. 김성태 한나라당 의원은 이날 이건무 청장 등 정부 출석자들을 향해 “무식한 사람들”이라며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

다음날인 6일 교육과학기술부 국감장에서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이주호 교과부 장관에게 ‘X주호’란 표현을 쓰며 폭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와 여야 간 신경전이 오갔다. 안 의원은 이 장관에게 동물을 지칭하며 문제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잦은 파행으로 비판을 받아왔던 교육과학기술위는 올해 국감에서만 벌써 두 번째 파행을 기록했다. 교과위는 지난 5일 교과부 국감에서 뉴라이트학부모연합 등 22개 시민단체의 관제시위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간 공방이 오가다 5시간이 넘게 국감이 중단됐다. 이어 6일에는 상지대 사태 관련 증인 채택문제로 1시간 여 만에 국감이 전면 중단됐다.

피감기관이 불성실하고 무성의한 답변을 하는 등 비협조적인 모습도 도마 위에 올랐다. 또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국감에서는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이 부실한 답변 자료를 제출했다가 여야 의원들의 질책을 받고 쫓겨나 망신을 당했다.

조 위원장의 국감 인사말과 업무보고 내용이 지난 6월 임시국회 당시 자료와 대부분 비슷했고, 실제 인사말 자료 표지에도 ‘2010년 제261회 임시국회’로 돼 있었다.

지난 6월 열린 261회 임시국회 자료를 국감장에 그대로 들고 온 ‘실수’를 범한 것이다. 결국 국회 문방위의 여야 간사는 영진위에 대한 국감을 19일 다시 열기로 했다.


배추파동은 4대강 탓 오버

지난 5일 국방부 국감에서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이 김태영 국방부 장관을 향해 천안함 폭침사건 당시 ‘벙커회의’에 대해 질의하자 김 장관은 “대통령에게 확인하든지 하라”고 답변해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또 문화체육관광부 국감에선 최종원 민주당 의원이 유인촌 장관에게 질의하자 유 장관이 “저 장관 오래 안합니다”라고 회피성 발언하기도 했다. 최 의원과 유 장관은 과거에도 수차례 공개석상에서 공방전을 벌여온 ‘앙숙’관계다.

서민이 체감하는 이슈를 정치적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올해 국감 최대 이슈인 4대강 사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야당은 이번 ‘배추 파동’ 이 4대강 사업에 원인이 있다는 논리로 공세를 펴고 있지만 근본적 실체 파악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채소 경작지 감소면적 확인 등 구체적인 데이터도 없이 서민경제에 직결되는 이슈를 정치적으로 연결시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국감 전 이미 합의가 끝난 증인 채택이 무산돼 소모성 공방이 계속되기도 한다. 여야의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채택된 증인이 막상 국감장에 출석하지 않아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 4일 정무위 국무총리실 국감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으로 증인으로 채택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 다수가 국감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들은 앞서 증인으로 채택됐던 정무위원회의 국감에 이어 법사위의 출석 요구도 무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는 지난 7일 오전 회의를 열고 이 전 지원관과 이 전 비서관에 대한 동행명령권을 발동했다.

외교통상부 국감 역시 유명환 전 장관 등 핵심 증인이 불출석해 썰렁한 국감현장을 연출했다.


여야 원내대표 ‘칭찬 릴레이’ 빈축

이 처럼 ‘부실 국감’ 지적 속에서도 여야 원내지도부는 소속정당 의원들에 대한 ‘칭찬 릴레이’에 나서 빈축을 사고 있다.

국감 이틀째인 지난 5일 여야 원내지도부가 소속정당 의원들을 칭찬하며 자화자찬에 나선 것.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서로 입이라도 맞춘 듯 소속 의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우리가 국감 더 잘하고 있다”면서 격려했다.

김 원내대표는 국감 점검회의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야당보다 매섭고 합리적인 정책질의를 했다는 평이 있다”고 말한데 이어 정책위 전문위원들이 이성헌, 김광림, 김성식, 김효재, 전재희, 김옥이, 진성호, 김학용, 이명규, 강성천, 차명진 의원 등을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민주당의 박 원내대표도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제 국감이 시작됐지만 국감은 역시 민주당 국감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고 스스로를 치켜세웠다.

또 신학용 의원이 지난 4일 천안함과 제2함대사령부가 천안함 사건 당시 교신한 암호문 내용을 공개한 것을 두고 “어제의 국감 금메달은 신학용 의원이다. 뜨거운 박수를 받으라”면서 신 의원을 칭찬했다. 이 발언은 그러나 곧바로 민주당이 북한의 천안함 폭파설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요즘 국감 현장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초리는 따갑기만 하다. 과거와 같은 다금한 맛은 이미 사라졌다며 ‘국감 무용론’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추석연휴 직전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만난 김모(56·여)씨는 “국회의원들이 이젠 말로만 하지 말고 서민을 위해 제 역할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원회관 건물 앞에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와인, 굴비, 과일 등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추석선물 더미를 보고 한 말이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bukethead@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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