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보도 3탄 | 외교부 고위층 자녀 ‘음서제도’ 파문
단독보도 3탄 | 외교부 고위층 자녀 ‘음서제도’ 파문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0-09-28 10:19
  • 승인 2010.09.28 10:19
  • 호수 857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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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층 자녀는 유학 '특혜' ,서민 자녀는 '사직서'
본지가 단독으로 입수한 외무부 직원의 투서 내용은 어느 정도 사실에 근접한 내용이었다. 본지는 투서 내용을 중심으로 854호, 856호 등 지면을 통해 홍순영, 유종하 두 전직 외교부 장관의 자녀에 대한 특혜의혹 및 외시2부가 어떻게 고위직 자녀의 세습도구로 이용됐는지를 보도한 바 있다. 투서내용에는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외교부내 고위직 자녀에 대한 특혜 의혹 역시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었다. 앞선 두 전직 장관들의 경우 채용과정과 입부 후 특혜를 받은 반면 일부 고위직 자녀들의 경우 외교부 인사과정과 해외연수에서 외교관의 자녀로서 조직적 특혜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외교부 두 전직 장관의 경우 자녀 채용과정에서 ‘과목변경 특혜의혹’(홍순영 전 외교부장관의 자녀), ‘외시2부 도입 배경 특혜의혹’(유종하 전 장관 자녀)이 제기됐다.

1994년 2월에 과목변경이 있었고 1997년도에 도입된 외시2부 는 2003년까지 유지되다 2004년에 폐지, 영어능통자로 대체됐다. 또한 7년 동안 22명이 외시2부로 채용됐으며 그중 40%이상이 외교부 고위직 인사 자녀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 두 전직 장관들은 한결같이 “과목변경이나 외시2부 도입은 외교부 독자적으로 할 수 없는 것으로 정부차원(총무처·내무부·행자부)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총무처 직원으로 외교부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행정안전부 A국장은 ‘말도 안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A국장은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과목변경의 경우 외교부 요청으로 협의를 한 것이다”며 “외교부내 문제 제기를 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1997년도에 처음으로 도입된 외시2부 관련해 “정확히 외무부에서 요청했는지 아니면 문민정부하의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 제안했는지 기억이 안난다”며 “YS 정부 시절 ‘세계화’ 바람으로 인해 외시 시험제도관련 변화하려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속 산하인 세계화위원회에서 요청했는지 외교부 자체에서 요청했는지 확실치는 않는다는 얘기다. 이래저래 총무처나 내무부에서 먼저 제안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이 투서에는 두 전직 장관외에 외교부 고위직 자녀가 입부 후 인사와 해외연수로 인해 특혜를 받은 의혹도 제기됐다.

외시2부로 들어온 고위직 자녀중 K 서기관은 아버지가 해외 대사로 역임한 K 대사의 자녀다.


해외연수에 유학휴직까지 ‘연수전문 서기관’?

외시 출신의 K 대사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동기로 외교부내 시니어 그룹에 속하는 인사다. K씨는 1999년도에 해외연수를 신청했다. 외시 2부생들은 해외연수제 도입전인 2002년도 전까지 못 가게 돼 있었다. 그러자 K씨는 2년짜리 유학휴직을 신청했고 입부 후 2년만에 유학휴직을 가게 됐다.

외시1부생에게도 허용되지 않았던 유학 휴직이 K씨에게 허용이 되자 외교부내에선 아버지의 영향력이 발휘됐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나돌았다.

문제는 2002년도부터 외시2부에 허용된 해외연수를 K씨가 재차 신청했고 외교부가 이를 허용해 다시 2년짜리 해외연수를 가게 됐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K씨는 국민의 세금으로 유학휴직 2년, 끝난 후 다시 2년짜리 해외연수를 가게 된 셈이다. 결국 해외연수에 1억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됐으며 유학휴직 역시 월급의 반이 국민세금으로 지급된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샀다.

외교부내에서조차 ‘해외연수만 다니는 사무관’이라는 조롱을 받아야 했다.

이와 관련 행자부 산하 중앙인사위에 근무한 A국장은 “당시 외교부내에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느냐는 말이 있었다”며 “‘잣대가 뭐냐’라는 내부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밝혔다.

이후 K씨는 외교부내 선망의 대상인 대미통상업무를 담당했는데 당시 K 통상교섭본부장의 이름도 거론됐다. K 본부장이 Y대 경영학과 출신이고 K씨는 직속 후배였다. 또한 아버지 K 전 대사 역시 Y대 출신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S 대사의 아들 S 서기관의 경우에는 외시합격한 이후 3년간 입부를 미루다가 들어와 2002년도 해외연수를 신청했다. 문제는 S씨가 당시 외교부내에서 금지했던 미국 로스쿨 해외연수를 희망했다는 점이다.

1998년도부터 2000년도까지 한시적으로 도입된 미국 로스쿨 해외연수는 갔다 온 외교부 직원들이 복귀 대신 대거 사직서를 제출하는 사태가 발생해 반기문 당시 외교부 차관이 ‘로스쿨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외교부내 불문율로 돼 있는 미 로스쿨 해외연수가 S씨는 허용됐다.

당시 아버지 S 전 대사가 L 차관보와 K 차관을 끈질기게 설득했다는 말이 돌았다. ‘특혜’를 달라는 편지까지 차관에게 써서 외교부 직원들이 돌려보낸 해프닝도 발생했다고 투서는 전했다. 끝내 S 대사의 부탁으로 자녀 S씨는 3년짜리 유학휴직을 허용했다. 2003년 로스쿨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이에 대해선 A국장은 “해외연수는 기관의 장이 결정하는 것으로 인사위와는 상관없다”고 선을 그었다.


S씨 특혜 후유증, 외교부 인재 줄사퇴

하지만 S씨의 전례는 역량있는 외교부 직원들의 줄 사퇴로 이어지면서 외교부내 후유증이 크게 남았다.

외시1부 출신인 Y 서기관은 해외연수를 포기하는 대신 S씨와 마찬가지로 3년짜리 유학휴직을 달라고 요청했다.

외교부는 S씨와 같은 미국 콜롬비아대 로스쿨 입학허가를 받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외교부 인사과에선 3년이 아닌 2년짜리 휴직을 허용해주었다. 로스쿨 과정은 3년으로 1년을 남겨두고 외교부에선 ‘귀임발령’을 내렸다. 결국 Y씨는 사표를 제출했다.

이듬해인 2004년도에는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P 서기관이 유학휴직을 달라고 신청했다. P 서기관은 미 명문대 로스쿨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되면서 3년 유학휴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외교부에서 거부했다.

결국 P 서기관은 사표를 쓰고 외교부를 떠났다. 아버지 후광으로 3년짜리 유학휴직을 한 S씨로 인해 능력 있고 장래가 촉망한 두 ‘서민 자녀’는 외교부를 떠나게 된 셈이다.

투서 내용 중 또 다른 외교부 고위자녀 중 K씨의 경우 장관 수행비서를 수행하면서 특혜를 입은 케이스다. 통상 장관 수행 비서는 요직으로 가는 ‘떼논 당상’의 자리였다. 하지만 인사과에서 1년마다 인사철만 되면 주미대사관이나 주유엔대표부에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운 현실이었다. 이에 반 장관은 폐해를 없애기 위해 수행비서는 해외연수 나가기 직전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서 쓰게 했다.

이것은 외교부내 전통이 됐지만 유명환 전 장관이 들어오면서 깨졌다.

유 전 장관이 해외 공관으로 나가기 직전인 K군을 데려다 수행비서를 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외교부 고위직에 있는 K씨 아버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K씨는 6개월간의 장관비서를 마치고 요직으로 진출했다. 외시2부생으로 들어온 3명의 고위직 자녀의 이런 행보는 동기생들뿐만 아니라 외교부내 뜻있는 인사들에게 ‘자조’와 ‘분노’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 투서 말미에는 “외교부가 엎드려 있다 보면 파도가 지나가겠거니 하는 강건너 불 구경식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그래 가지고선 아무 것도 해결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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