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고위 공무원 “2차 접대(?) 즐겼다” 소문

대기업 임원과 고위 공무원 등이 다수 포함된 일명 ‘룸살롱 2차 접대 리스트’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경찰 소식통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6월 경 전남 목포의 한 룸살롱 마담이 작성한 성매매 장부를 확보하고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리스트를 수사하고 있는 목포경찰서는 지난 6월 속칭 2차를 나갔던 룸살롱 여종업원과 남자 손님이 폭행 사건에 연루돼 수사를 벌이면서 룸살롱을 압수수색하던 중 우연히 장부들을 확보했다. 여섯 권으로 이뤄진 이 장부는 마담이 지난 2009년 9월부터 지난 5월까지 룸살롱에 와 2차를 나간 내용을 작성한 것으로 목포권 대기업 임원과 중소기업 사장, 공무원 등 남자 손님 400여 명의 전화번호와 함께 2차를 나간 여종업원 이름, 날짜, 액수 등이 자세하게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장부에는 일행은 물론 술값 낼 사람, 2차 성매매 나간 사람이 누군지를 자세하게 적혀 있다고 한다.
경찰은 장부 내용을 토대로 이 룸살롱에서 일했던 40여 명의 여종업원들이 남자 손님들과 성매매를 한 것으로 보고 장부에 기록된 남자 손님들을 불러 성매매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현재까지 400여 명 가운데 200여 명을 소환 조사했으며 수십 명은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나머지 남자 손님들도 조만간 조사를 벌여 성매매 혐의가 드러날 경우 모두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목포지역에 룸살롱 장부에 대한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목포경찰서 형사과 직원 대부분이 이 사건에 투입됐다. 다른 사건을 뒤로 미룬 채 대기업 임원과 공무원 등 관련자를 소환해 성매매 여부를 밝히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
하지만 성매매 여부를 가리는데 어려움이 많다. 모텔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져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다. 이 때문에 형사과 사무실은 리스트 때문에 아수라장이라고 경찰 관계자는 호소하고 있다.
경찰이 리스트 생산?
수사가 진행되면서 목포지역은 연루자에 대한 소문이 확대 재생산되는 등 2차 노트 후폭풍이 불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마담의 2차 노트에 적혀 있는 인사들을 놓고 수많은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며 “노트를 작성한 당사자로 보이는 마담은 노트에 대해 아직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노트에 이름을 올린 이들 중 일부는 시인하고 있지만 대다수 부정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더 조사를 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소문에 대해 “업계를 중심으로 소문이 양산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서울 같이 큰 도시도 아니고 작은 도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놀라울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파장이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해 차후 필요하면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해서라도 성매매 여부를 캐내겠다는 방침이다.
이 사건으로 공직사회와 경제계에 아직도 성매매가 독버섯처럼 만연해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벌써 이번 리스트와 유사한 성매매 리스트가 등장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닌데도 그것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하다고 지적한다.
성매매 리스트가 등장한 것은 그리 새롭지 않은 사건이다. 거의 해마다 성매매 리스트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다. 올해만 해도 스폰서 검사 리스트와 더불어 지난 3월 중순 경 오피스텔 성매매를 한 남성 1500명이 그대로 드러난 리스트가 확보된 적도 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당시 마포구 합정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채팅 전문 여종업원들과 성매매 여성들을 고용해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 1500여 명의 남성을 상대로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관련 피의자 고모(37)씨 등 12명을 붙잡았다.
경찰은 압수한 장부에서 1500명의 성매수 남성 리스트를 확보함에 따라 이들의 신원을 확인해 조사를 벌였다. 장부에 따르면 불과 몇 달 사이에 많게는 9차례까지 이곳을 이용한 남성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성매매 사실을 부인해 혐의 사실을 밝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호기심만 있을 뿐 처벌은...
이 처럼 리스트가 발견돼도 성매매로 처벌 받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들 중 실제로 처벌받는 이들은 극히 드물고 그나마 처벌받는 이들도 현행법에 따라 벌금형 등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뿐이다.
리스트와 관련된 언론 보도역시 단순히 흥밋거리로 치부된다. 예컨대 [일요서울]은 2008년 9월 유흥업소 사장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경찰 접대리스트를 입수해 단독보도한 적 있다. 당시 입수한 업주의 상납 리스트에 따르면 문제의 경찰관들은 강남, 서초 지역에 근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리스트는 강남에 위치한 모 유흥업소의 업주가 메모형식으로 작성한 것으로 경찰관이 근무하는 경찰서와 뇌물로 전달한 돈의 액수가 적혀있다.
유흥업소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렇게 뇌물을 상납하는 행위를 속칭 ‘관처리’라고 부르는데, 이 리스트는 관처리 내역과 접대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다. 기사가 보도됐을 당시 경찰청 감사과 등 내부 단속을 책임지는 해당부서는 침묵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경찰이 유흥업소와 관련된 리스트에 관대한 내막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국민적 불신이 팽배하다. 업주와 경찰의 검은 커넥션 역시 만연하다. 경찰이 안마시술소에 거액을 투자한 사실이 밝혀지는가 하면, 업주를 상대로 사채놀이를 하는 등 여러 번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지난 2007년 10월 장안동의 한 업소에서 경찰에게 뇌물을 상납한 업주의 장부가 발견돼 파장을 일으켰다. 또 이에 앞선 2002년 4월엔 경찰에 정기상납 한 ‘포주뇌물계’가 적발되기도 했다. 그 실태는 아직까지 여전한 것으로 알려져 경찰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이번 목포 성매매 리스트에 대한 수사도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일부에서는 해당지역 경찰의 묵인이 없었다면 목포 성매매 리스트는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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