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아직 개그맨 김준현(32)의 이름을 알고 있는 대중들은 많지 않지만, 그는 KBS ‘개그콘서트’의 대세 개그맨 중 하나다. 최효종과 김원효가 프로그램의 간판으로 올라선 요즘에도 김준현은 ‘생활의 발견’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슈퍼 카메오’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코너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생활의 발견’은 김준현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치원생부터, 육군 장군까지 웃음 포인트를 명확하게 잡아 연기하는 그를 보면 영화 ‘퀵’의 고창석, ‘타짜’의 김상호가 떠오른다. 어떤 역을 맡겨도 맛깔스럽게 해낼 것 같은 기대 때문. 김준현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말하는 개그콘서트, 자신의 코미디 철학을 들어봤다. 개그콘서트 ‘뚱보’들의 얼굴을 헷갈려하는 몇몇 사람들은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가 주는 무게감을 실감해보자.
-개그콘서트가 전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시청률 1위라고 들었다. 가장 재밌어 하는 코너가 뭔가.
▶ ‘감수성’을 좋아한다. 콩트 형식을 좋아해서 그런지. 그 외에 ‘애정남’도 재밌다. 나 역시 시청자들에게 인기 있는 코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 다 재밌게 본다.
-개인적으로 최근 두 달간은 ‘생활의 발견’이 다른 코너들을 제치고 가장 재미있었다. 김준현씨의 공이 크다고 본다. 하지만 그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는 못하다.
▶ 크게 개의치 않는다. 시청자들이 재밌게 봐주고 많이 웃어주면 만족한다. ‘생활의 발견’은 송중근과 신보라가 처음 시작한 거다. 2인 체제로 진행됐지만 추가적인 재미를 위해 내가 고정 ‘카메오’로 출연하게 됐다. 나도 내 연기를 방송으로 보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더라.
-‘생활의 발견’은 초반 큰 화제를 모았지만, 지루해질 만한 타이밍에 도달 했었다. 그 하향세를 끌어올린 게 김준현씨라고 생각된다.
▶ 코너 내용 진행에 전환을 줬을 뿐이다. 2인극이나 원맨쇼(비상대책위원회)자체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내용을 환기시켜 주는 인물이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매번 ‘빵’ 터트리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생활의 발견’이나 ‘비상대책위원회’ 속의 내 개그는 주로 40대 이상 아저씨들이 더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사실 메인 캐릭터는 대사도 많고 줄거리를 잡고 나가야하기 때문에 계속 웃길 수 없다. 반면 조연급 캐릭터는 자신 있는 부분, 제일 재밌을 수 있는 부분에서 치고 빠진다.
▶ 방송계에서는 그런 연기를 ‘딱 하나 따먹고 간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잠깐 집중하면 자신의 분량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치고 들어갔을 때 꼭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더 주목받고 싶지는 않나.
▶ 물론 인기를 더 끌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지금 김원효 자리에 있다고 해도 그만큼 못했을 거다. 송중근, 신보라 역할을 맡았다고 해도 그 맛이 살지 않았을 테고. 내 캐릭터와 어울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거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개그맨이 되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 대학생 때, 군 제대하고 나서부터다. 원래 꿈은 아나운서였다. 그런데 노는 것을 워낙 좋아해 아나운서는 될 수 없겠더라. 그래서 떠들고 말하면서 일하는 직업을 찾아보기로 했다. 개그맨이더라. 2003년 말부터 대학교 축제 MC 등을 맡으면서 개그맨에 대한 목표가 뚜렷해졌다.
-일을 재밌게 하려고 개그맨을 선택 했더라도, 개그맨이라는 직업은 꽤나 험난해 보인다.
▶ 우선적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가’, ‘내가 잘 할 수 있는가’를 기준삼아 선택했다. 먹고 살려면 고등학교 내내 공부하다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또 공부해야 되지 않나. 그 다음도 마찬가지고.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도 이런 반복이 싫어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전공이다. 철학과를 지원한 개인적인 이유가 있나?
▶ 고등학생 때 철학에 관심이 있었다. 다른 학교의 종교 철학과를 지원하기도 했다. 막상 들어가 보니 너무 어렵더라.
-철학과는 ‘자아’나 ‘세계관’에 관한 고민이 많아야 가지 않나. 김준현씨도 기본적으로는 진지한 사람인가.
▶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은 있다. 웃겨야 될 상황이 아닐 때는 말이 좀 없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딱 코미디언 감이다’라는 얘기를 들은 것은 아닌 건가
▶ 전혀 아니다. 초등학생 때도 그랬고, 고등학교 동창들도 내가 개그맨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동네에서 술 한잘 할 때가 있는 데 다들 ‘진짜 개그맨이 될 줄은 진짜 몰랐다’고 말한다.
-개그맨을 지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남 웃기기를 좋아하지 않나
▶ 내 유머감각이나, 활달함은 대학교 때부터 두드러졌다. 특히 술을 배우면서부터다. 술자리가 열리면 어느 순간 마이크를 잡고 떠들더라. 그러다 우연찮게 학교축제를 맡게 됐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2007년에 KBS 22기 공채 개그맨이 됐다. 동기 중에는 요즘 누가 잘 나가나
▶ 최효종이 있다. 약간 시들해진 허경환도 동기다. 동기 인원수가 굉장히 많다. 21명으로 역대 최다로 알고 있다. 박성광, 박영진, 박지선 등 다들 쟁쟁하다.
-개그맨은 무겁고 진지해질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 같다. 웃음을 위해 고민을 짊어지니 말이다. 이와 같은 스트레스는 어쩔 때 해소되나.
▶ 큰 성과를 이뤄야만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은 아니다. 동료 개그맨 덕분에 수시로 해소된다.
개그콘서트 멤버들은 코너를 위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간을 투자한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코너를 짜고 리허설에 들어간 후, 수요일에 녹화를 마친다. 목요일, 금요일에도 틈틈이 코너를 만든다. 중요한 것은 이런 준비과정을 팀 별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 같이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웃긴 사람들이 모두 모였으니, 재밌는 일이 많지 않겠는가. 너무나 웃긴 상황이 하루에도 최소 5번은 벌어지는 것 같다. 그때 웃다보면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 ‘아이디어가 안 떠오른다’, ‘뭘 해야 더 재미있을까’ 등의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틈이 없다.
-5년차 멤버다. 여태껏 몇 개의 캐릭터를 선 보였는지 기억나나.
▶ 소소한 단역까지 합치면 스무 개 가까이 된다. ‘DJ 변’ 코너에서 나를 알릴 수 있을 만한 역할을 처음 맡았다. ‘DJ 변’의 중간 광고를 책임지는 역할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9시 쯤 뉴스’ 코너에서 ‘유치원 어린이’ 캐릭터도 연기했다. 주로 진상, 술 취한 남자, 뚱보 역을 맡았다. 시끄럽고 소란스럽지만 웃긴 사람들 말이다.
-개그맨이라서 좋은 점은
▶즐겁다. 보통의 직장인들이라면 하루 동안 크게 웃을 일이 많지 않을 거다. 연습실에서 항상 많이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코너를 준비할 때, 즉흥적인 편인가 완벽주의자인 편인가
▶ 다들 그렇겠지만 즉흥적으로 짜는 코너가 있는가하면 계산적으로 나온 코너가 있다. 때에 따라 다르다. 툭 던져서 뚝딱 만들어 질 수도 있고, 어떤 주제를 놓고 회의를 열기도 한다.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나온 코너가 쉽게 전달됐고 오래 갔던 것 같다.
-최효종과 김원효는 단역, 조연급에서 메인으로 치고 올라왔다. 김준현씨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된다고 보면 될까
▶ 두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코너를 짰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얻었다. 나도 내게 딱 맞는 코너를 들고 나오면 메인으로 올라서겠지. 최효종과 김원효, ‘두분토론’으로 사랑받았던 박영진도 연차가 서로 비슷하니까 올라선 시점도 비슷했던 것 같다. 색깔이 분명한 코너를 만들겠다는 욕심은 갖고 있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내고 있지는 않다.
-코너를 이끌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 같이할 동료들과 완성시킨 후 PD에게 확인을 받는다. 가능성이 보이면 카메라로 찍은 다음에 모니터로 디테일을 살피게 된다. 그 다음은 객석 분위기, 그 다음 관문은 첫 방영 후의 시청자 반응이다. 하지만 금세 내려가는 코너도 많다. 첫째 주, 둘째 주에서 충분히 웃겼더라도 그 다음부터 질리는 느낌이 들면 바로 내린다.
-개그콘서트에는 김준현씨 외에도 류담, 송영길, 유민상씨 같은 ‘뚱보’들이 있다. 뭔가 유대감 같은 게 있나
▶ 돼지들, 돼지들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나와 유민상를 헷갈려 하는 경우가 꽤 있다. 유대감 같은 것, 좀 있다. 서로 장난치면서 견제도 하고.
-김준현씨가 뚱뚱한 캐릭터의 포인트를 가장 잘 집어낸다고 생각한다. 동료들에게 없는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 어떤 역할을 맡겨도 ‘기본은 해낸다’는 칭찬을 종종 듣는다.
-가끔은 특정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고 느낄 때도 있나.
▶ 그렇다. 웬만한 개그맨의 경우 3~4년 정도 지나면 완전히 능숙해진다.
-체형, 또는 굳혀지는 이미지 때문에 한계를 느끼지는 않을까.
▶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의 소재를 유머스럽게 바꾸는 것, 패러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계에 부딪치려다가도 소재를 잘 찾고 전달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가끔은 개그맨들의 연기 단어선택, 어휘력에 감탄한다. 국어사전 공부나 독서의 성과인 건가
▶ 독서는 많이 한다. 그리고 인터넷 뉴스를 포괄적으로 본다. 트렌드에 뒤쳐지면 안 되고, 상식도 필요하니까.
-몇몇 개그맨들은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본인만 그렇게 믿고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 그래도 하는 사람은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만들었을 거다.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이 마음의 문을 더 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재밌는 부분이 좀 더 보일 거다. 개그맨의 경우, 다른 개그 프로를 볼 때 시청자들이 웃지 않는 부분에서도 자주 웃는다. ‘어떤 생각으로 저렇게 짰지’하는 궁금증이기도 한데, 다른 관점으로 보면 웃을 수 있는 순간이 더 많다.
-그래도 어떤 프로그램은 썰렁한 코너가 많아서 외면 받기도 했다. 동료개그맨, PD의 필터링이 제대로 거쳐지지 않아서 그랬을까.
▶ 내놨는데 반응이 시큰둥하다면, 제작진의 독설이나 냉정한 평가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이디어를 제시한 당사자는 ‘재미없다’는 평가를 수용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 맞다. 거절당하면, ‘정말 재밌는 건데…’ 하면서 아쉬워한다. 그래서 몇 번 우겨보기도 한다.
-동료들은 ‘대박’이라고 칭찬했지만,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시청자들의 수준이 의심될 법도 한데
▶ 아니다. 시청자들을 100% 신뢰한다. 아쉬움은 있을 테지만 우리 재밌자고 만든 것은 아니니까 재미없다고 하면 내려야지.
-개그맨들은 배고픈 직업, 자기만족에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출발선에 있을 때의 관점과 지금의 차이는
▶ 뭐, 개그맨도 잘 버는 사람은 잘 번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말이다. 이런저런 행사를 뛰면서 버는 수입도 괜찮다. KBS 공채합격 전을 얘기하면 대학로에서 공연할 때는 한달 월급이 5만 원이었다. 한 2년을 5만 원만 받고 거의 숨만 쉬고 살다시피 했다. 다행히 식권을 따로 줘서 그걸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때는 힘들었다.
-개그콘서트가 정통 개그 프로그램의 부활을 주도하고 있지만, 코미디는 여전히 한국 연예계의 주류와 거리가 있다. 스타 개그맨들도 뜨면 다른 분야로 가 버린다.
▶ 각자 꿈꾸는 분야가 있으니까… 최고의 MC를 목표로 할 수도 있고 연기자를 꿈꿀 수도 있다. 물론 새로 시작하는 공개 개그 프로그램, 비공개 개그 공연 등이 다 잘 됐으면 좋겠다. 과거 ‘유머 1번지’ 때의 열풍이 다시 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머 1번지’는 시청률이 50% 였던가, 아파트 주민들이 그 시간만 되면 모두 그 프로그램만 봤다고 들었다.
-가수는 싱글·정규앨범으로, 배우는 출연작으로 자신의 경력이 쌓인다. 하지만 개그맨을 ‘검색’해보면 어떤 코너로 인기를 끌었는지 볼 수 없더라. 기록으로 알려지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금방 잊지 않나. 불공평한 느낌이 살짝 든다.
▶ 그게 개그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노래는 꾸준히 불러질 수도 있지만, 개그를 계속 ‘재탕’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김대희, 김준호 같은 선배들을 봐도 수십 개의 인물을 연기하면서 히트 코너를 참 많이 만들어냈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는 남 부럽지 않았다. 그들의 코너를 지금 나열하면 대부분은 ‘어? 그 코너가 뭐였더라’ 하고 기억 못할 것이다. 코미디는 한 번 쑥 지나가고 나면, 금방 잊혀 진다. 빨리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겠지.
-가수, 배우에 비해 매너리즘에 빠질 일이 없겠다. 자기표절, 모방도 더 힘들 테고
▶개그는 모방을 해버리면 너무 똑같아 보일 것이다. 거의 할 수 없다고 보면 된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날 수도 있지만 웃음 포인트에 차이는 있다.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