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생가 둘러보면 대권이 보인다”

“역대 대통령들의 생가 둘러보면 대권이 보인다?”
이명박 정권이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여야는 차기 대권구도를 짜는 움직임이다. 대선 때만 되면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말이 풍수지리와 후보자들의 생가다. 대권을 거머쥔 역대 대통령들의 생가가 하나같이 명당자리였다는 것.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들의 생가를 풍수지리학적으로 관찰해보면 ‘사람이 거처할 집에서는 그 내려오는 산 능선의 기세가 중요하다’는 양택십서(陽宅十書)’와 일치한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대통령 당선에 ‘명당’ 덕을 톡톡히 봤다는 풍문으로 유명하다. 차기 대권을 바라보는 잠룡들이 이러한 ‘대권 명당’을 미리 물색하러 다니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생가가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지 알아봤다.
도전적인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는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 있다. 생가는 안채, 행랑채, 측간 초가 건물로 이뤄져 있으며 총 건평은 251.5m²이다. 처음에는 5채였으나 1988년 11월 방화로 2채가 소실됐다. 이 마을의 실질적 주산(主山)은 정상에 ‘못재’라는 연못이 있는 산이다. 이 못재가 있는 곳에서 능선이 뻗어내려 마을을 감싸고 있고 이 때 동네의 왼쪽 산줄기 즉 청룡 끝 줄기에 생가가 위치해 있다.
대개 이런 곳에 집터를 잡는 사람들은 가난하여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이런 땅에 사는 사람들은 안동네 잘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접경지라는 여건상 다른 세계를 넘보면서 끊임없이 도전의식을 키워가는 이중적 성향을 띠게 된다.
이곳은 내룡이 확실하고 청룡이 다한 지점이며, 생가의 좌청룡은 열두 폭 병풍과 같은 산이 황강 밖으로 둘러치고 있다. 우백호는 집 앞까지 감싸 본신 안산을 겸하면서 공손하게 절을 하고 있다. 백호 안산은 여자, 재물, 부하를 상징한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부하, 그것도 의리있는 부하들을 거느린 전 전 대통령에게 그 터의 영향이 있었다면 이 우백호와 안산의 영향일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친화적, 여유로운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는 경남 거제시 외포리 대계마을에 있다. 외포리 마을 입구에서 보이는 번듯한 기와집이 생가다.
크기는 본채 76m², 사랑채 26m²다. 김 전 대통령의 6촌이 살면서 관리를 해왔으나, 1987년 태풍 셀마로 건물 어귀가 무너진 뒤 빈집이 됐다. 현재 거제시 소유로 돼 있다.
생가의 특징은 산 능선이 동네 한가운데로 뻗어내려, 산 능선의 끝집이면서 동네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산과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린 동네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생가는 풍수이론에서 말하는 편안한 땅에 있는데, 그런 땅의 성격은 친화적이고 여유가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대인관계에서 그런 모습을 엿볼 수 있고, 사람들이 많이 따르는 것도 이런 땅의 속성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전임자와 후임자에 대해 싫거나 좋은 감정의 차이를 보이는데, 생가에서 비롯되는 원초적 기질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풍수지리에 가장 담담했던 사람은 김 전 대통령인데, 그의 정치인생 가운데 풍수지리를 따라 이장을 하거나 이사한 흔적이 없는 점이 이를 잘 대변한다.
기독교 가문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풍수지리를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의 조부모 및 어머니 묘를 답사해보면 풍수지리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는 게 풍수지리학자들의 견해다. 또 그 무덤들에서 그의 엄청난 야심을 엿볼 수도 있었다고 했다.
‘파란만장’ 역경 담은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는 수많은 정치역경을 담고 있다.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다.
생가는 본채, 헛간, 측간 등이 초가집으로 이어져 있으며, 1999년 김해 김씨 종친회에서 돈을 모아 복원한 것이다. 실제 생가 터에는 터를 알리는 돌만 놓여져 있는데, 이곳에서 20m 정도 떨어져 있다.
생가 앞으로는 다섯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서 오봉산이 되는데, 이 봉우리가 백호이자 안산을 겸한다.
산으로 둘러싸여 집터에서 보면 바다가 넓게 보이지는 않으나 언뜻언뜻 바다가 비쳐진다. 풍수에서는 언뜻언뜻 비쳐지는 규봉(窺峰)을 흉하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의 변화무쌍한 정치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평전에서 “사람은 지리와 혈통이란 선천적 요인에 의해 초기의 운명이 결정지워진다”고 적고 있는데, 사람의 운이 풍수지리와 얽혀있다는 점을 어느정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살기’ 감도는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속해 있으며, 생가는 진영읍에서 동북쪽으로 4.5km 떨어진 마을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작은 방 2개와 부엌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생가는 청색 빛 감도는 슬레이트 지붕이 인상적이다. 생가 주변을 보면 눈에 띄는 것이 봉하산인데, 거대한 암괴로 이뤄져 있어 강기와 살기를 띠고 있다. 봉하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김해, 창녕, 창원, 마산, 김해 등 5개 시가 보이는 영산이다.
노 전 대통령의 큰 형이 70년대 중반에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은 집터의 강한 기운 탓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생가에는 하루에 30-40명의 방문객이 들른다는데, 일부는 이 특별한 기운을 받기 위해 생가 안방에 ‘큰 대(大)자’로 눕거나 물맛을 보거나 돌멩이와 흙을 비닐봉지에 담아간다고 했다.
이명박 ‘대권 명당’은 가회동에?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성1리에 위치한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집은 엄밀히 따지면 ‘생가’는 아니다. 이 대통령은 선친이 일본 오사카에 체류하고 있을 때 태어났기 때문이다. 대신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 ‘명당’은 따로 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퇴임을 앞두고 본격적인 대권 도전을 시작한 2006년 6월부터 올 초 청와대로 이사하기 전까지 20개월간 전세로 살았던 서울 종로구 가회동 한옥이다. 인사동에 위치한 한식당 ‘두레’의 주인이 이 집 주인이다. ‘두레’는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의 단골집으로도 잘 알려져 있을 만큼 정관계 인사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강남 논현동에서 가회동 한옥으로 전세 7억원을 주고 이사했다. ‘강남 후보’ 이미지를 탈피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됐지만 지지율은 이사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이 집은 인근 한옥 보조마을의 공시지가 시세보다 상당히 높은 편이다. ‘대권 명당 프리미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 50억 원에 매물로 나왔으나 아직까지 ‘두레’의 주인이 소유하고 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대권 꿈만 꾼 ‘유력인사’들의 명당 찾기 노력
대권을 꿈꿨으나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난 인사들도 명당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김종필 전 자민령 총재는 2001년 6월 8일 선친의 묘소를 충남 예산군 신양면 하천리에 옮겼다.
김 전 총재가 부친의 묘소를 충남 부여시에서 예산군으로 옮긴 이유는 이곳이 풍수지리학상으로 ‘왕기’가 서린 곳이라 믿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예산군 신양면 하천리 일대는 산세가 험하지만 명당 중의 명당이란 소문이 난 차령산맥 줄기에 위치해 있다.
대선에서 수차례 고배를 마셨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2002년 대선 직전에 충남 예산군 산성리 선영에 선친을 안장했지만, 2004년 4월 김 전 총재가 이장한 곳에서 3km 정도 떨어진 신양면 녹문리로 선친묘소를 다시 이장했다.
이 대표의 묘가 있는 녹문리 야산은 ‘박봉산’으로 통하는 전주 이씨 선산으로, ‘신선이 책을 읽는 땅 모양’인 ‘선인독서형’으로 일컬어지는 명당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지난 8월 21일 녹문리 부모 합장묘를 개장한 뒤 유골을 홍성 추모공원에서 화장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화장된 유골은 이 대표 부모의 묏자리 근처에 수목장으로 모셔졌다.
이 대표가 여러 차례 선친의 묘를 이장하거나 개장하는 것을 보면 그가 풍수지리에 얼마나 민감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선후보를 3번이나 했던 이인제 의원도 선친 묘소를 이장한 사례가 있다.
이 의원은 지난 2000년 9월 충남 논산시 연산면 어은리 선영에 안장했던 선친묘를 2004년 1월 200m 떨어진 곳으로 이장했다. 당시 이 후보는 1997년 ‘경선 불복’이후 재기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풍수지리의 힘을 빌려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성무 기자 marioca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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