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표자회의 앞두고 후계체제 구축 의도 소문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8월 26일 중국을 방문해 지린(吉林)성 지린 시에서 중국 고위급 인사와 공식 회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날 김일성 주석이 1927~29년에 다닌 위원(毓文)중학교와 항일 유적지인 베이산(北山) 공원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중국방문은 지난 5월 방중 이후 3개월 만이다. 김 위원장이 한 해에 두 번 방중한 적은 집권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저녁 전용열차를 타고 북·중 국경 지역인 만포와 지안(集安)을 통과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에 북한의 후계구도와 관련, 주목받고 있는 김정은이 동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동행 여부는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 고위 당국자들에 따르면 김정일 전용열차는 26일 0시를 넘긴 시점에 북·중 국경도시인 만포와 지안(集安)을 거쳐 중국에 진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북한 자강도 만포를 지나 중국 지린성 지안 쪽으로 넘어갔다. 이는 통상 단둥(丹東)을 통해 가던 루트와는 다르다”라고 같은달 27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린시에서 김일성 주석이 3년간 다닌 위원(毓文) 중학교를 방문해 20여 분간 머물렀다. 이곳은 지난 2월 북한측 의전담당자인 김영일 노동당 국제부장이 찾은 바 있다. 이어 이날 오후 중국고위급 인사와 공식행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만난 중국고위급 인사로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꼽히는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거론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 목적이 9월초 노동당 대표자회의를 앞두고 중국으로부터 김정은 후계 구도를 공고히 하기 위한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번 방중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을 내놓았다. △후계체제 공고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방북 기간 활용한 국제사회 이목 끌기 △ 경제난 돌파 △중국 주도의 북핵 6자회담 재게 문제 협의 등이 그것이다.
김 위원장 방중 진짜 목적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의 목적을 ‘체제 강화’에 무게를 두는 시각이 많다. 전문가들은 후계자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열악한 북한 상황의 돌파구와 원만한 후계체제 구축을 위해 이번 방중이 이뤄졌다는 의견이다.
또 중국 지원 없이는 권력 승계를 원만히 마무리 할 수 없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지난 5월 방중 이후 가을에 치러질 노동당 대표자회의를 통해 후계 문제를 공식화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6월 23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결정서’를 낸 뒤 “조선노동당 대표자회를 주체 99년(2010년) 9월 상순에 소집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지난 8월 17일 중국 랴오닝(遼寧) 성에 북한 전투기가 추락했다. 이 사건을 두고 일부에서는 탈북 가능성을 제기했다. 당시 대북 소식통들은 러시아 망명을 시도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탈북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탈북자가 많은 동북 3성 쪽으로 방중 루트를 잡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공교롭게도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미국인 석방을 위해 방북하고, 북핵 6자회담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방한한 날 방중했다.
이를 두고 북한 특유의 관심 끌기 행보라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이 추가 대북제제 발표를 앞두고 있는 등 국제사회가 강경한 대북제제 흐름을 보이고 있어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방중이 한반도 정세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천안함 해결과 비핵화 의지를 보인다면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으나 이번 방중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키운다면 북 미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원조요청설도 제기되고 있다. 후계자로 김정은을 공식화하기에 앞서 중국의 추가 지원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기 위해 급작스런 방중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신의주에서 큰 수해가 나 북한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때문에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지원이 절실한 실정이다.
지난 5월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경제지원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했다. 때문에 중국의 12차 5개년 개발계획에 북-중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포함시켜 중국의 경제 발전에 북한 경제를 구조적으로 연동시키려는 흐름을 보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정은 동행여부에 관심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후계구도 확립을 위해 방중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김정은이 이번 방중에 동행했는지는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는 김 위원장의 방중에 김정은이 동행했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김정은 동행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 동행여부는 시간이 좀 더 지나야 분명하게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후계 체제 안정 외에는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의를 코 앞에 두고 긴급히 중국을 찾은 이유를 찾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당 대표자회의는 44년 만에 열리는 것으로 그 이전에 중국 지도부에게 후계 체제를 공인 받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에서도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관측이 있어왔다.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져 후계 구도에 대한 의견 차이를 해소가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에도 김정은이 장성택 북한 노동당 행정부장 일행과 함께 중국을 찾아 중국 고위층과 회동을 가졌다는 외신 보도도 이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전용열차가 통상 루트가 아닌 지린성 루트를 택했다는 것도 방중 목적이 후계자 문제라는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정은만 방중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권력승계 목적을 위한 것으로 후계체제의 정통성을 세우려고 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 당국자들이 김정은의 권력승계를 이미 인지하고 있는 상태라며 굳이 동행할 필요성이 없다며 동행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때문에 김정은의 방중은 오는 당대표자회의에서 공식 직책을 맡은 이후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한편 전용열차가 기존 루트가 아닌 지린성 루트를 택한 것으로 미뤄 베이징을 가지 않고 지린 성 일대에서 고위 인사를 접견한 후 지안 또는 투먼(圖們)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