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은행, 민영화 초석 마련하다 외국계 실패 답습하나
- 우리금융에서 HSBC로? ‘작아져만 가는 메가뱅크의 꿈’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의 다이렉트 뱅킹 역시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4년 전 다이렉트 뱅킹을 출시한 후 1년 만에 사그라든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 6월 우리금융그룹(회장 이팔성) 인수 무산에도 불구하고 아직 메가뱅크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현재 산업은행은 HSBC 국내 개인금융부문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공교롭게도 HSBC의 실패한 상품과 산업은행의 신상품 이미지가 겹치는 것이다.
이에 산업은행의 염원인 메가뱅크와 새 다이렉트 뱅킹의 향후 방향을 가늠해 본다.
강만수 산업은행장 겸 산은금융지주 회장(이하 강 회장)은 지난 9월 29일 ‘KDB다이렉트 - 하이 어카운트’라는 이름의 다이렉트 뱅킹을 선보이며 직접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산업은행 다이렉트 뱅킹은 은행직원이 고객을 방문해 본인 실명 확인 후 고객이 직접 인터넷으로 계좌를 개설해 고금리를 받을 수 있는 금융서비스다. 지난 3월 14일 강 회장이 취임한 이후 6개월 반 만에 선보이는 첫 금융상품인 만큼 산업은행 내부에서는 준비와 검토로 바빴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은행권의 반응은 그리 놀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당시로부터 4년 7개월 전 HSBC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던 다이렉트 뱅킹 상품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앞서 HSBC가 출시했던 ‘HSBC 다이렉트 저축예금’은 2007년 2월 당시 뜨거운 주목을 받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잠정적으로 중단됐고 지금은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다.
당시 HSBC는 다이렉트 뱅킹의 수시입출금 금리를 3.5%로 내걸었다. 산업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재 HSBC의 다이렉트 뱅킹 금리는 1.5%로 주저앉았다. 뿐만 아니라 HSBC는 다이렉트 뱅킹 정착을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이는 결국 막대한 손실로 이어졌고 ‘HSBC 한국 철수설’의 초석이 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 등과 달리 ‘걸어서 마트에 갈 수 있는 것’처럼 ‘걸어서 은행에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대부분이다”라면서 “해외에서는 큰 인기를 끌었다지만 정작 지점 수가 매우 적고 인터넷만으로 처리해야 한다면 국내 정서상 금방 불편을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 인터넷뱅킹은 다이렉트 뱅킹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 그 성과가 눈부시다”면서 “(산업은행이) 이제 와서 다이렉트 뱅킹을 도입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민영화 급하다고 달리다가 ‘체할까’
기획재정부(장관 박재완)는 지난 8월 산업은행 지분 매각 계획 변경안을 새로 마련했다. 변경안에 따르면 당초 2013년으로 예정된 산업은행 지분 매각은 2014년으로 늦춰졌다.
하지만 1년이 미뤄졌다 해도 산업은행은 지난 6월 우리금융그룹 인수 무산 이후 마땅한 민영화 방법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시 산업은행은 “산업은행 메가뱅크론은 금융권의 4대강 사업이나 마찬가지”라는 반발이 나올 정도로 거센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인수를 저지당했다.
여론이 반대하는 이유에는 강 회장도 포함돼 있었다. 강 회장은 알려진 바와 같이 이명박 대통령(MB)의 최측근이자 MB노믹스의 설계자로 ‘MB 관치금융의 종결자’로 불리며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으로 등극했다.
이에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석동)는 산은금융지주의 원활한 우리금융그룹 인수를 위해 매수 조건 중 금융지주사가 타 금융지주사 인수 시 지분 95% 이상 매입을 5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했었다.
때문에 ‘강만수 봐주기’로 그 어느 때보다도 현 정권의 특혜 논란을 불러 일으켜 여론의 역풍을 맞은 강 회장은 메가뱅크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와 관련해 강 회장은 지난 6월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우리금융지주 인수가 무산되면 산업은행 민영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산업은행이 현재 추세대로 매년 20개씩 지점을 늘려 시중은행 수준인 1000개까지 확대하려면 50년이 걸린다”고 호소했다.
현재 산업은행은 우리금융그룹 인수 불발의 아픔을 추스르고 HSBC 국내 개인금융 부문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SBC는 앞서 언급한 다이렉트 뱅킹 등의 부진으로 국내 개인금융보다는 기업금융에 주력 중이며 산업은행에 개인금융 부문을 매각할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해도 산업은행이 우리금융그룹과 HSBC 국내 개인금융부문을 비교하면 속이 쓰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우리금융지주에 속해 있는 우리은행만 해도 국내 지점 수가 약 900여개에 달한다. HSBC의 국내 지점 수 11개와 비교하면 무려 88배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게다가 감사원(원장 양건)이 지난달 23일 밝힌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은행의 재무건전성 등급은 정부지원을 제외할 경우 지방은행보다도 낮은 ‘D’ 등급에 불과해 민영화 추진에 차질이 우려되는 상태다.
이에 대해 산은금융지주 관계자는 "HSBC 인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점검하는 과정에서 흘러나간 것이며 확실치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민영화는 기업공개(IPO) 등 다각도로 검토 중이며 매각 주체는 정부이기 때문에 (민영화와 관련된) 모든 결정은 금융위가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산업은행 관계자는 “다이렉트 뱅킹은 기존 HSBC 상품과는 달리 개인 예수금을 확대해야 하는 입장에서 발생 비용을 모두 고객들에게 이자로 준다는 취지"라면서 "이미 기업금융에서 충분한 이윤이 나기 때문에 개인금융에서 굳이 이윤을 추구하려는 욕심은 없다”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