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통일세’ 언급 핫 이슈 급부상
이명박 대통령 ‘통일세’ 언급 핫 이슈 급부상
  • 전성무 기자
  • 입력 2010-08-24 10:18
  • 승인 2010.08.24 10:18
  • 호수 852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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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통일세 검토할 때 됐다” vs 野 “남북 화해와 평화 진전이 선행돼야”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광화문에서 열린 제65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출사를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를 통해 '통일세' 신설을 거론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통일세 문제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통일세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국민의 조세부담 가중, 재정건전성 문제 때문에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천안함 폭침과 한미연합대잠훈련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은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그 배경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기획재정부와 통일부 등 정부 유관부처가 통일세를 전담할 태스크포스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져 정치권의 논란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통일세의 가장 큰 걸림돌은 조세부담 가중이다. 실제 통일세를 징수하게 된다면 어떤 항목에서 어느정도 규모가 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통일비용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통일과정에서의 혼란을 막기 위한 위기관리비용, 사회통합비용(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 등 제도 통합비용), 북한의 후진적 경제수준을 남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소요되는 투자비용 등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5년 통일비용으로 545조8000억 원으로 추산했고, 조세연구원은 지난해 통일 이후 약 20년 동안 GDP의 7~12%가 통일비용으로 쓰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랜드(RAND)연구소 국제경제 전문가인 찰스 월프는 남북간 소득격차 해소에 드는 비용을 1조7000억 달러, 피터 벡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센터 연구원은 통일비용으로 최대 5조 달러로 추산했다. 독일은 1990년 통일 이후 20년 동안 총 2조 유로의 총통일비용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며, 독일 정부 통계에 따르면 1991~1999년 8354억 유로가 총통일비용으로 들어갔다.


통일세 징수방안 논의 급물살

이런 가운데 통일세 징수방안에 대한 논의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조세당국인 기획재정부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통일세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OECD회원국 가운데 일본 다음으로 낮은 수준의 부가가치세율을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꼽고 있다. 한국은 부가가치세율이 OECD 평균 17%보다 낮은 10%대를 보이고 있다. 부가가치세는 지난해 총 47조원이 징수돼 전체 국가세입(164조5000억 원)의 28.6%를 차지했다. 하지만 부가가치세는 소득이 낮을수록 부담률이 높아지는 역진성격이 강해 정치권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독일을 벤치마킹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독일의 ‘연대특별세(Solidarity Surcharge)’를 연구해 국내사정에 맞게 도입하자는 것이다. 독일은 1991년 ‘통일연대세(solidarity tax)’로 소득세와 법인세의 7.5%를 징수했다. 통일연대세는 1년동안 시행되다 폐지됐으나 3년 뒤인 1995년 다시 부활했다. 1997년부터는 세율을 낮춰 소득세와 법인세의 5.5%를 부과하고 있다. 1991년 조성된 남북협력기금을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현재 남북협력기금은 ‘사업성 계정’이나 ‘적립식 계정’으로 전환한 뒤 매년 차액을 통일비용으로 돌리는 방안이다. 하지만 남북협력기금은 지난 6월까지 9조 9490억 원이 배정, 기금확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통일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통일세 논란은 정치권에서도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에서조차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통일세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해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 일단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언젠가 이룰 통일을 위해서 통일세를 검토할 때가 된 만큼 정부 안이 나오면 야당과 잘 얘기할 것”이라며 적극적인 지원사격에 나섰고, 고흥길 정책위의장은 당 정책위 차원의 태스크크포스 구성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당 내부에서는 신중론을 펴며 일단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통일세 문제는 현재 남북협력기금이 많이 있기 때문에 평화공동체 정착 후에 본격적으로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서병수 최고위원도 “통일세는 세금이고 훗날에 대비해 부담해야할 것이어서 잘못하면 국민적 합의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한구 의원도 지난 8월 17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 “통일세가 도입되면 조세부담이 굉장히 커질 것이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야권, 통일세 “현실성 없는 정책”

반면 통일세를 두고 야권에서는 반발이 거세다. 통일세가 현실성이 없는 제안이라며 맹공에 나선 것. 박지원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통일된 후에 엄청난 통일비용 부담을 생각할 게 아니라 통일 전에 남북화해와 평화를 발전시키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북한을 자극하고 마치 흡수통일을 생각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많다”고 밝혔다. 송민순 의원은 지난 8월 17일 한 라디오에 출연, “현 정부가 반통일적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서 “동독의 경우에는 받치고 있던 소련이 붕괴했지만 지금 북한을 받치고 있는 중국은 욱일승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동철 민주당 의원도 “결혼상대와 아직 맞선도 보지 않은 사람이 언젠가는 결혼할 테니까 예식장부터 잡아놓자는 정말 황당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도 “참으로 엄청날 비용을 국민의 혈세로 부담시켜 미리 비축한다는 것이 과연 현실성 있는 대안인지 의문”이라며 “한반도 안정에 이해관계가 있는 동북아 국가들이 참여하는 동북아 개발은행이나 기금 방식으로 대비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8월 18일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통일세 신설안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과 한국진보연대,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등 30여개 단체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제안한 통일세는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6·15공동선언에 따라 남북이 합의하는 통일을 이룰 경우 통일세가 새로이 필요하지 않다”며 “2009년도 남북교류 협력기금 1조1000억 원 중 8.6% 밖에 쓰지 않을 정도로 남북관계를 파탄 낸 이명박 정부가 통일세를 말하는 것 역시 낯 뜨거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통일세 문제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북관계 악화 등에 대한 회피용으로 대통령의 ‘립 서비스’가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 관계부처와 여권이 이 문제를 공론화 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기류가 감지돼 당분간 정치권의 핫 이슈로 부상할 전망이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bukethead@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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