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사찰 공화국?’…‘하얀색 리시버(통신장비)’ 주의보
대한민국은 ‘사찰 공화국?’…‘하얀색 리시버(통신장비)’ 주의보
  • 전성무 기자
  • 입력 2010-08-24 09:47
  • 승인 2010.08.24 09:47
  • 호수 852
  • 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가 당신을 훔쳐보고 있다”
남경필 - 정두언 - 정태근

‘사찰’이 정치권의 화두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 이후 현역 의원들에게 까지 사찰의 손길이 뻗쳤다. 한나라당 남경필?정태근?정두언 의원 등 사찰피해 3인방은 배후세력을 밝히겠다며 칼을 갈고 있다. 이들은 또 사찰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 파문은 가시지 않고 있다. 사찰 대상에 집권여당 의원들까지 포함돼 있다는 것은 민간인에 대한 사찰 규모가 전방위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찰공화국’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국가기관의 사찰 행태를 꼬집어 봤다.

현역 의원 사찰 파문이 가시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남경필·정태근·정두언 의원 등 사찰피해 3인방은 검찰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강한 불만감을 드러내며 “배후 세력을 다 밝히겠다”면서 얼굴을 붉히고 있다.

이들은 국정원이 사찰에 개입했다고도 주장했다.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8월 16일 “지난해 7월께 저와 제 아내가 다니는 회사에 대한 국정원 직원의 사찰이 있었다”며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국정원에서 사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10월 이런 사실에 대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강력히 항의했더니 민정수석실에서 ‘우리가 개입한 게 전혀 없고, 국정원 직원이 그 문제를 사찰한 게 있어서 중단시켰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사정기관의 중추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국정원의 불법사찰을 사실로 직접 확인해줬음을 공개한 것이다.

정 의원은 “특정 인맥에 의해 국정원 직원까지 동원돼서 사찰 행위가 진행된 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주축으로 해서 사적으로 권력을 운영하는 세력이 정치개입이 금지된 국정원 직원까지 사적으로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 의원은 “공직윤리지원관실에 42명이 근무하는데 대구.경북 출신이 17명, 영일·포항 출신이 8명이다. 공무원 구성이 이렇게 된 배경이 뭔지, 누가 구성했는지, 어떤 목적을 갖고 구성했는지 검찰이 밝히면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확인될 수 있다”면서 간접적으로 배후를 지목했다. 그가 간접적으로 지목한 인사는 이상득 의원,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 내정자로 추정된다.

한나라당에서도 2008년 정두언 의원에 대한 사찰을 벌인 인물로 당시 청와대에 파견근무 중이던 국정원 직원 L씨를 지목하고 있다.

이에 앞서 전날 남경필 의원도 자신에 대한 광범한 사찰에 국정원이 개입됐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국정원은 또 지난 6월 29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서울진보연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MBC 직원을 사칭한 30대 남성이 국정원 직원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국가기관의 부적절한 사찰행태는 이 뿐만이 아니라는데 있다. 박원순 변호사도 지난해 국정원 사찰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통상적인 정보활동이었을 뿐 특정인을 겨냥해 해를 끼치기 위해 사찰을 벌인 일은 없다”라고 해명했다.

현행 국정원법에 따르면 국정원은 정치 사찰 등을 통한 국내 정치 개입을 금지(제9조, 정치관여의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돼 있다.

한겨레신문은 사설을 통해 ‘국정원 사찰’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원세훈 원장 취임 뒤 국정원은 시민사회단체의 자금줄을 끊는 따위 공작이나 정부부처와의 관계기관 대책회의 부활 등을 서슴지 않았다. 온갖 민간 영역에서 대놓고 정보수집 활동도 벌였다. 그 결과가 이번 같은 불법사찰이다. 대통령의 묵인과 조장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지금까지 계속됐겠는가”라면서 “권력의 불법사찰 논란은 이미 어설픈 변명이나 꼬리 자르기로는 해결되기 어렵게 됐다. 검찰의 전면 재수사는 물론, 국정조사나 특검을 통해서라도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파문과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학술세미나 참석 학생도 무차별 연행

국민과 가장 근거리에서 소통하고 있는 ‘친서민’ 사정기관인 경찰의 사찰행태는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대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연행, 광범위한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지난해 5월 4일 오전 아주대 학생 3명의 거주지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 이중 이모씨(25·당시 화학공학과 4년)를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수원 조원동에 있는 보안수사대 사무실로 임의동행해 조사를 벌였다. 최모씨(29·당시 정보컴퓨터공학부 4년)와 김모씨(26·당시 화학공학과 4년) 등 학생 2명은 노트북 1대와 다이어리 4개, USB 4개 등 학생회 활동 관련 자료들을 압수당했다.

이씨 등은 지난 2007년 서울에서 열린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가 주최한 ‘통일학술제전’에 부적절한 논문을 제출한 혐의를 받았다. 수원지역 3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수원시민 대책회의도 즉각 성명서를 내고 “경찰은 대학에서 특정 사상을 토론했다는 이유만으로 3명의 학생들의 자유를 박탈했다”며 “시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공안탄압은 중단돼야 한다”고 반발했다.

당시 경찰 조사를 받은 이씨의 어머니는 본지 기자에게 “아들이 학술모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하다”며 “반정부든 뭐든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경찰의 이 같은 보안사범에 대한 수사는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정법과 사상의 자유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보안사범을 비롯한 진보성향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경찰 정보담당 부서 등의 사전 사찰로 비롯된다는 것이다.

실제 경찰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주관한 강연회에 정보과 형사가 참석한 사실이 드라나 정치사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민노당 울산시당은 “지난 8월 11일 오후 울산 북구청 대강당에서 노동자통일아카데미를 진행하던 중 울산 중부경찰서 정보과 소속 김모 경찰관이 북구청 직원을 사칭해 참가자명부에 서명하고 강좌를 들으면서 사찰을 진행하다 참가자들에 발각됐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민주노동당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울산에서 제1야당인 민주노동당과 4만5000명의 조직을 가지고 있는 민주노총에 대한 엄연한 정치사찰”이라고 규정했다. 경찰은 또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인 지난 4월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신분을 속인 채 실종자 가족들을 상대로 성향 분석 등 사찰 활동을 벌이다 발각돼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경찰의 사찰은 집회 및 시위 현장에서도 진행된다. 현행 집시법은 2인 이상 집회를 할 경우 관할 경찰관서에 신고해야 한다.


집회 현장에서도 ‘사찰’ 진행

집회 규모에 따라 무력 충돌을 대비하기 위한 경비 경력이 배치된다. 하지만 물리적인 충돌과 전혀 관계없는 정보과 형사들이 집회 현장에 배치되고 있다. 해당 단체에 대한 사전 사찰의 성격이 강하다.

이들 정보과 형사들은 집회현장에 배치돼 단순한 상황보고 이외에 민간인 등을 상대로 한 정보수집 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해당 지방경찰청 정보과에 보고됨과 동시에 해당 단체와 유관기관에 대한 첩보자료로 활용하게 된다.

이 같은 과정에서 경찰관직무집행법을 위반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현장에서 경찰 정보과 직원들은 민간인 등을 상대로 한 정보수집 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 4항에 따르면 경찰관은 동행을 요구하거나 질문을 할 경우 당사자에게 자신의 신분과 소속, 성명을 밝히고 그 목적과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 정보과 형사들은 아직도 집회 현장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하얀색 리시버(통신장비)’를 귀에 착용하고 현장의 정보를 ‘상부’에 보고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민간인 사찰 현주소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