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어린이집 배만 불리는 재원비 ・・・ 학부모는 봉?
[단독] 어린이집 배만 불리는 재원비 ・・・ 학부모는 봉?
  • 전수영
  • 입력 2011-11-15 11:16
  • 승인 2011.11.15 11:16
  • 호수 915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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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실태조사, '나 몰라라'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 중 일부는 아이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제대로 된 근거도 없는 재입소료(재원비, 진급비)를 내라는 얘기를 듣는다. 문제는 학부모들이 재원비의 성격을 물어도 어린이집에서는 제대로 된 설명을 듣기는 힘들다는 것. 이 때문에 연말이 되면 재원비 문제로 어린이집마다 작은 소동이 벌어진다. 더 큰 문제는 재원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것. 해당 구청에 문의해도 이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듣기는 어렵다. 관할 구청은 재원비에 대해 1년에 한 번씩 실태파악을 한다는 것뿐이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은 적게는 1~2만 원에서 많게는 10만 원을 울며 겨자 먹기로 내야만 한다. 하지만 자칫 이에 대해 세밀하게 따질 경우 혹시나 자신의 아이가 불이익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의 명쾌한 설명도 없이 무조건 받고 있는 재원비의 실태를 파헤쳐 본다.

어린이집에 처음으로 등원하게 되면 등원비(입학금)를 낸다. 어린이집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5만 원 정도 하는 등원비를 내면 책가방과 체육복, 원아수첩, 도시락통을 지급 받는다. 고급 책가방과 체육복은 아닐지언정 등원비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발은 적은 편이다.
그런데 어린이집을 1년 다니고 나서 다음 해로 넘어가기 전에 일부 학부모들은 어린이집에서 오는 알림문을 받게 된다. 바로 재원비를 내라는 통보다.
‘입학할 때 등원비를 냈는데 재원비는 또 뭔가’ 하는 학부모도 있고, 이전 지역에서는 재원비를 내지 않았던 학무모들은 통지서를 받아들고는 어리둥절해 할 뿐이다.
물론 재원비는 어린이집의 재량이기 때문에 받는 곳도 있고, 받지 않는 곳도 있다. 재원비를 받는 곳은 그 금액도 천차만별이어서 2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다양하다.
이 재원비는 보통 상해보험료와 원아수첩, 이름표, 학습도구 등의 구입비로 쓰인다는 것이 구청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일부 재원비를 받는 어린이집이 재원비가 어디에, 얼마가 쓰이고 있는지 세부 항목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구청도 재원비 실태 파악 못해

재원비는 해당 시·군·구의 장(長)이 정할 수 있으며 그 범위 안에서 어린이집이 학부모들에게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규정이 모호해 어린이집을 관할하는 구청 담당자도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구청은 관내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받을 수 있는 상한선을 제시하고 그 상한선을 지키는지 확인하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이 때문에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학년이 올라가는 아이를 둔 학부모들의 재원비 부과 여부의 타당성과 금액에 대한 문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처음 입학할 때 내는 입학금을 또 다시 부과하는 어린이집도 있다는 고발성 글도 게재되어 있다.
이렇게 문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재원비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듣기는 어렵다.
인천광역시 서구청 담당자에게 재원비에 대해 문의하자 “관내에 375개 어린이집이 있지만 재원비는 어린이집 소관이다 보니 얼마씩을 받고 있는지는 개별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면서 “다만 재원비를 받을 경우 어떤 명목으로 받는지 공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을 내린다”고 답했다.
담당자의 말처럼 재원비에 대한 세부항목을 공개하지 않아 적발될 경우 최초에는 시정명령을 받게 된다. 이후 같은 조항 위배로 적발되면 2개월 이내 운영 정지, 6개월 이내 운영 정지를 받게 되고, 세 번째 적발이 되면 그 때는 시설 폐쇄로 명령을 받게 된다.
서울시청어린이집은 최초 등원비 5만 원을 받고 있으나 추가적인 재원비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대구시청어린이집의 경우에도 등원비만 받고 있다. 하지만 인천광역시 서구의 경우에는 일부 어린이집에서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재원비 납부를 요구했으며 이에 대해 세부 항목을 요구하고 있으나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답변이 없어 학부모들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한 학부모는 “서울에서 살다가 몇 개월 전에 인천으로 이사했는데 이곳에서는 재원비를 내라고 한다. 서울에서는 2년 넘게 어린이집을 다녔지만 한 번도 재원비를 낸 곳이 없다”며 “어느 곳에 쓰이는지 알아야만 재원비를 내든 말든 할 것 아니냐”며 항변했다.
이와는 반대로 서울시 마포구의 경우에는 관내 어린이집에서는 2만 원 이하의 재원비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거의 모든 어린이집에서 세부 항목을 공개한 것으로 확인됐다.
마포구 가정복지과 담당자는 “관내에서 타 구로 이사할 경우 차액을 환불하고 있다”며 “재원비에 대한 팸플릿을 만들어 모든 어린이집에 나눠주고 이를 학부모에게 우편으로 보내라고 협조를 구했다”고 말해 다른 구에 비해 어린이집 재원비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담당자는 “지난해부터 재원비를 받기 시작했으나 학부모들의 항의가 있자 올해는 자진해서 재원비를 받지 않는 곳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의 경우에는 재원비로 인해 학부모와 어린이집 간에 얼굴을 붉히는 일은 많지 않는 편이다. 많은 어린이집에서 재원비를 받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재원비를 놓고 지역 간 차이를 보이고 있어 재원비 통지서가 도착하면 ‘재원비가 비싸다’, ‘차라리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야겠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집들이 많아지는 실정이다.

“아이들에게 불이익 갈까 두려워”

학부모들은 재원비에 대한 불만과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린이집에 강하게 물어보지 못한다. 자칫 아이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주부는 “맞벌이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못 봐주는 것도 미안한데 괜히 재원비 문제로 시끄러워지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불안하다”며 속앓이를 했다.
최근 어린이집 원아 폭력사태로 인해 불안감이 가중된 상태여서 어린이집에 재원비 문제로 계속해서 항의할 경우 아이에게 불이익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당장 폭력사태로까지 번지지 않더라도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다른 아이들과 차별대우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은 학부모로서는 안 할 수 없다.
결국 학부모들의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와 시에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수 밖에는 뾰족한 묘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수백 개에 이르는 관내 어린이집을 몇 명의 공무원이 관리감독 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한다고 해도 제대로 수행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전화통화를 했던 자치구들의 경우 관내에 재원비를 받는 어린이집이 몇 곳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관내 어린이집에서 재원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는 전혀 몰랐다.
이렇다 보니 구청에서는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를 받은 후에야 해당 어린이집에서 재원비 문제가 발생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 학부모들이 담당 공무원에게 재원비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다가도 ‘어느 어린이집이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해당 어린이집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담당 공무원들의 전언.
전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연합체인 (사)한국보육시설연합회에서도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어린이집에서 재원비 수납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파악을 하지 않고 있으나 회의 때 재원비에 대해 학부모들에게 잘 설명할 것을 각 가입 보육시설장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보육사업을 관할하고 있는 보건복지가족부에서도 재원비에 대한 관리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원인 파악이 안됐기 때문에 해결 방안도 나올 수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일지 모르지만 학부모들은 정확한 용처를 알기를 원하고 있다. 납득할 수 있다면 재원비를 내는 것에 이의를 달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어린이집에서 재원비의 용처를 자세히 밝히지 않는 것은 그 중 일부가 관계자들의 개인 주머니로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재원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만 학부모들과 어린이집 사이에 신뢰가 깨지지 않아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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